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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아시아·태평양

불발탄을 걷어내지 않고는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의 가치

등록 2018-06-30 13:39수정 2018-06-30 14:08

[토요판] 정문태의 국경일기
마지막회/88년 ‘크리스마스전투’ 현장 꼬무라
전투가 멈춘 날 벙커에서 나와 햇빛을 쬐는 꼬무라 기지의 버마학생민주전선 학생군. 1992년. 정문태
전투가 멈춘 날 벙커에서 나와 햇빛을 쬐는 꼬무라 기지의 버마학생민주전선 학생군. 1992년. 정문태

“12월24일 1800시, 3천여 병력을 앞세운 버마 정부군이 땅거미 지는 모에이강 물돌이 목을 치고 들어왔다. 폭 60m에 친 3겹 철책선에서 불꽃이 튀었다. 500m 앞 케블루산(400m) 정부군 고지에서는 120㎜ 야포 24문이 쉬지 않고 불을 뿜었다. 스웨덴제 84㎜ 대탱크포는 모래자루와 통나무로 덮은 지하 2m 동맹군 벙커를 뚫고 들었다. 남북 1.5㎞, 동서 0.6㎞, 손바닥만한 물돌이는 초토가 되었다.

12월25일 0400시, 자정을 넘어 숨죽였던 물돌이에 다시 총성이 울렸다. 캡틴흘라웨이다리 쪽으로 치고 들던 정부군 상륙조 40여명이 동맹군에 걸려 물귀신이 되었다. 흥분한 정부군 야포는 거칠게 불을 뿜었고 물돌이의 새벽은 화약 냄새와 피비린내로 뒤덮였다. 1700시, 300여명 전사자를 낸 정부군이 물러나면서 전선이 잦아들었다.”

꼬무라로 가는 길

세계 게릴라전사에 최대 격전으로 꼽을만한 1988년 ‘크리스마스전투’였다. 그즈음 타이와 버마(까렌주) 국경을 가르는 모에이강 물돌이 꼬무라(완카)에는 까렌민족해방군(KNLA) 101특수대대 300명, 4여단 특수지원군 150명, 아라깐해방군(ALA) 80명, 버마학생민주전선(ABSDF) 211연대 150명이 버마민주동맹(DAB) 깃발 아래 방어선을 쳤다. 여섯 달 넘도록 꼬무라를 난타했던 정부군은 12월22일부터 하루 5000~7000발에 이르는 포탄을 퍼부어댔다. 12월 들어 보급선마저 끊긴 동맹군은 햇볕도 들지 않는 벙커에서 한 달 가까이 마른 국수와 물로 끼니를 때웠다.

특히 이 크리스마스전투는 11월5일 갓 태어나 전투 경험도 없던 버마학생민주전선 학생군이 까렌 지도부의 후퇴 명령을 거부한 채 쇠사슬로 서로 발을 묶고 참전한 신화를 남겼다. 그로부터 까렌을 비롯한 소수민족해방군들은 이른바 8888 민주항쟁 뒤 국경으로 빠져나온 학생들을 동지로 받아들이며 무기를 지급하기 시작했다.

난공불락 요새로 여겼던 꼬무라는 1995년 2월20일 정부군한테 함락 당했다. 그날 나는 타이 국경 수비대에 막혀 모에이강 둑 먼발치에서 쓰러져 가는 꼬무라를 지켜보았다. 그동안 꼬무라 지하 벙커를 들락거린 유일한 기자인 나는 검은 연기와 불길에 휩싸여 숨이 넘어가던 그날 꼬무라를 아직도 가슴 한 쪽에 달고 산다.

