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내출혈로 31일 권력을 동생 라울 카스트로 국방장관(오른쪽)에게 임시로 넘겨준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왼쪽). 사진은 2004년 7월1일 두 사람이 쿠바 의회에 참석한 모습. 아바나/AP 연합
위 내출혈로 수술…“상태 심각” 관측도
47년간 사회주의 체제와 권력을 지키고 있는 피델 카스트로(79)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위 내출혈로 수술을 받는 등 심각한 건강 이상을 보이고 있다. 카스트로는 처음으로 동생 라울 카스트로(75)한테 권력을 임시적으로 넘겼다. 카스트로의 쿠바를 40년 동안 봉쇄하며 옥죈 미국은 상황 전개에 촉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지난달 31일 밤(현지시각) 비서가 텔레비전에 나와 대신 읽은 대국민 서한에서 카스트로는 “수술로 인해 몇 주간 쉴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고 <에이피(AP) 통신>이 1일 보도했다. 카스트로는 “과도한 스트레스가 장을 심하게 해쳤고, 출혈이 계속돼 복잡한 수술을 받아야 했다”고 밝혔다. 그는 최근 아르헨티나에서 남미공동시장 정상회담에 참석하는 등 과로한 게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카스트로는 국가수반 지위를 동생인 라울 카스트로한테 넘긴다며, “임시적 성격”의 조처라고 밝혔다. 형과 함께 혁명운동을 벌인 라울 카스트로는 국가평의회 수석부의장과 국방장관을 맡고 있고, 1997년 후계자로 지명됐다.
카스트로의 건강에 대한 의문은 2001년 6월 연설 도중 혼절하는 모습이 눈에 띄며 일기 시작했다. 2004년에는 넘어져 슬개골과 팔이 부러졌다. 지난해에는 파킨슨병 주장이 나오는 등 건강 이상설이 줄을 이었으나, 그는 일축해 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권력을 임시이양했다는 점에서, 심각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오는 13일 80살 생일을 앞둔 그는 12월의 쿠바혁명군 창군 50돌 기념일까지 생일 기념식을 미루라고 당부했다.
스페인 이민자인 아버지와 쿠바인 어머니를 둔 카스트로는 학생과 변호사 시절을 거치며 반독재 운동과 혁명 활동을 시작했다. 1959년 1월1일 그는 체 게바라 등과 함께 미국의 후원을 받는 독재자 풀헨시오 바티스타를 몰아냈다. 1953년 몬카다병영 습격사건 재판 때 “역사가 나를 무죄로 하리라”는 유명한 법정진술을 했다. 1961년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반혁명 공작인 피그스만 침공사건을 물리쳤고, 이듬해에는 소련 미사일 배치와 미국의 반발이 낳은 핵전쟁 위기를 넘기는 등 끊임없는 도전을 헤쳐 왔다.
카스트로는 현존 국가원수 중 1952년 왕관을 쓴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 다음으로 긴 통치기간 때문에 미국 등에서 독재자로도 일컬어진다. 한편으로는 해안에서 불과 144㎞ 떨어진 미국의 턱 밑에서 사회주의를 고수하고 미국에 당당하게 맞서기에, 중남미 등에서 영웅적 이미지를 갖고 있다.
피터 웟킨스 백악관 대변인은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며 “카스트로의 건강상태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쿠바가 자유를 되찾는 날에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도 아바나 시민들은 카스트로의 수술에 놀라는 표정을 지었지만 “곧 괜찮아질 것”이라며 일상에 충실한 모습을 보인다고 <에이피 통신>이 보도했다. 쿠바인 망명지의 본거지인 미국 마이애미에서는 망명자들이 몰려나와 옛 쿠바기를 흔들며 기뻐하고 있다고 통신은 전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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