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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장이머우의 ‘행복한 날들’, 참을 수 없는 거장의 위로

등록 2016-07-02 13:07수정 2016-07-15 15:09

이승희의 중국영화 이야기4/장이머우의 <행복한 날들>
장이머우는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스승이었던 우톈밍 감독의 <오래된 우물(老井)>에서 주인공으로 열연할 당시, 그는 단 하나의 컷만으로 감독이 아닌 배우로서의 가치도 입증해냈다. 척박한 고향 땅, 파도 파도 나오지 않는 물줄기, 사고로 우물 안에 갇혀 한 줌 빛을 좇아 위를 치켜다 보는 장이머우. 그 강파른 얼굴과 날카로운 눈빛은 화면을 찢고 나올 듯 강렬했다. 감독 장이머우의 필모그래피 역시 ‘거장’의 칭호가 무색하지 않다. 정말 한 명의 감독이 다 만들었나 싶다.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변전에 변전을 거듭해왔다. 그런데 <영웅>의 엔딩신에서 나도 모르게 탄식이 흘러나왔다. 진시황을 시해하려던 자객이 칼을 거둔다. 천하를 품고자 하는 원대한 이상에 감응해서다. 조용히 궁궐 문을 나서는 자객. 곧이어 수백 개의 화살에 온몸을 관통당한다. 그 숭고한 죽음에 황제는 눈물을 글썽인다. 장이머우가 추종하는 가치는 너무도 자명해서 해설이 필요 없을 정도다. 그는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행복한 날들' 포스터
'행복한 날들' 포스터

2000년 작 <행복한 날들>(幸福時光, Happy Time)은 그 단서를 제공한다. 아슬아슬 유지해온 비판의 예봉이 이 영화에 이르러 비로소 완전히 사라졌다. 설정 자체만 보면 다분히 문제적이다. 주인공 조씨는 쉰 살이 넘도록 장가를 못 갔다. 가난해서다. 날씬한 여자를 좋아하지만, 그네들은 조씨를 곁눈질조차 안 한다. 조씨는 할 수 없이 뚱보 여인에게 구애한다. 첫 만남에서 당당히 5만 위안을 요구하는 여자. 다급한 마음에 조씨는 있는 게 돈뿐인 듯 허풍을 떤다. 황금만능 풍조로 잠식되어가는 중국 사회의 속내가 초장부터 드러난다.

하지만 국민배우이자 코미디의 대가, 자오번산(趙本山)이 투입된 영화가 아닌가. 시종일관 유쾌함을 잃지 않고 인정 어린 에피소드가 이어진다. 조씨는 매일 장미꽃을 들고 여자를 찾아가는데, 그녀의 집에서 의붓딸 우인을 처음 만난다. 처치 곤란이었던 맹인 소녀를 엉겁결에 떠맡은 조씨는 가난뱅이인 게 들통날까 봐 호텔 지배인 행세를 한다. 공장 작업실을 안마실처럼 꾸미고 동료들에게 푼돈을 쥐여주며 우인의 안마를 받게 한다. 우인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고 출퇴근 길을 동행하며 자신의 숙소까지 내어주는 조씨. 옥신각신 다투기도 하지만 차츰 둘 사이엔 부녀와 같은 정이 싹튼다.