꼬무라 기지는 1995년부터 까렌민주불교군 손에 넘어갔다. 오른쪽에서 세번째가 까렌민주불교군 제3특수대대 사령관이자 꼬무라의 맹주인 칫투 대령(가운데). 2005년. 정문태
꼬무라 기지는 1995년부터 까렌민주불교군 손에 넘어갔다. 오른쪽에서 세번째가 까렌민주불교군 제3특수대대 사령관이자 꼬무라의 맹주인 칫투 대령(가운데). 2005년. 정문태

그렇게 함락당한 꼬무라로 다시 들어갈 수 있었던 건 꼭 10년 뒤인 2005년이었다. 그즈음은 버마 정부군과 손잡은 까렌민주불교군(DKBA)이 점령한 ‘적진’이었다. 까렌민주불교군은 1994년 말 까렌민족해방군 지휘부에 반기를 들고 떨어져 나와 정부군 지원을 받으며 국경 소수민족해방·민주혁명전선으로 총부리를 돌린 무장조직이다.

그로부터 또 13년이 지났다. 꼬무라가 보고 싶다. 버마의 까렌주와 국경을 맞댄 타이 북서부 매솟에서 이리저리 선을 단다. 꼬무라는 까렌민주불교군이 2009년부터 버마 정부군 통제를 받는 국경수비대(BGF)에 편입되면서 이제 정부군이 쥐고 있는 셈이다. 2005년 꼬무라 취재를 허락했던 까렌민주불교군 특수대대 사령관이자 이 지역 맹주인 칫투 대령(48)은 요즘 국경수비대 사무총장으로 까렌주 주도인 빠안에 나가 있어 선이 닿지 않는다. 밀선을 통해 현재 꼬무라를 거느린 슈웨꼬꺼꼬 국경수비대 사령관인 마웅윈 소령(전 민주까렌불교군)을 찾았다. “칫투 사령관 잘 안다면 들어와도 좋다. 빠안으로 연락은 내가 할 테니.” 마웅윈은 까탈 없이 받아들였다.

세계 게릴라전사의 최대 격전지
1988년 ‘크리스마스전투’의 현장
꼬무라 지하벙커 오간 유일 기자
함락 23년 만에 다시 그곳으로

엉망진창 카지노 무법지대 지나
중국계로 가득한 까렌 마을 지나
닿은 옥수수 밭으로 변한 꼬무라
그 땅에서 확인하는 소수민족의 혼

6월23일 아침 8시, 호텔로 밀선이 찾아왔다. “요즘도 꼬무라 ‘개구멍’ 있나?” “그 길목은 타이군이 버텨 넘기 힘들다.” 메솟에서 직선거리로 10㎞ 떨어진 꼬무라로 들어가는 그 개구멍은 옛날에도 카메라를 쌀자루에 숨기고 안경을 벗고 농부로 변장해서 드나들었던 곳이다. “그럼 어디로?” “꼬무라 북동쪽 2㎞ 지점, 슈웨꼬꺼꼬 어귀로.” 밀선을 따라 20분쯤 달려 모에이강에 닿고 보니 건너 쪽 버마 강둑에 ‘엠비리조트클럽’이라는 카지노가 눈에 든다. 여전히 적진으로 들어가는 긴장과 흥분을 안고 온 내 꼴이 우습게 되었다. 여긴 아무나 다닐 수 있는 길이다. 타이 쪽 모에이강 둑에 서면 자동으로 카지노 전용배가 모시러 온다. 비자도 여권도 필요 없다. 세관이니 출입국사무소 따위도 없다. 도박꾼들이 불법으로 국경을 넘나든다는 뜻이다. 들머리 쪽 타이군 검문소도 겉치레일 뿐이다. 카지노 손님을 위한 특별 개구멍인 셈이다. 버마도 타이도 도박은 불법이다. 물론 카지노도 불법이다. 허가 받지 않은 카지노가 버젓이 두 나라 국경을 주름잡는 엉망진창 무법지대다. 여기가 바로 버마 정부군, 국경수비대, 타이 정부군에다 중국 자본이 공생하며 굴러가는 사각부패 현장이다.

