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국제 중동·아프리카

베이루트서 다마스쿠스까지…고단한 피난길

등록 2006-08-05 16:26

베이루트 중남부에 위치한 타유니 광장은 육로로 레바논을 탈출하려는 사람들이 몰리는 곳이다.

레바논을 둘러싼 이웃 나라인 시리아 행 버스가 출발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지난달 12일 헤즈볼라의 자국 병사 납치에 대한 보복으로 레바논을 침공하면서 주요 도로를 모두 동강내 레바논에서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 육로는 이제 거의 다 막혔다.

베이루트에서 다마스쿠스로 갈 수 있는 방법은 지중해 연안도로를 따라 서쪽 끝의 아리다 국경통과소를 거치는 것 뿐이다. 이 노선은 이스라엘이 전쟁 초기에 파괴한 베이루트∼다마스쿠스 고속도로(109㎞)의 5배 거리(약 500㎞)이다.

평소 요금의 10배인 60달러를 내고 4일 아침 다마스쿠스 행 버스에 올랐다.

버스 요금은 전쟁 발발 후 크게 오른 국경택시 요금(600∼1천 달러)에 비해서는 저렴해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사람들이 탈출 교통편으로 주로 이용하고 있다.

오전 7시30분께 버스가 타유니 광장을 출발했다.

승객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전란을 피해 삶의 터전을 버리고 이국으로 떠나야 하는 현실에 대한 원망도 느낄 수 있었다.


부인과 딸 둘을 데리고 버스에 오른 무함마드는 "레바논 상황이 앞으로 어떻게 될 지 몰라 당분간 시리아에 머물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 동안 북부 지역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습이 적어 단순히 긴 여정이 될 것으로만 생각했던 탈출길은 순조롭지 않았다.

버스가 베이루트에서 약 20㎞ 정도 떨어진 주니에 부근에 다다랐을 때 도로에 장애물이 나타났다.

화물이 실리지 않은 트레일러 1대가 도로를 가로질러 막고 있었다.

버스 기사는 당초 가려던 길이 끊겨 막아 놓은 것 같다며 버스가 다니기 어려울 것 같은 좁은 골목길 쪽으로 차를 조심스럽게 돌렸다.

우회로를 따라 10분 정도 천천히 달리자 우회로와 나란한 간선도로의 교량 상판 일부가 붕괴하고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조금 더 가자 파괴된 교량 하나가 또 나타났다.

상판이 사라진 교량 아래쪽의 계곡에는 추락하면서 종잇장 처럼 구겨진 승용차가 보였다.

마을 주민들은 30여분 전에 이스라엘 군의 공습이 있었다고 전했다. 승객들은 눈 앞에서 갑자기 펼쳐진 끔찍한 광경에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주니에를 지나 비블로스, 트리폴리를 거쳐 아리다 국경통과소에 이르는 길은 비교적 순탄했다.

그러나 도로 주변의 마을들은 이스라엘의 공습이 집중된 베이루트 이남과 비슷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가게 문은 대부분 닫혀 있었고, 거리는 한산했다. 비블로스의 한 주민은 "평소 같았으면 피서객들로 붐볐을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루트를 출발한 지 2시간30분 만에 도착한 아리다 국경통과소에서는 이번 전쟁에 대한 시리아인들의 반응을 감지할 수 있었다.

출입국 수속을 밟기 위해 기다리던 시리아인들은 헤즈볼라 최고 지도자인 하산 나스랄라의 이름을 외치며 이스라엘에 저항하는 헤즈볼라의 싸움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그들은 그러면서 이스라엘에는 적대적인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트럭을 운전한다는 한 시리아인은 "레바논 형제들을 돕기 위해 베이루트로 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버스가 국경통과소를 지나 다마스쿠스로 이어지는 탄탄대로로 들어서자 이스라엘 공습의 희생자가 될 수도 있다는 공포에서 벗어난 승객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버스에서 만난 한 영국인은 이스라엘의 무차별적 공세로 싸움이 격화되고 있는 이번 전쟁에서 이스라엘의 안보 이익만 부각되는 경향이 있다고 개인적인 의견을 밝혔다.

레바논 남부 티레에 있는 선교학교에서 영어 교사로 일했다는 그는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공격해 사람을 죽이고 시설을 부수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되기 어렵다"며 "미국과 영국이 이스라엘을 일방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두말할 것 없이 잘못"이라고 말했다.

그는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을 추종해 이스라엘 편을 들고 있지만 이는 전체 영국민들의 의사와는 거리가 있는 것이라며 선거를 통한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돌고 돌아 다마스쿠스에 도착한 것은 베이루트를 떠난 지 8시간 50분 만이었다.

1시간이면 족한 거리를 9시간이나 걸리도록 만들어 놓은 게 이스라엘이다.

베이루트에서 다마스쿠스로 장시간 이동하면서 이스라엘이 점점 더 많은 친구를 잃어 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http://blog.yonhapnews.co.kr/medium90/

박세진 특파원 parksj@yna.co.kr (다마스쿠스=연합뉴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국제 많이 보는 기사

트럼프 ‘호주 관세 예외’에 일본 “우리 철강·알루미늄도” 기대감 1.

트럼프 ‘호주 관세 예외’에 일본 “우리 철강·알루미늄도” 기대감

‘누가 뭐래도 내가 실세’...트럼프 앉혀두고 오벌오피스에서 브리핑 2.

‘누가 뭐래도 내가 실세’...트럼프 앉혀두고 오벌오피스에서 브리핑

트럼프, 요르단 국왕에 대놓고 “미국이 가자지구 가지겠다” 3.

트럼프, 요르단 국왕에 대놓고 “미국이 가자지구 가지겠다”

D-30, 트럼프 철강 관세 실행 …BBC “한국도 영향 불가피” 4.

D-30, 트럼프 철강 관세 실행 …BBC “한국도 영향 불가피”

“이혼해도 가족”…데미 무어, 치매 브루스 윌리스 매주 찾아가 5.

“이혼해도 가족”…데미 무어, 치매 브루스 윌리스 매주 찾아가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