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되면 경영공백” 구명논리가
“비리 최종책임도 정회장” 족쇄로
“비리 최종책임도 정회장” 족쇄로
정몽구 회장이 없는 현대·기아차그룹은?
총수의 거취를 검찰 손에 맡긴 현대·기아차그룹이 술렁이고 있다. 정 회장의 공백이 곧 그룹 전체의 ‘경영 공백’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40개 계열사에 매출 85조원, 세계 7위의 자동차회사라는 명성과는 어울리지 않는 ‘1인 지배체제’가 이런 우려를 키웠다.
계열사의 한 사장급 임원은 현대차의 힘이 총수 체제에서 나온다고 강조한다. 자동차회사는 신제품 하나 개발에 수천억원, 공장 한 곳 세우는 데 최소 1조원 이상이 투입되는 고위험 산업으로, 그룹에서 위험을 감수하고 신속 과감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정 회장 말고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대·기아차는 정 회장의 검찰 소환에 즈음해 마치 ‘항의시위’를 하듯, 주요 사업 현안들을 줄줄이 미루거나 취소했다. 또 검찰 수사에 따른 기업 이미지 추락, 이에 따른 국내외 영업전선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현대차의 경우 이달 들어 21일 현재까지 수출 출고실적이 전달 같은 기간보다 4.7% 줄었다. 회사 관계자는 “정 회장이 구속되고 재판을 받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으면 국내외 영업전선의 동요가 심각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대·기아차의 이런 논리가 역설적으로 정 회장에게는 덫이 되고 있다. 정 회장 개인의 ‘제왕적 힘’으로 움직이는 조직임을 스스로 시인하는 바람에 검찰 수사의 표적도 자연스럽게 정 회장으로 좁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현대·기아 쪽은 정 회장이 구속될 경우 당장 그룹을 이끌어갈 대안이 없다고 말한다. 정의선 기아차 사장의 조기 ‘등극’이 쉽게 생각해볼 수 있는 대안이다. 하지만 정 사장도 불법 혐의의 당사자인데다, 주력 계열사에 대한 지분율, 경영능력 등 여러가지 면에서 정 회장을 대신하기에는 아직까지 역부족이다.
그룹 체제를 해체하고 계열사별 독립경영으로 전환하는 것도 여의치 않다고 핵심 경영진들은 말한다. 계열사들이 기능별로 분업해 그룹을 형성하고 있는 구조여서, 전체를 통합·지휘하는 구실을 하는 사람이나 조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 회장 스스로 싹이 보이는 후보군을 용납하지 않아 이런 구실을 할 전문경영인 후보를 그룹 안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제왕적 경영의 폐해와 부작용 또한 적지 않다는 점에서, 현대·기아차그룹의 발전을 위해서도 투명하고 효율적인 시스템으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그룹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현대차 한 임원은 “어떤 방식이든 그룹의 지배구조와 경영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점에 모두 동의한다”며 “그러나 정 회장이 구속될 경우에는 자칫 경영진들끼리 책임 공방에다 수습 과정에서 주도권 다툼이 벌어져 큰 내분이 생길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박순빈 기자 sb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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