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정문태의 국경일기
(20) 까렌민족해방군 본부 레이와
(20) 까렌민족해방군 본부 레이와
까렌민족연합에도 이제 세대 교체 바람이 불고 있다. 왼쪽이 해방군 제2세대인 무뚜세이뿌 의장이며 오른쪽이 제3세대인 부의장 끄웨뚜윈. 정문태
소수민족해방 세력의 맏형
게릴라 1만여명 거느린
까렌민족연합의 근거지 7개 해방구서 모인 51명
총회 열어 대정부 의제 설정
군부 변화 기다리며 고단한 회의
중앙상임위 첫 촬영 ‘행운’ 타이 북서쪽 국경도시 매홍손에서 오른쪽으로 버마 국경을 끼고 지방도 108을 따라 남쪽으로 163㎞를 달려 매사리앙에서 숨을 돌린다. 매사리앙을 질러 흐르는 유암강둑에서 커피로 점심을 때우고 지방도 105를 타고 남쪽으로 233㎞ 떨어진 중북부 국경도시 매솟으로 간다. 이 국경 길이 제 아무리 아름답다손 치더라도 숱한 고개를 오르내리는 400㎞를 8시간쯤 달려 매솟에 닿으면 그 뒤는 뻔하다. 몸도 마음도 녹초, 이제 쓰러질 일만 남았다. 6월19일 아침 7시, 전화가 울린다. “문태, 점심때 쯤 사람 보낼 테니 준비하고 있게.” 까렌민족연합(KNU) 부의장 끄웨뚜윈 말이 잠결로 흐른다. 닷새째 퍼붓는 국경의 비는 헤어나기 힘든 잠을 부른다. 1시30분, 끄웨뚜윈이 보낸 자동차를 타고 지방도 105를 타고 왔던 길을 되돌아 북쪽으로 달린다. 타이와 버마의 까렌주 국경을 가르는 모에이강을 끼고 130㎞쯤 달리면 강둑에 까렌민족해방군(KNLA) 본부인 레이와로 들어가는 ‘개구멍’이 나타난다. 여기는 타이 국경수비대도 없는 무인지대다. 타이 정부가 눈감아 준다는 뜻이다. 보통 땐 20m 남짓한 모에이강 폭이 장마철로 접어든 탓에 100m쯤으로 크게 불었다. 수줍은 아이처럼 살랑이던 물결은 온데간데없고 소용돌이까지 일으키는 거센 황톳물을 흘려댄다. 건너편 까렌 진영에서 한 전사가 몰고 온 배를 타고 국경을 넘는다. 젊어지는 레이와 대물림해 온 전설 ‘흐르는 모래 강’을 쫓아 고향을 고비사막쯤으로 여겨 온 까렌 사람들은 현재 까렌주에 500만, 타이에 100만, 그리고 유럽을 비롯한 곳곳에 150만이 살고 있다. 까렌이 언제부터 버마에 삶터를 다졌는지 알려진 바는 없지만 소수민족으로서 비극의 뿌리만큼은 현대사에서 찾을 수 있다. 까렌과 까친을 비롯한 소수민족을 앞세워 다수 버마인을 지배한 영국 식민주의자의 이른바 분할통치가 악의 씨를 뿌렸다면,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립 보장을 미끼로 소수민족들 도움을 얻은 영국 식민주의자의 무책임한 약속이 거름 노릇을 했다. 1948년 버마가 독립하면서 소수민족들이 자치와 독립을 외치게 된 까닭이고 이게 오늘까지 이어지는 분쟁의 싹을 틔웠다. 그 역사의 텃밭에서 까렌민족연합이 줄기를 뻗었다. 1947년 창설한 까렌민족연합은 무장조직인 까렌민족해방군을 이끌고 1949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69년 동안 세계 최장기 해방투쟁을 벌여왔다. 그 사이 까렌민족연합은 소수민족 해방군 동맹체인 민족민주전선(NDF·1976년 창설)과 버마민주동맹(DAB·1988년 창설)을 비롯해 망명 정치조직과 무장조직 연합체인 버마연방민족회의(NCUB·1992년 창설)의 줏대로서 버마 정부에 맞서왔다. 말하자면 20여개 웃도는 소수민족해방군과 망명 민주혁명 세력의 맏형 노릇을 해온 셈이다.
까렌민족연합 중앙상임위원회 비상총회가 열린 레이와 본부. 정문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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