  '행복한 날들'  스틸컷
'행복한 날들' 스틸컷
 

결국 뚱보 여인은 돈 많은 남자를 따라 떠난다. 하지만 조씨와 우인의 관계는 지속된다. 조씨와 동료들은 가여운 맹인 소녀를 위해 연기를 계속한다. 조씨는 딸을 버리고 심천으로 도망간 친부를 대신해서 거짓 편지를 쓴다. 공교롭게도 바로 그날 조씨는 교통사고로 의식을 잃는다. 동료들이 편지를 가지고 숙소로 찾아가지만 우인이 이미 떠난 후이다. 녹음기에 남긴 우인의 고백. “안마실도 가짜, 손님도 가짜, 종이돈도 가짜인 걸 눈치채고 있었어요. 더 이상 짐이 될 수 없어 떠나려고 해요. 하지만 아저씨와 보낸 시간은 살아오면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어요.” 동료들은 숙연해진다. 이씨가 의식불명 된 조씨를 대신해서 마치 우인에게 말하듯이 녹음기에 대고 편지를 읽는다. 돈을 많이 벌어와 눈을 고쳐주겠다는 약속. 결코 포기하지 말라는 조언. “네 자신을 믿으면 어떠한 시련도 극복할 수 있단다. 모든 게 다 좋아질 거야.” 조씨와 우인은 상대방의 부재 앞에서 마지막 진심을 나눈다. 잔잔히 깔리는 쌍팔년도 감성의 음악이 감동 제조에 일조한다.

사실 장이머우의 그간 행보는 위태로웠다. 초기 영화에서 매매혼, 근친상간, 축첩제도를 다루며 중국문화에 대한 새로운 독법을 구사할 때 그는 서구의 취미에 영합하는 오리엔탈리즘의 전수자로 간주되어 중국 지식인들의 지탄을 받았다. 강대국으로 발돋움하려는 마당에 가난하고 저열한 중국인 상이 부각되는 게 반가웠겠는가. 하지만 장이머우로서는 억울하지 않았을까 싶다. 문화대혁명 이후 80년대 중국사회는 ‘뿌리 찾기’ 열풍에 휩싸였다. 사회 근간을 재건하기 위한 새로운 동력으로 향토문화를 소환해냈다. 교조적 이데올로기에 지친 중국인들이 시골의 원시적 생명력에 매료되었던 거다. 장이머우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문제는 장이머우 영화에서 재현되는 시골이 하나의 이상향일 뿐 현실에서는 없는 곳이라는 점이다. ‘붉은 수수밭’은 결코 민중의 역량이 잉태되는 곳이 아니다. 힘겨운 노동의 현장일 뿐이다. 한국에서도 유사한 미화 작업이 진행된 적이 있다. 4.19세대 작가들 또한 환타지로서의 ‘고향’을 만들어내지 않았던가. 서울에 유학 오면서 버리고 온 가족에 대한 죄책감과 각박한 도시 생활에의 적응으로 인한 피로감이 뒤섞여 정신적 도피처를 마련해냈다. 그렇게 한·중 양국에서 애꿎은 고향이 도시 생활자를 위해 봉사해왔다.

 '행복한 날들'  스틸컷
'행복한 날들' 스틸컷
 

영화를 보는 목적이 힐링(healing)이 된 지 오래다. 장이머우가 현실 속의 농촌을 상상 속 농촌으로 대체했던 것처럼 <행복한 날들>에서는 고된 현실이 거짓 희망에 가려진다. 엔딩신에서 우인은 고층빌딩 사이를 지팡이 하나에 의지해 걸어나간다. 그녀의 여린 얼굴과 병원 침대 위의 조씨가 오버랩된다. 세상을 향한 우인의 첫걸음을 지켜보며 관객들은 한바탕 눈물을 쏟아낸다. 신파적 서사와 적절한 감동에 지친 하루살이를 위로받는다. 다시 이 사회의 톱니바퀴 안으로 들어가 부대끼고 또 부대낄 힘을 얻는다. 조씨와 우인의 우정 스토리는 그렇게 생활의 고충을 지우고 그래도 살만 한 세상이라는 안도감을 선사해준다.

거짓 희망은 절망보다 위험하다. 간절히 원해도 우주가 돕지 않는 일은 허다하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늘 녹록지가 않다. 만약 우주가 돕지 않는다면 그건 정말 우리가 간절히 원하지 않아서일까? 책임 소지의 이 기묘한 전환은 누구를 위한 발상일까. 그만 우주에서 시선을 거두고 간절히 원해도 이루어지지 않는 그 다음 스텝을 궁리해야겠다. 그러기 위해선 힐링 되어서는 곤란하다. 모쪼록 힐링 되지 말자.

이승희 李勝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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