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버스 폭탄 테러가 발생해 3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라크 남쪽 쿠파 어시장에서 한 여인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오열하고 있다. 쿠파/AP 연합
[뉴스분석] 이라크는 어디로?
명절날 형집행 ‘이슬람 모독’
미국 우방 사우디도 ‘유감’ ‘과거 잊고 공존’ 정부 호소에도 역풍 거셀 듯30일(현지시각)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의 처형 직후, 모와파크 알루바이 이라크 국가안보보좌관은 “역사의 한 장이 마감됐다. 과거를 잊고 함께 살아가자”고 호소했다. 이날 70여명의 폭탄테러 사망자가 나오고, 고문을 받다 처형된 주검 12구가 발견됐다. 하루 평균 90여명씩 죽어 나가는 최근 상황에 비추면, 당장 큰 반발은 없었다.
하지만 후세인 제거가 과거를 잊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는 찾기 어렵다. 처형 하루만에 후세인이 묻힌 고향 도시 티크리트와 인근 아드와, 수니파 무장조직 거점인 안바르주 주도 라마디, 바그다드 북부에서는 통행금지령에도 수백~수천명이 몰려나와 복수를 다짐했다. 이라크 경찰은 후세인 처형 뒤 시아파 성지인 쿠파의 어시장에서 폭발물을 터뜨려 36명을 숨지게 한 이는 수니파 청년이라고 밝혔다. 한 수니파 성직자는 “신이 후세인을 순교자 반열에 올려놓으실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후세인은 죽었지만, 그의 유산은 어느 때보다 생생하다고 전했다.
특히 이슬람 명절인 희생제 시작일에 형을 집행한 것은 이슬람 전체에 대한 모독으로 받아들여져 역풍을 키울 공산이 크다. 이집트의 아흐람전략연구센터 연구원 에마드 가드는 <아에프페> 통신과 인터뷰에서 “사담은 도살을 기다리는 양처럼 끌려갔다”며 “그를 지지하든 않든, 후세인의 처형은 분노와 모욕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했다. 희생제는 이슬람교, 유대교, 기독교가 함께 받드는 최초의 예언자 이브라힘(아브라함)이 아들 이스마일의 생명을 바치려다 신의 계시로 대신 양을 바친 날을 기념한다. 알루바이 보좌관은 “특별한 날에 그가 처형되길 원했다”고 밝혔지만, 역설적으로 후세인에게 순교자의 ‘가시 면류관’을 씌운 셈이 됐다.
미국, 영국, 이스라엘 등은 후세인의 처형을 환영했다. 후세인의 숙적 이란도 반색했다. 반면, 유럽, 교황청, 러시아, 인도, 브라질 등과 대부분의 이슬람권 국가들은 유감을 표시했다. 리비아는 3일간의 애도기간을 선포했다. 특히 미국의 우방인 이집트와 사우디아라비아도 유감을 표명했다.
신속한 형집행은 단호한 태도를 과시하려는 이라크 정부의 의지로 보인다. 그의 복권을 꾀하는 세력의 의지를 꺾겠다는 뜻이다. 누리 알말리키 총리는 바그다드에 더 많은 병력을 투입하는 새 치안유지 작전을 짜고 있다. 그러나 약체인 이라크 군·경이 앞으로의 상황을 감당하기는 벅차 보인다. 상황 악화는 곧 이라크 정부의 대미 의존을 높일 것이다. 하지만 미군이라고 해서 3년10개월여간 못해낸 이라크 ‘완전 정복’을 쉽사리 해낼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옛 집권당인 바트당은 “모든 수단을 동원한” 복수를 다짐했고, 실체가 파악되지 않는 수만명의 수니파 무장조직이 거칠어질 것임은 분명하다. 후세인 1명의 처형은 시아파에게 카타르시스를 선물했지만, 격화할 것이 뻔한 시아-수니파 종파분쟁은 이라크인 모두에게 훨씬 큰 희생을 안길 것으로 보인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미국 우방 사우디도 ‘유감’ ‘과거 잊고 공존’ 정부 호소에도 역풍 거셀 듯30일(현지시각)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의 처형 직후, 모와파크 알루바이 이라크 국가안보보좌관은 “역사의 한 장이 마감됐다. 과거를 잊고 함께 살아가자”고 호소했다. 이날 70여명의 폭탄테러 사망자가 나오고, 고문을 받다 처형된 주검 12구가 발견됐다. 하루 평균 90여명씩 죽어 나가는 최근 상황에 비추면, 당장 큰 반발은 없었다.
후세인 처형 각국 반응 (지도자 발언, 논평)
30일 검은 두건을 쓴 사형 집행자들이 교수형에 앞서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 목에 올가미를 걸치고 있다. 사담 후세인은 얼굴에 두건을 쓰기를 거부한 채, 최후를 맞았다. 바그다드/AP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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