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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오직 만화니까 가능한 화끈한 허풍

등록 2014-07-04 18:51수정 2015-10-23 18:19

조심히 기대는 것만으로도 거목을 부수고 스스로 당황하는 <극지고>의 교장 강절륜.
조심히 기대는 것만으로도 거목을 부수고 스스로 당황하는 <극지고>의 교장 강절륜.
[토요판] 위근우의 웹툰 내비게이터
<격투기특성화사립고교 극지고>의 허일
만화만의 장점은 무엇인가. 만화가들을 인터뷰할 때마다 종종 묻는 질문이다. 누군가는 혼자 창작의 즐거움과 만족을 독식할 수 있어서라고 답하고, 또 누군가는 글과 그림이 결합되었을 때의 파괴력에 대해 말한다. 이 모든 대답은 결국 하나로 소급한다. 상상력을 가장 적은 비용과 인력으로 구현할 수 있는 매체라는 것이다. 영화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에서 라디오에서는 “여기는 우주다” 한마디로 모든 게 처리된다고도 했지만, 만화는 시각적 효과까지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분명 한발 앞서는 점이 있다. 바로 그 점 때문에 내 또래 다수가 윤태호 작가의 <미생>이나 최규석 작가의 <송곳> 같은 탁월한 드라마에 열광하는 중에도, 여전히 나는 <격투기특성화사립고교 극지고>(이하 <극지고>) 같은 열혈 활극에 열광하는지도 모르겠다.

허일 작가의 <극지고>는 과거 일본의 <돌격! 남자 훈련소> 같은 학원 액션물의 유전자를 품은 작품이다. 제목 그대로 공부보다는 극지도라는 가상의 무술을 배우는 것에 특화된 학교인 극지고를 배경으로, 허약하고 소심한 주인공 강치우는 극지고 교장 강절륜의 아들답게 타고난 재능을 바탕으로 격투가로서 빠르게 성장한다. 특유의 성적인 말장난과 귀귀 작가 같은 ‘병맛’ 코드의 개그에도 불구하고 주인공과 친구들이 함께 성장하고 그 능력을 바탕으로 펼치는 활극은 소년 만화로서 매우 전형적이다. 하지만 전형적이라는 것은 때로는 상상력의 빈곤보다는 장르적 강점의 극대화를 보여준다. 앞서 말했듯, 만화의 가장 큰 강점은 적은 비용으로 엄청난 시각적 스펙터클을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활극은 만화의 강점을 가장 극대화한 장르라 할 수 있다. 달리는 차를 부수고, 극지도의 힘으로 거대해진 늑대 아이리스와 싸우는 허풍 가득한 액션처럼.

위근우 매거진 <아이즈> 취재팀장
위근우 매거진 <아이즈> 취재팀장
앞서 말한 특유의 개그 센스가 중요해지는 건 이 부분인데, 극이 진지해지려 할 때마다 한 번씩 제동을 거는 개그 때문에 <극지도>는 더더욱 만화처럼 느껴진다. 가령 역시 탁월한 소년 만화인 <신의 탑>, <노블레스> 등이 세계관을 단단히 다지면서 독자를 만화적 가상 안에 몰입하게 만든다면, <극지도>는 이것이 가상의 세계라는 걸 숨기지 않는다. 대신 살짝 기대는 것만으로도 거목을 부수는 강절륜의 박력과 거꾸로 처박힌 것만으로 머리에 피가 몰려 똑똑해진 반반의 천연덕스러운 모습에 대해, 이건 만화라고, 오직 만화니까 가능한 허풍이라고 과시하듯 연출한다. 나는 이 과시가 상당히 건강하게 느껴진다. 만화 같은 만화, 만화이길 숨기지 않는 만화, 오직 만화이기에 가능한 만화. 어쩌면 장르의 순수성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내가 꼭 소년 만화를 좋아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위근우 매거진 <아이즈> 취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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