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방위연구소>의 용사란 이런 모습이지만, 그래도 지구를 지킨다. 웹툰 갈무리
[토요판] 위근우의 웹툰 내비게이터
누구나 남에게 밝히기 어려운 뭔가 부끄러운 취향, 즉 ‘길티플레저’가 한두 개쯤 있기 마련이다. 내 경우 <파워레인저> 시리즈로 잘 알려진 ‘전대물’(일본에서 시작된 특수촬영물로 여러 명의 주인공이 팀을 이뤄 지구를 지키는 이야기)을 좋아하는 편인데, 그 때문에 니나노머신 작가의 <지구방위연구소>를 접했을 땐 비로소 흉금을 터놓고 말할 수 있는 친구를 만난 기분이었다. 지구방위연구소에서 만든 용사 제복의 기능 테스트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철수와 연구소 사람들의 소동극을 담은 이 개그 만화에서, 철수의 용사 복장은 ‘전대물’에 대한 오마주이자 패러디이며, 심지어 철수의 여동생은 ‘전대물’ 마니아로 등장한다.
하지만 <지구방위연구소>가 정말 반가웠다면 단순히 ‘전대물’을 본격적인 소재로 다뤄서가 아니라 패러디하는 가운데에도 그 특유의 정서를 살리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 용사라기보다는 그들의 흉내에 가까운 행동을 하는 연구소 사람들은 악의 로봇 타이탄 엑스(X)가 등장하자 지하에 숨겨진 거대 로봇을 꺼내 대항한다. 이것은 마블 코믹스의 히어로처럼 힘을 가진 자의 고뇌나, 여타 소년 만화 주인공처럼 강한 근성과는 다르다. 그보다는 지구를 지킨다는 행위에 대한 오래된 로망을 발산하는 순간에 가깝다. 항상 허튼짓만 하던 소장이 “지구방위연구소장이라면 지구를 지킬 정의의 로봇 하나는 만들 줄 아는 게 기본 소양이지 않겠나”라며 로봇을 소개할 때, <지구방위연구소>의 스핀오프 격인 <올망동은 평화롭습니다>에서 히어로연합 올망동 지부장 솔라니온이 지구 침략을 꿈꾸는 기계제국을 홀로 무너뜨릴 때 짜릿한 건 그래서다. 남달리 윤리적 고뇌에 빠지지 않더라도 지구를 지키는 거, 그거 멋있고 당연한 일 아니냐고 말하는 낙관의 정서야말로 ‘전대물’의 고갱이 아니던가.
비록 니나노머신 작가의 최근 복귀작 <모험의 꿈동산>은 ‘전대물’과는 상관없는 놀이공원 이야기지만 전작들과 공통된 정서를 유지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반갑다.
전작의 지구방위연구소를 연상케 하는 수상한 놀이공원 모험의 꿈동산 직원들은 엉뚱한 아이디어를 내는 게 전부지만, 그럼에도 “놀이동산의 마스코트는 언제나 어린이들의 친구로서 꿈과 희망을 지켜줘야 하는 법”이라는 대사처럼 놀이동산은 마냥 즐거운 곳이어야 한다는 대의명제에는 의심이 없다. 어떤 악이 몰려와도 지구는 용사가 지켜줄 거라 말해주는 ‘전대물’이나, 마음껏 꿈과 희망을 말하며 놀 수 있는 놀이공원의 세계 모두 대책 없는 긍정의 정서로 채워져 있다. 니나노머신 작가의 개그 만화가 그 웃음의 농도와는 별개로 마음 편히 볼 수 있는 건 그 때문일 것이다. 만화 채널이 ‘전대물’만으로 편성되는 날을 놓치지 않고 티브이를 켜놓고 한 점 걱정 없이 보던 그때의 즐거움처럼.
위근우 매거진 <아이즈> 취재팀장
위근우 매거진 <아이즈> 취재팀장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