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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매력적인 설정, 개연성 있는 흐름 뒷받침돼야

등록 2014-02-07 19:46수정 2015-10-23 18:29

미티 작가가 현재 연재중인 <악플게임>의 한 장면. 마치 프로게이머처럼 악플로 게임을 펼친다. 웹툰 갈무리
미티 작가가 현재 연재중인 <악플게임>의 한 장면. 마치 프로게이머처럼 악플로 게임을 펼친다. 웹툰 갈무리
[토요판] 위근우의 웹툰 내비게이터
<남기한 엘리트 만들기>, <고삼이 집나갔다>, <악플게임>의 미티 작가
최근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와 만화 <설희> 사이의 표절 공방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두 작품의 플롯과 장르적 감성이 매우 다름에도 이런 일이 벌어진 건, 두 작품이 공유하는 설정이 너무 매력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동시대 웹툰들이 원작으로서 다른 미디어의 사랑을 받는 이유 역시 설정의 힘이 크다. 남파 간첩이 동네 바보 연기를 하며 임무를 수행한다는 <은밀하게 위대하게>가 그러하고, 자신의 장기를 주는 조건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여 복수를 계획한다는 <더 파이브>가 그러하며, 강풀의 거의 모든 작품이 그러하다. 하지만 절대 간과되어선 안 되는 건 모든 서사 장르에서 최종적인 힘은 설정이 아닌 전체 이야기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현재 <악플게임>을 연재중인 미티 작가는 특히 이러한 이야기의 뚝심에서 유독 돋보인다.

어느 날 갑자기 현재의 기억을 안고 어린 시절로 돌아간 남기한의 이야기를 다룬 <남기한 엘리트 만들기>, 고3 신분으로 얼떨결에 가출을 했다가 이런저런 소동에 휘말리는 <고삼이 집나갔다>, 그리고 마치 프로게이머처럼 누가 더 뛰어난 악성 댓글을 쓰는지 겨루는 <악플게임>처럼 그의 작품은 설정부터 굉장히 매력적이다. 하지만 정작 이야기의 끝은 처음 설정과 비교해 굉장히 멀리 떨어진다. <남기한 엘리트 만들기>는 왜 남기한이 과거로 돌아갔는지에 대해 설명하다가 거대한 평행 우주 개념까지 올라가고, <고삼이 집나갔다>는 가출한 아이들을 가두는 악질 조직을 일망타진하는 활극이 되며, <악플게임>은 악플로 인터넷 세상을 지배하려는 재계 인사의 음모까지 확장됐다. 이쯤 되면 수습할 수 없게 이야기를 불리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그는 얼렁뚱땅 완결로 넘어가지 않고(작가들은 흔히 ‘싼다’고 표현한다) 넓게 퍼진 이야기를 납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매듭짓는다.
위근우 매거진 <아이즈> 취재팀장
위근우 매거진 <아이즈> 취재팀장

물론 그의 방식은 마사토끼나, <타임 인 조선>에서의 이윤창 같은 치밀한 설계자의 그것은 아니다. 대신 자신이 던진 흥미로운 설정이 과연 어디로부터 파생됐을지, 혹은 어디까지 이야기가 확장될 수 있는지 끝까지 탐구하는 타입에 가까워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이야기의 처음과 끝은 크게 벌어지지만 그 사이의 과정은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넘어가지 않으며, 자칫 작가조차 길을 잃을 법한 상황에서 본인이 던진 모든 복선과 설정 안의 의문점을 끝끝내 다 해결하고 답을 내린다. 이러한 뚝심과 집중력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새삼 생각하게 된다. 매력적인 설정은 분명 서사의 알파다. 하지만 오메가에 이르기 위해서는 한순간의 번뜩임이 아닌 거기서 만들어지는 여러 군상의 화학작용과 개연성 있는 흐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만화뿐 아니라 모든 서사 장르에서 잊지 말아야 할 가치 아닐까.

위근우 매거진 <아이즈> 취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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