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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감춤의 미학으로 표현한 ‘자유’

등록 2009-10-05 19:47수정 2009-10-05 21:39

관객 상상에 맡긴 얼굴 사라 문의 사진 속 농밀한 어둠이 보는 이의 숨구멍을 넓혀줄 때가 있다. 이 사진에서 여인의 얼굴은 반쯤 가려 있기에, 나머지 반은 관람자의 상상에 맡겨진다. 작품 제목: 맨 뒤에서 둘째.
관객 상상에 맡긴 얼굴 사라 문의 사진 속 농밀한 어둠이 보는 이의 숨구멍을 넓혀줄 때가 있다. 이 사진에서 여인의 얼굴은 반쯤 가려 있기에, 나머지 반은 관람자의 상상에 맡겨진다. 작품 제목: 맨 뒤에서 둘째.
[내가 느낀 사라문] 시인 황학주

어느 해, 사하라사막 봉사활동을 마치고 귀국길에 파리를 경유하게 되었다. 일행과 함께 들른 파리 5지구 근처의 서점에서 사라 문의 흑백사진 한 점을 만난 것은 그때였다. 시계가 걸린 길모퉁이 풍경인데, 인도만큼 좁은 차도의 포석들 위에 빗물이 어룽져 있고, 뭉개지고 어둑한 시야 속으로 그것은 완벽하게 사라 문의 존재를 재현하고 있었다. 파리의 한 골목에서 만난 꿈같은 <다섯 시 오 분>이었다. 풍경이 애매해지면서 가장 뚜렷한 이미지가 나타나는 순간을 기다리는 사라 문의 사진들은 미심쩍은 개념과 스토리가 들어 있어 좋다. 흐릿한 최종이미지가 드러내는 저쪽. 기억 속의 뒤쪽. 어둠까지 아름답고 황홀하다. 흔들림과 흐릿함과 겹침 등을 통해 반동이 일어난 사물과 세상을 보여주는 것이나 부자유함을 자르거나 감춰서 자유롭게 만드는 것 또한 사라 문의 장기다. 인물의 얼굴이나 턱 끝, 무릎이나 발아래 등이 감춰진 데야말로 부자유와 자유가 교차하는 자장으로 일렁인다.

폴라로이드 원판필름을 떼어낼 때 남는 흔적이나 그렇지도 않은 얼룩들이 사진에 그대로 인화물로 남아 있다. 삶이 품고 있는 공백들, 아픔 혹은 기억 혹은 침묵 혹은 군더더기 같은. 사진과 관계없이도, 아마도 무엇이든 상관없이 다른 것과 함께 움직이는 방식, 그것을 사라 문은 ‘긴장되는 흐름’이라 했는지 모른다.

패션사진 중에선 눈앞에서 막 사라지려는 듯한 모션의 사진들이 나는 좋다. 어쩌면 무언가를 기다리다 사라 문 자신의 눈이 막 감기려는 순간, 피사체가 자신의 눈을 막 가리려는 순간 셔터를 누르는 것은 아닐까. 파리의 짧은 자연광이나 텅스텐 조명을 이용하는 그의 촬영은 아차, 하는 순간에 실물이라고도 그림자라고도 할 수 없는 사물들을 만들어내는데, 그 자체가 하나의 스토리다. 대체 사라 문은 누구인가. 이 물음은 사라 문이 말한 ‘보일 수 있는 것‘을 향해 열려 있다. ‘보일 수 있는 것’의 우연은 ‘보이는 것’의 우연보다 훨씬 깊은 데서 비롯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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