2011년 휴전협정 전까지만 해도 꼬무라 물돌이와 이어진 이 지역은 세계 게릴라전사에 최대 격전지로 꼽는 전선이었다. “휴전협정이 평화 대신 카지노를 몰고 왔다.” 매솟 까렌학교 교장 만 발라신 말마따나 휴전협정 뒤 국경 전역에서 벌어지는 불법 사업들을 버마 정부가 눈감아 주고 있다는 뜻이다.

세계 게릴라전사에서 최대 격전지로 꼽는 꼬무라 기지와 이어진 모에이강 기슭 슈웨꼬꺼꼬에는 카지노가 들어섰다. 사진에서 배를 중심으로 오른쪽 숲이 타이 영토다. 2018년. 정문태
세계 게릴라전사에서 최대 격전지로 꼽는 꼬무라 기지와 이어진 모에이강 기슭 슈웨꼬꺼꼬에는 카지노가 들어섰다. 사진에서 배를 중심으로 오른쪽 숲이 타이 영토다. 2018년. 정문태

해방투쟁 뒤에 숨은 이권

사람들이 “칫투카지노”라 부르는 엠비리조트클럽 바로 뒤가 칫투 대령의 개인 사무실 겸 슈웨꼬꺼꼬 국경수비대 연락사무소다. “까렌 배신하고 버마 국경수비대 되고 나니 마음 편한가?” 마웅윈 소령과 악수를 하면서 툭 찔러본다. 통역을 맡은 밀선이 쭈뼛거리며 조심스레 말을 건넨다. “배신은 무슨 배신. 그 전 까렌불교군 시절보다 불편하다. 그땐 자유로웠으니.” “정부군 명령 따라야 하니 그렇겠지?” “명령보다 규칙과 법이 너무 많아서. 결정도 마음대로 못하고.” 마웅윈은 무뚝뚝한 첫 인상과 달리 화끈하다. “국경수비대 때려치우고 돌아오면 되잖아?” “그건 정치니 내가 뭐라 할 수 없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몰라.” “정부군 쪽으로 총부리 돌릴 수도 있나?” “못할 것도 없지. 상황 달라지면.” “국경수비대 편제는 알려진 바 없는데, 비밀인가?” “비밀은 무슨. 까렌주 전체 13개 대대고, 여기 슈웨꼬꺼꼬에 4개 대대.” “그래서 버마 정부한테 월급은 얼마나 받나?” “정부군과 같다. 일반병은 16만짯(13만원)부터.” “당신은 소령인데?” “난 41만짯(33만원)” 마웅윈은 거침없이 대답을 쏟아낸다. “한 동안 까렌민족해방군 공격 안 하더구먼?” “2007년이 마지막이었어. 친구잖아.”

사무실 안을 둘러보니 칫투 대령이 까렌민족해방군 사령관 조니, 까렌민족연합 의장 무뚜세이뿌한테 꽃을 바치는 사진이 걸려있다. “조니 사령관과 매솟에서 만나 술도 한잔씩 하고….” 옛날에 칫투 대령이 했던 말이나, “그 아이들(전 까렌민주불교군) 월급은 버마 정부한테 받고 일은 내 말을 따르지.” 지난주 조니 사령관이 했던 말이나 다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점심나절 꼬무라로 간다. 칫투 비서인 에콩이 운전대를 잡았다. “진흙탕이라 둘러가야 할 듯.” 직선거리 2㎞를 두고 슈웨꼬꺼꼬 한복판을 거쳐 먼 길을 돌아간다. 한적한 시골마을이었던 슈웨꼬꺼꼬도 13년 만에 몰라보게 달라졌다. 곳곳에 대형 건물이 들어서고 있다. “저게 다 뭔가?” “중국 업체 10여개가 들어와서 공장 짓는다고.” “저 컨테이너 박스처럼 줄줄이 늘어선 집들은?” “카지노와 중국 회사에서 일하는 중국인(버마 출신)이 사는.” 에콩은 마땅찮은 듯 고개를 젓는다. 인구 3천 남짓 슈웨꼬꺼꼬에 중국계 버마인이 1천명을 웃돈다. 길거리마다 중국계 사람들이 몰려다니는 낯선 풍경은 전통 까렌 마을이 끝나가는 신호다.

