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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정부 어딨나”…성난 민심 폭동 직전

등록 2010-01-19 08:20수정 2010-01-19 08:23

권태호 특파원
권태호 특파원
[아이티 지진참사] 권태호 특파원, 포르토프랭스를 가다
구호품 실은 차량마다 주민들 몰려 통제불능
대통령궁 앞서 총격도…아이티 비상사태 선포
17일 오전11시(현지시각), 아이티인들에게 직접 나눠주기 위한 물, 크래커, 생리대 등을 실은 한국기독교연합봉사회의 트럭이 무장한 유엔군과 함께 포르토프랭스 시내를 달렸다. 혼란스런 상황 속에 빚어진 커뮤니케이션 잘못으로 트럭은 애초 예정된 장소가 아닌 곳에 도착했다. 줄을 서던 사람들 숫자가 점점 불어나면서 통제불능 직전 상태에까지 이르렀다. ‘왜 나눠주지 않느냐’고 사람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뒷자리에 선 사람들은 혹 자신들에게까지 차례가 안 올까봐 조바심을 내는 모습이 역력했다. 주변의 유엔군 역시 통신착오로 다른 곳으로 빠져나간 상태였다. 심상치 않은 상황에 봉사회는 곧바로 그곳을 떠나야 했다.  


이날 봉사회는 직접 나눠주려는 계획을 포기하고, 이 물품을 아동병원과 채리티 고아원에 나눠줬다. 별도로 병원에는 링거 1만3000병 등 3만달러어치의 의약품을 전달했다. 구호단체들이 가급적 직접 전달하려는 이유는 아이티 정부가 무정부상태여서 ‘당국자’들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도대체 어디에 있나.” 지난주 이후 외신과 인터뷰를 하거나 국제사회에 호소를 하고 있는 르네 프레발 아이티 대통령은 주말에도 아이티를 찾은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과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등을 직접 만났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는 한번도 재난현장을 직접 방문하거나, 국민들을 상대로 성명조차 내지 않았다고 사람들은 전했다.

 1월말까지 정부가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지만, 포르토프랭스 중심부에선 물과 음식 등 생필품 부족에 지친 아이티인들이 폭동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대통령궁 앞에서는 헬기로 구호물자를 나눠주다 물품을 서로 차지하려는 이들이 싸우면서 총기와 칼이 난무하는 준폭동 상태까지 일어났다는 소식까지 들렸다. 아이티 경찰은 현재 대통령궁 인근 라빌 지역에 행인들이나 언론인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생존자 찾는 119구조대 한국 중앙119구조대가 18일 오전(한국시각) 아이티의 포르토프랭스 시내 아이티중앙은행 건물 잔해 속에서 첨단 장비와 구조견을 활용해 생존자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다.  포르토프랭스/소방방재청 제공
생존자 찾는 119구조대 한국 중앙119구조대가 18일 오전(한국시각) 아이티의 포르토프랭스 시내 아이티중앙은행 건물 잔해 속에서 첨단 장비와 구조견을 활용해 생존자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다. 포르토프랭스/소방방재청 제공

길거리엔 구호물자보다는 총을 든 유엔군이 계속 이동하는 모습만 보인다. 긴급 의료센터가 세워져 긴급환자들이 후송되고 있는 소나피 공단도 마찬가지였다. 이곳에 가면 음식과 약을 구할 수 있다는 생각에 몰려든 100여명의 아이티인으로 공단 정문 앞은 발디딜 틈이 없었다. 입구는 장갑차와 무장한 유엔군이 지키고 있다.

 17일 포르토프랭스를 찾은 반기문 총장이 대통령궁 앞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동안에도 일부 성난 아이티 군중들은 먹을 것과 물, 잠잘 곳이 필요하다며 아우성을 지르기도 했다. 반 총장은 “많은 사람들이 절망에 사로잡혀 있고 점점 인내심을 잃어가고 있다”며 “아이티 국민들이 좀더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줄 것을 진심으로 당부한다”고 말했다. 현재 유엔 식량프로그램이 향후 2주 내에 100만명분의 식량 공급을 준비중이라고 밝힌 그는 폭동을 피하려면 어느 정도 식량이 필요하느냐는 질문에 “약 300만~350만명분의 식량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된다”고 답했다.


