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너 소개
이야기가 가진 힘을 믿는다. 해피엔딩인지 새드엔딩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이야기가 지금 이곳이 아닌 다른 장소로 우리를 데려다 놓는다는 점이다. 거기서 우리는 이전과 다른 사람이 되어 다른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생각해보면, 신기한 일이다.
빛과 소리로 짜여진 스크린 위의 세상은 허구이지만 종종 현실보다 더 핍진한 에너지를 발산한다. 그래서 중국영화를 가지고 중국, 중국인, 그리고 우리들의 이야기를 써보려고 한다. 타인을 이해하는 것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나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일은 쉽지가 않다. 고백하건대 갈수록 어려워진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나’는 ‘너’를 통해, ‘우리’는 ‘그들’을 통해 더욱 진정해진다는 점이다. 2주에 한 번 금요일에 <한겨레> 디지털에 연재할 예정이다.
1회. 천카이거 감독의 <아이들의 왕(孩子王)>
문화대혁명을 활자로 배웠다. 이웃한 중국에서 ‘10년 대동란’(1966~1976)이라 불리는 사건은 그렇게 박제화되었다. 요즘 중국인들도 다를 바 없는 듯하다. 날카로운 언변으로 각종 현대사에 주석을 달기 좋아하는 학자, 정확한 타이밍에 침묵하는 언론인, 정치나 역사 따위는 따분하기만 한 10대의 ‘소황제’들. 그런데 내가 아는 중국인 지인들은 ‘문혁’이란 단어만 나오면 흠칫, 했다. 문화대혁명을 몸소 살아낸, 어느덧 노년이 되어가는 사람들 말이다. 사인방이 몰락하고 새로운 세기가 왔다. 하지만 문혁은 여전히 중국 사회를 떠도는 유령이다. 마주치는 순간 숨을 멈추게 되는 흉측한 과거의 유령.
천카이거 감독의 <아이들의 왕>(1987년 작)은 문혁에 대한 영화이면서 문혁에 대한 후일담이다. 문혁의 주인공인 홍위병, 그들이 정치무대에서 내려온 이후를 그린다. 중국의 최고 지도자 마오쩌둥이 자신들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 부름에 천안문 광장으로 달려가 빨간색의 마오 어록을 심장에 대고 환호성을 지를 때. 어린 청춘들은 얼마나 가슴이 벅찼을까? 그들의 얼굴은 싱그럽게 빛났을 것이다. 그런데 천카이거 감독은 가장 영광된 시간을 뒤로하게 된 인간군상을 스크린에 담았다. 하루아침에 바닥으로 곤두박질친 중국 청년들에게 포커스를 맞추었다.
이 영화는 해자왕(孩子王)이 대도시의 화려했던 홍위병 시절을 마감하고 산간벽지로 쫓겨난 지 7년 후를 시점으로 잡았다. 헛간에서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과 지내며 들에 나가 소를 키우고 날마다 대나무를 팬다. 그러다 생산대 대장의 추천으로 인근 중학교에 가서 국어를 가르친다. 학교 환경은 열악하기만 하다. 얇은 판막 뒤로는 옆 교실의 소음이 끊이질 않고 아이들은 교과서도 없다. 공산당 선전 일색인 교과 내용을 칠판에 적고, 기계적으로 해석하고, 아이들에게 외우게 한다. 그게 해자왕의 새로운 임무다. 자기의 성의 없는 해석을 아이들이 꼭두각시처럼 따라 하는 것을 바라보는 해자왕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그날부터였다, 당의 지시를 따르지 않게 된 것은. 기립과 경례로 이어지는 교실의 관습을 없애고, 아이들에게 자기 이야기를 쓰게 한다. 아침에 등교할 때 산자락에서 본 안개며, 생산대 취사원 이야기, 묵묵히 일하는 아버지의 뒷모습.
교조주의적 학습에 반발하고 참교육을 행하는 젊은 교사. 이는 어느 나라에 대입해도 무방한 캐릭터이자 스토리이다. 더 이상 참신하지 않으며 따라서 감동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아이들의 왕>에서 이색적인 것은 젊은 교사의 조로(早老)다. 생산대 친구들과 낄낄거리며 장난치고, 교실에선 아이들과 허물없이 지내지만, 이 20대 초반의 중국 청년은 늙어 있다. 사물을 껴안기에는, 인간과 부대끼기에는 이미 너무 피곤하다.
