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앞에 무능하지만 카메라는 확실히 끌고 다니는 정치인의 모습. 최근에도 본 듯한 기분이 드는 건 착각일까.
[토요판] 위근우의 웹툰 내비게이터
<삼풍>의 손영수, 한상훈 작가
<삼풍>의 손영수, 한상훈 작가
“아사리판이라고.” 얼마 전 공개된 세월호 참사 당일 해경 상황실 녹취록에서 발견한 말이다. 위기관리는커녕 상황 통제도 못하고 누구도 책임은 지지 않으려는 그날의 풍경을 이보다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말이 있을까. 당장 뒤도 보지 않고 구조 작업에 ‘올인’해야 할 시점에 벌어진 관료주의의 구태에 울컥하지 않기란 어려운 일이다. 손영수(글), 한상훈(그림) 작가의 웹툰 <삼풍>이 그려내는 또 하나의 ‘아사리판’을 보며 이중 삼중의 분노를 느끼는 건 그래서다. 작가가 자료 조사와 취재를 통해 19년 만에 재현한 삼풍백화점 붕괴 현장의 모습을 보노라면, 세월호 관련 녹취록에서 일종의 기시감을 느낄 정도다. 물론 지난해 5월부터 시작한 <삼풍>이 세월호 참사에 대한 알레고리로서 삼풍백화점 붕괴라는 소재를 가져온 건 아니다. 삼풍 붕괴는 말하자면 근대적 자본주의가 이뤄낸 고속 성장이 얼마나 허약한 지반 위에 서 있었는지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즉 경제적 효율성만을 따진 이기적 인간들의 이기적 선택이 어떤 식의 결과적 악을 만들었는지 보여주는 사건인 것이다. <삼풍>의 에피소드 중 그 이름도 의미심장한 ‘괴물’ 편에서 삼풍의 이준 회장에 대해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준 회장은 5억원의 매출을 위해 130여명의 목숨을 담보로 잡았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괴물이 된지도 모른 채 괴물로 살아간다.” 명백한 살의는 없다. 하지만 나의 손해를 감수하지 않고 이익에 충실하려는 태도가 수백명의 사람을 죽일 수 있다. 이것이 <삼풍>이 전하고자 하는 1990년대의 단면이다.
문제는 이 이기심이 괴물만의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앞서 말한 <삼풍>의 구조 현장에서 가장 무능한 건 윗선의 눈치에 민감한 소방본부장이다. 구조작업 실패에 대한 위험부담을 짊어지려 하지 않는 그에게 중요한 건 실종자의 생명이 아닌 자리보전이다. 피해자 가족 대표를 자처한 변호사는 가족의 무사를 확인하자 손을 털고 가버리고, 그 와중에 거짓 신고로 보상금을 노리는 사람들까지 등장해 현장을 더욱 혼란하게 만든다. 이기적 인간의 이기적인 선택이 결과적 풍요를 가져올 것이라 믿었던 자본주의의 복음은 그 민낯을 드러낸다. <삼풍>이 재난물 특유의 스펙터클보다는 다양하게 얽힌 인간들의 욕망에 집중하는 건 그 때문일 것이다. 당시 뉴스는 무너진 건물의 참혹하고도 압도적인 비주얼로 사건의 모든 것을 설명하려 했지만, 작가들이 취재하고 <삼풍>에서 그려내는 것처럼 본질적인 균열은 건물 기둥이 아닌 사회시스템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그것을 이제라도 제대로 파고드는 작품이 나왔다는 건 다행한 일이라 말하고 싶다. 하지만 지금은 다행이란 말을 쓰지 못하겠다. 네달 전이었다면 거리낌 없이 썼겠지만.
위근우 매거진 <아이즈> 취재팀장
위근우 매거진 <아이즈> 취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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