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9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사우디아라비아의 살만 국왕과 전화통화를 하고 있다. 워싱턴/EPA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반이민·난민’ 행정명령은 트럼프 행정부의 혼선과 난맥상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속전속결을 통한 성과 올리기에 집작하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에 제동을 걸 제도권 정치세력도 아직 눈에 띄지 않는다.
이번 행정명령은 행정부 안에서조차 제대로 조율되거나 검토되지 않고, 일방적으로 공개됐다. 담당부처인 국토안보부의 존 켈리 장관이나 고위 관료들도 최종안이 완성된 직후에나 행정명령을 볼 수 있었다. <시엔엔>(CNN) 방송은 29일 “트럼프의 (반이민·난민) 행정명령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 사람들이 행정부 내부에 거의 없었다”며 “이번 사태는 연방정부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운영하는 행정부의 위험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처음에 트럼프가 서명한 행정명령을 보면, 입국금지 국가를 명시하지 않고 ‘특별한 관심국가’라고만 적어놓았다. ‘관심국가’가 이란, 이라크 등 무슬림 7개국이란 사실은 몇시간 뒤 국토안보부의 ‘법률적 해석’을 거쳐 정해졌다. 게다가 국토안보부는 “입국금지 대상에 영주권자는 포함되지 않는다”며, 각국 항공사들에게 탑승허용 지침을 보냈다. 하지만, 스티브 배넌 백악관 수석전략가 겸 고문과 스테판 밀러 백악관 국내정책담당 국장은 “영주권자들도 2차 검색을 한 뒤에 사례별로 입국을 허용”하도록 국토안보부의 지침을 뒤엎었다. 그래서 국토안보부 지침에 따라 탑승했던 영주권자들은 미국 입국 뒤 공항에서 억류됐다.
이런 혼란에 더해 ‘외국인 미국 방문객들에게 웹사이트와 소셜미디어 방문기록 및 휴대전화 연락처 공유를 요구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는 등 트럼프의 공세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분열되든 말든, 열성 지지층을 중심으로 한 ‘집토끼’ 전략으로 국정을 끌고가겠다는 뜻이다. 켈리엔 콘웨이 백악관 선임고문도 29일 행정명령이 초래한 혼란에 대해 “안보를 위해 치려야 할 작은 대가”라며 물러서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당분간 이를 제어할 정치적 세력이 형성되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민주당 쪽은 행정명령을 무효화시키기 위한 입법화를 추진하겠다고 하지만, 공화당이 상하원을 장악하고 있다. 공화당 쪽에선 존 매케인,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 정도만 공개적으로 이번 행정명령을 비판하고 있을 뿐 폴 라이언 하원의장 등 지도부들은 오히려 지지하고 있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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