“한참을 생각하고 오래도록 후회하다 보면, 또 언젠가 그 끝에 서 있겠지.”
당의 학교 파견 지시에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내는 친구에게 해자왕이 건네는 대사다. 해자왕의 시선은 관조적이다. ‘관조’(觀照)는 애초 불교에서 파생된 용어로 현상의 이면에 자리 잡은 진면목을 지혜로 비추어 진리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해자왕이 세상을 멀찍이 떨어져 관찰하며 자신만의 호흡을 가다듬을 때 그는 관조적이되 더 이상의 나아감을 거부한다.
마오로 상징되던 진리의 빛이 꺼진 자리에서 ‘진리’ 그 자체가 회의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관조는 절망한 자의 외피로서 상실의 시간을 안온하게 덮어준다. 막다른 곳에서 되돌아보는 건 자신이 걸어온 길이다. 정치적 고양의 순간, 그 배후에는 개개인마다 조금씩 다른 폭력의 서사가 숨어 있었다. 교사를 반동분자로 몰아 조리돌림하고, 오래된 상점의 간판을 부수고, 아무 식당에나 들어가 무전으로 먹고 마시며 거리를 활보하던 홍위병은 끝내 주도권 싸움에 휘말려 서로를 향해 무장투쟁을 전개했다.
천카이거 감독의 이력은 좀 더 심란하다. <바다 노을>(海霞), <청춘의 노래>(春之歌), <양가의 여장군>(楊門女將) 등 영화사에 굵직한 작품을 올린 저명 영화감독인 천화이아이(陳懷, 1920~1994)를 아버지로 둔 그는 문혁 당시 공개석상에 올라 친부를 비판한 경력이 있다.
1989년 발간된 자서전 <소년 카이거>(少年凱歌)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내 인생의 중요한 경험들을 문화대혁명 시절에 얻었다. 문혁은 내 자신을 인식하는데 도움을 줬다.” 여기서 그 경험과 인식의 내용을 일일이 추론하는 것은 한 인간에 대한 결례가 될 것이다. 다만 천카이거의 필모그래피 <아이들의 왕>에서 <패왕별희>까지, 계속해서 문혁의 언저리를 맴도는 족적을 통해 그 무게를 헤아릴 뿐이다.
천카이거는 중국이 낳은 오이디푸스다. 그런데 20세기 중국의 오이디푸스는 고대 그리스의 오이디푸스보다 더 기구한 사연을 지닌다. 그리스의 오이디푸스는 자기 눈알을 빼고 세상천지를 헤매는 동안 오히려 희열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속죄를 허락받은 자의 희열. 하지만 중국의 오이디푸스는 원초적 아비에 대한 죄책감을 느낄 틈도 없이 더 강력한 아비인 마오에 의해 최고의 아들로 칭송되다가 ‘살해’ 당했다. 아비를 넘어선 아들이 다시 ‘아비’를 숭배하다가 처참히 응징되는 20세기 중국의 신화.
<아이들의 왕>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감독의 분신이기도 하다. 그런데 천카이거는 스크린 위의 어린 자아를 자꾸 프레임 안에 가둔다. 생산대의 헛간에서, 교실의 창가에서, 숙소의 문에서. 네모난 틀 안에서 주인공은 늙어버린 눈빛으로 스크린 밖의 천카이거를, 그리고 우리를 응시한다. 그리고 어느 밤, 캄캄한 어둠을 뚫고 노루 한 마리가 찾아온다. 주인공은 문을 열고 나와 노루와 대면한다. 그 투명한 노루의 눈을 한참 동안 가만히 들여다본다. 이 초현실적인 장면이 우리를 위로해주는 것은 우리 역시 미처 속죄하지 못한 기억을 하나씩 품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결국 해자왕은 당 간부와의 대질 끝에 학교에서 쫓겨난다. 순백의 아이들. 말하는 대로 따라 하고, 어른의 말을 의심할 줄 모르고, 앞으로는 더 좋은 날들이 있을 거라고 믿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과 함께 해자왕은 마지막으로 노래한다.
“분발하자. 머리를 어깨 위에 메고. 글은 스스로 쓰자, 스스로 쓰자.”
