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한겨레문학상을 받은 박서련 작가의 소설 <체공녀 강주룡>이 판소리극으로 재탄생한다. 판소리공장 바닥소리 제공
평양 을밀대 지붕에 올라 참담한 노동 현실을 고발한 실존 인물 강주룡의 일대기를 그린 소설이 ‘소리극’으로 재탄생한다. 20년 넘게 활동해온 ‘판소리공장 바닥소리’가 소설의 스토리에 창작 판소리와 춤을 곁들여 창극 형식으로 가공한 <체공녀 강주룡>이다. 2018년 한겨레문학상을 받은 박서련 작가가 쓴 같은 이름의 소설이 원작이다.
‘모던 걸’을 꿈꾸던 고무공장 여공 강주룡은 임금이 17% 삭감되자 파업을 주도하며 맞선다. 하지만 일제 경찰의 간섭으로 공장에서 이내 쫓겨나고 만다. 공장 입사 전에 만주의 무장 독립운동 단체 대한통의부에서도 활동했던 강주룡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광목을 찢어 만든 줄을 타고 12m 높이의 을밀대로 올라가 공장 노동자들의 참상을 알린다. 국내 ‘고공 투쟁의 원조’인 셈이다. 이때가 1931년이니 그의 나이 서른이었다.
이 작품은 강주룡의 비극적이고 드라마틱한 생애를 28곡의 창작 판소리로 그려낸다. 각종 콩쿠르에서 입상하며 탄탄한 실력을 다진 소리꾼들이 춤도 추고 연기도 하며 ‘1인 3역’을 소화한다. 강나현, 김은경, 임지수, 정지혜 등 4명의 소리꾼이 강주룡 역을 나눠 맡는다. 강나현 소리꾼은 극의 전개를 해설하고 끌어가는 ‘도창’의 역할도 겸한다. 바닥소리 이혜정 프로듀서는 “우리가 모두 강주룡이란 작품 취지를 살리려고 4명이 번갈아 주인공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2002년 출범한 ‘판소리공장 바닥소리’는 사회성 짙은 현실 고발적 메시지를 판소리로 풀어내왔다. 판소리공장 바닥소리 제공
연기와 안무는 각 분야 전문가들이 참여해 작품의 완성도를 끌어올린다. 연극과 뮤지컬을 넘나들며 독특한 색채를 발산해온 이기쁨이 연출을 맡았다. 뮤지컬 <비밀의 화원>, 연극 <1인용 식탁>이 그가 연출한 작품이다. 뮤지컬 <적벽>에서 화려한 군무를 펼쳐내 관객을 사로잡은 김봉순은 안무가로 나섰다. 판소리가 주축인데 반주는 서양 악기가 주도한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바닥소리와 오래 협업해온 김승진 음악감독이 직접 건반을 연주하며, 여기에 기타와 베이스, 바이올린을 더해 전체적인 사운드에 현대적 감성을 덧입힌다. 국악기 연주자는 북을 치는 고수가 유일하다.
‘판소리공장 바닥소리’는 2002년 출범 이후 사회성 짙은 현실 고발적 이야기를 판소리로 풀어왔다. 단체 이름도 ‘밑바닥 사람들 소리를 내주는 것이 판소리’라는 뜻이다. 통일의 꿈을 담은 <닭들의 꿈, 날다>, 간첩조작 사건을 그린 <닥터 2478>, 전태일을 조명한 다큐판소리극 <태일> 등을 만들었다. 5·18을 다룬 1인 창작 판소리극 <방탄철가방―배달의 신이 된 사나이>도 호평을 받았다. 바닥소리 대표 정지혜 소리꾼은 “국내 최초로 고공 투쟁을 벌인 역사 속 인물 강주룡을 통해 바닥소리만의 방식으로 노동자들의 소리를 세상에 전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오는 31일부터 4월2일까지 세차례 공연한다. 서울 종로구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임석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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