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틸라이프>(2006)의 원제목은 ‘三峽好人', 싼샤에 사는 착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착한 사람'이라니, 그리고 그걸 제목에까지 넣다니, 무섭기까지 한 뚝심이다. 착한 사람이라는 칭찬을 들어보신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아마 세상 살기가 좀 힘든 분일지도 모르겠다. 이 시대에 ‘착하다'는 건 그다지 고무적인 가치는 아니니까. ‘성장'과 ‘발전'을 모토로 세계 시장을 공략 중인 중국 영화계에서 지아장커는 이례적인 감독이다. 그는 줄곧 중국 사회의 그늘로 파고 들어가 소외된 사람들을 스크린에 담아왔다. 이 영화에서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착한 사람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는데, 광부 한산밍이 바로 그이다.
한산밍은 고향 펀양에서 3000 위안(한화 50만 원)에 여자를 샀다. 가난한 그가 장가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딸을 낳고 한동안 잘 살았다. 그러다 ‘정의'와 ‘법'의 이름으로 들이닥친 경찰에게 아내를 빼앗겼다. 원하지 않게 ‘자유'의 몸이 된 아내는 딸을 데리고 친정으로 돌아갔다. 그곳에서 그녀를 기다린 건 더한 가난이었다. 그녀는 오빠의 빚 탕감을 위해 늙은 어부에게 넘겨졌다.
16년이 지나, 아내와 피붙이를 잊지 못하던 한산밍이 싼샤를 찾아온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사기를 당하고, 숙박업소에서는 바가지를 쓴다. 어리숙한 한산밍은 도시의 좋은 먹잇감이다. 우여곡절 끝에 아내를 찾지만, 뱃일과 병든 시어머니 수발에 쪼글쪼글 늙어버린 그녀 앞에서 먹먹해진다. 아내를 데려가기 위해 새 지아비인 어부와 협상을 한다. 3만 위안(한화 5백만 원)을 주면 여자를 포기하겠다는 어부. 한산밍은 아내에게 돈을 구해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다시 먼 길을 떠난다.
마지막 밤, 한산밍과 새로 사귄 친구들이 이별주를 나눈다. 조심스러운 질문.
“그곳에 가면 하루에 얼마를 주는가?”
“200 위안(한화 3만3000원)”
지금 받는 금액의 4배가 넘는 보수다. 눈이 번쩍 뜨이는 친구들. 하나둘씩 따라나서겠단다. 의기양양해져 건배하는 그들. 잠시 후 한산밍이 말한다.
“그런데…, 탄광은 아주 위험해. 내가 떠나올 때 산시 사람 두 명이 죽었어. 일년에 열 몇은 죽어. 아침에 들어가면서 저녁에 나올 수 있을지 알 수가 없는 데야.”
다들 말이 없다. 침묵, 그리고 또 침묵. 온밤을 뜬눈으로 새웠을 그들이 그래도 날이 밝자 봇짐을 꾸려 한산밍을 따라나선다.
폐허가 된 건물 사이에서 한 사내가 외줄 타기를 하고 있다. 가느다란 밧줄 위에 몸을 싣고 한 발씩 떼어나간다. 나아가기도 되돌아가기도 힘든 밧줄 위. 아슬아슬한 행보가 이어진다. 한산밍은 친구들을 앞서 보낸다. 허공 위에서 외롭게 싸우는 그를 한참 동안 바라다본다. 위태로운 생이다. 죽음을 무릅쓰고 나가야 하는 건 총성이 울리는 전쟁터뿐만이 아니다. 생계를 위한 곳곳에서 날마다 전투가 벌어진다.
<스틸라이프> 스틸컷
<스틸라이프>가 배경으로 삼는 싼샤는 중국의 자랑이자 치부이기도 하다. 싼샤의 협곡은 수려한 정경으로 유명하다. 10위안짜리 중국 지폐 뒷면을 장식할 정도다. 하지만 옛 절경은 사라졌다. 말 그대로 ‘상전벽해'가 되었다. 1994년부터 2006년까지 싼샤 지역에 대형 댐이 건설되었다. 마오쩌둥 시기부터 기획되어온 중국 정부의 야심작이었다. 1800억 위안(한화 30조 원)의 건설비용으로 발전량 988억 kWt를 생산해내기에 이르렀다. 세계 최대 규모이다. 상하이에서 충칭까지 대형선박의 운항이 가능해졌다. 홍수방지의 효과도 있다는 자랑스러운 보도가 이어졌다. 이와 동시에 무리한 개발로 지진이나 산사태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생태계가 파괴되었다는 사실은 은폐되었다. 수천 년간 형성된 삶의 터전이 물속에 가라앉는 바람에 120만 명의 주민이 제대로 된 보상 없이 강제로 이주당했다는 사실 역시 외면당했다. 내가 아는 한 지아장커 감독이 유일하다. 중국 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이토록 대담하게 마주한 이는.
<스틸라이프> 스틸컷
<스틸라이프> 스틸컷
‘리얼리즘의 대가'임에도 불구하고 지아장커 감독은 종종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나든다. 한없이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스크린 곳곳에서 장난을 치는데, 대낮에 창공을 가로지르는 유에프오라든지, 빨래를 널어놓은 베란다 너머로 갑자기 로켓처럼 발사되는 건물 신이 그러하다. 그런데 이 장면을 지켜보는 등장 인물 표정이 압권이다. 바람결에 검은 쓰레기봉투 날리는 걸 바라보듯 무심하기 그지없다. 사실 그렇다. 설령 그런 일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그게 뭐 그리 대수로운 일인가? 우리 역시 최근 몇 년간 그보다 더 황당한 일들을 매일 뉴스로 접하지 않았던가. 참, 너무나 비현실적이어서 현실적인 세상에 살고 있다. 이불 밖이 위험하다. 귀하께서는 오늘 하루 직장에서, 학교에서, 사회 곳곳에서 또 얼마나 부조리한 일들을 감내하셨을지.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승희 李勝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