어슴푸레한 노을빛 들판 위에서 울리는 아이들의 청아한 목소리는 감독이 혹독히 견디어온 시간과 오버랩되어 묵직한 울림을 전한다.
“왕푸야, 앞으로는 그 무엇도 베끼지 마. 사전도 베끼지 마.”
농아 아버지를 대신해서 그의 말이 되고 그의 뜻이 되고자 열심히 공부하는 왕푸에게, 날마다 찾아와 밤늦게까지 사전을 베끼고 가는 왕푸에게, 주인공이 떠나면서 남긴 메시지다.
해자왕이 산길을 걸어나간다. 모든 순간이 삶의 마지막인 듯 처절했던 젊은 날을 뒤로하고. 언제나 그렇듯 마지막이 결코 진짜 ‘마지막’은 아니라고 천카이거 감독은 프레임 가득 굽이굽이 산길을 수놓으며 스크린 밖의 우리에게 말한다. 곧 시뻘건 화염이 온 산을 휘어 감고 불안스레 울리는 종소리, 여자 아이의 날카로운 비명이 이어진다. 세상을 향한 분노이자 꼭두각시처럼 운명의 놀음에 춤을 추던 자기에 대한 분노이다. 관조적 시선 안에 꿈틀거리던 죄의식과 회한이 한순간에 터져 나온다.
문혁이 종결된 해가 1976년, <아이들의 왕>이 제작된 게 1987년, 그리고 또 3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프로이트는 <토템과 터부>에서 살해한 아버지에 대한 사후적 복종에 관해 언급한 바 있다. 아비에 대한 증오로 그를 살해한 아들이 시간이 흐르면 죄의식과 더불어 죽은 아비를 부활시킨다는 것이다. 최근 중국의 아들들도 죽은 아비를 찾아 헤매는 듯하다.
마오쩌둥을 회고하는 24부작 드라마 <대장정>(大長征)이 뜨거운 호응 속에 방영되고, 마오쩌둥 탄생 110주년 기념우표가 발매되는 등 마오에 대한 뒤늦은 사랑이 식을 줄을 모른다. 아비에 대한 목마름은 그래도 채워지지 않는 것일까? 이번엔 공자이다. 학자들은 공자 사상의 현대적 가치를 주장하고, 중국 정부는 유네스코를 통해 공자를 세계 10대 문화 명인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세계 곳곳에 설치된 중국어 교육기관의 명칭 역시 ‘공자학원’이다. 공자가 부활하고 있다. 문혁 당시 전통문화에 대한 비판으로 홍위병들이 공자의 무덤까지 파헤쳤던 사실을 떠올리면 아이로니컬하지 않을 수 없다.
“옛날에 산이 하나 있었는데, 그 산에는 절이 하나 있었지. 절에는 늙은 스님이 살았고 이야기를 해줬지. 무슨 얘기를 했을까…?”
<아이들의 왕>의 엔딩 신에서는 불타는 산을 향해 마치 주문과도 같은 목소리가 거듭된다. 산에 사는 노승이 이야기한다. 산에 사는 노승에 대해. 그리고 이야기 속의 노승은 또 이야기한다. 한 노승에 대해.
이야기는 언제나 처음인 것처럼,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 ‘아비’의 망령에서 벗어나야 하는 이유다.
저자 이승희 李勝喜
이승희
한국과 중국의 경계선에 서 있는 사람이다. 중문학과 국문학을 공부한 뒤 중국으로 건너가 10년을 머물렀다. 태생인 듯, 모든 ‘사이’에 있는 것들에 흥미로워 한다. 영화의 교조적인 메시지를 빗겨가며 끊임없이 재미를 찾아 움직이는 중국 관객들의 탄생 비화를 살펴 박사논문, <대중의 형성-<대중전영>(1950~1966) 중 ‘몸’ 이미지에 관한 연구>(북경대, 2010)를 썼다. 이후 한·중 대중문화의 접점을 찾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발표한 논문으로는 「무저항의 저항-80~90년대 위화와 장정일의 작가의식 비교 연구」, 「‘중화민족’의 정념적 재구성-1930년대 옌안의 성자 노먼 베쑨에 관한 서사 연구」, 「전쟁의 정치적 변용: 50~60년대 ‘항미원조’ 전쟁영화를 중심으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