 포르토프랭스 탈출 러시는 미국인들에게도 이어지고 있다. 민간항공의 운항이 전면금지된 공항에는 유엔군 관계자, 일부 언론인, 그리고 미국 국적자에 한해서 최소한의 비행기 탑승이 이뤄지고 있다. 드세루베쥬 국제공항에는 비행기에 탑승하려는 미국인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필라델피아로 간다는 윌리스 델슨은 “나는 아이티에 살지만, 딸아이(3살)가 미국에서 태어났다”며 “비행기에 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공항에는 각국의 군인들이 텐트를 치고 임시기지를 설치하고 있다. 캐나다, 영국, 프랑스, 태국 등 전세계 각국의 군인들이 속속 집결하고 있다. 또 공항 한쪽에는 <에이피>(AP) 통신, <유로비전> 등 언론사들이 위성방송 장비를 가져와 현지 생중계를 하고 있었다.

 공항 바깥에는 100여명의 아이티인들이 늘어서 외국언론인 등에게 다가가 “도움이 필요하냐? 도움을 주겠다”며 접근하기도 한다. 또 길거리에서도 외국인처럼 보이는 사람에게는 아이티인들이 접근해 “길 안내를 해주겠다”고 하며 엉뚱한 길로 데려가려 하는 등 점점 돈과 장비를 가진 외국인들이 표적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그나마 현재 시내 대로변은 최소한의 치안이 유지되고 있고, 특히 유엔군이 주둔한 공항 근처 등은 안전한 곳으로 인식되고 있다. 다만 재래시장이 있는 아사린 시장 주변과 대로변 뒤쪽 골목길 등은 여전히 치안부재 상태여서 외국언론들도 거의 접근을 못하고 있다. 또 중장비가 들어갈 수도 없어 복구도 아직 손을 못대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에서도 구호와 원조의 손길은 계속 이어졌다. 아이티에는 한국기독교연합봉사회 외에도 굿네이버스, 기아대책본부 선발대 등이 활동하고 있고, 한국국제협력단과 119구조대는 18일부터 매몰자 구조와 부상자 치료에 나선다.

현재 이들 자원봉사자들과 한국 언론인들의 베이스기지는 아이티에서 선교사업을 하는 백삼숙 목사, 박병준 선교사, 탁형구 목사 등 세 분의 목사·선교사님들이 거의 전담하다시피하고 있다. 이들은 숙식과 차편을 제공하는 한편, 치안부재 상태에서 자원봉사자들과 언론인들이 그나마 활동할 수 있도록 최대한의 배려를 하고 있다.

아이티 정부는 매장한 주검만 7만구가 넘는다고 밝혔다. 사망자는 15만~20만명에 달할 수도 있다고 추정하고 있다. 수습되지 못한 주검들에서 진물이 나오는 거리를, 먹을 것과 마실 것 등 음식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은 계속 배회하며, 민심은 점점 흉흉해지고 있다. 버스 정류장에는 양손에 짐을 든 사람들이 100m 이상 늘어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포르토프랭스/권태호 특파원 ho@hani.co.kr

17일 구호 트럭에서 분배되는 식량을 서로 먼저 잡으려고 달려들어 팔을 뻗는 아이티 페션빌 주민들. (AP=연합뉴스)
17일 구호 트럭에서 분배되는 식량을 서로 먼저 잡으려고 달려들어 팔을 뻗는 아이티 페션빌 주민들. (AP=연합뉴스)

포르토프랭스의 지진 생존자들이 16일 약탈자들이 한 잡화점 지붕에서 던지는 물품을 서로 차지하려고 몰려들어 혼란이 빚어진 가운데 한 남성이 물건을 쥔 다른 남성의 손을 깨물고 있다. (EPA=연합뉴스)
포르토프랭스의 지진 생존자들이 16일 약탈자들이 한 잡화점 지붕에서 던지는 물품을 서로 차지하려고 몰려들어 혼란이 빚어진 가운데 한 남성이 물건을 쥔 다른 남성의 손을 깨물고 있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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