슈웨꼬꺼꼬의 이 변화는 모두 칫투 ‘솜씨’다. 사업적 재주로 소문난 칫투는 중국 투자자를 끌어들여 아예 왕국을 건설했다. 속을 들여다 볼 수 없는 칫투 집 담벼락은 300m도 넘게 이어진다. 소수민족해방투쟁 이름으로 이권을 굴려대는 국경 현실이 아프게 다가온다.

슈웨꼬꺼꼬를 지나 무인지대를 달린다. 여기도 진흙탕이다. 정부군이 포를 날렸던 케블루산 까지 기껏 10㎞에 35분이나 걸린다. 케블루산에서 500m 앞 모에이강 물돌이가 꼬무라다. 전투가 벌어질 때마다 수천발씩 포탄을 받아냈던 이 꼬무라는 본디 집도 나무도 아무 것도 없는 폐허였다. 포를 맞아 천정과 벽이 반쯤 날아간 아주 허름한 절과 불상 하나만 땅 위에 있었고,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는 지하로 들어갔다.

그러니 꼬무라에서 옛날 자취는 찾을 수 없다. 그나마 동맹군 벙커마저 정부군이 없애버려 어디가 어딘지조차 헷갈릴 뿐. 그 땅엔 이제 옥수수만 빼곡히 자라고 있다. “얼마 전 아이 둘이 여기서 불발탄 건드려 죽었다.” 에콩 말이다. 꼬무라는 그런 곳이다. 불발탄을 걷어내지 않고는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이다. 옥수수 밭을 가꾸는 농부 몇몇과 이방인 출현에 놀란 초병 네댓이 꼬무라의 다다.

애초 나는 이 꼬무라를 의심했다. 내가 볼 땐 전략적으로 아무 가치도 없는 이 손바닥만한 꼬무라를 놓고 소수민족해방군은 오랜 세월 동안 죽음으로 버텼으니. 까렌민족해방군 지도부와 여러 차례 꼬무라를 놓고 논쟁을 벌였지만 속 시원한 답을 들은 적도 없다. 그러다 1995년 꼬무라가 함락당하고 몇 해 지나서야 전쟁이란 게 전략적 가치만 따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죽어도 지켜야 할 명예와 자존심, 소수민족해방군의 혼이고 정신이었다. 그게 꼬무라의 가치였다. 이 꼬무라가 무너지면서 국경 소수민족해방 투쟁도 시들어 갔다. 그로부터 소수민족해방전선은 맥 빠진 깃발만 날린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내가 꼬무라를 다시 보고 싶었던 건 추억 캐기 따위가 아니라 그 혼과 정신을 돌아보고 싶었던 게 아닌가 싶다.

다시 만날 국경

이제 나는 모에이강을 따라 버마 소수민족해방·민주혁명 심장이었던 까렌민족해방군 옛 본부 마나플라우를 거쳐, 모에이강과 만나는 살윈강 기슭 버마학생민주전선 옛 본부 다웅윈으로 간다. 숱한 이들이 민족해방과 민주혁명을 외치며 목숨 바친 이 두 강은 내게 학교였다. 나는 전쟁도 혁명도 국경도 모두 이 강에서 배웠다. 먼저 간 이들 앞에 바칠 꽃 한 송이를 들고 갈 생각이다.

이제 국경일기를 멈출 때가 됐다. 그러나 국경 사람들과 함께 길을 가겠다던 30년 전 기자로서 다짐은 끝나지 않았다. 다시 국경에서 만날 날을 꼽으며 독자들께 고마운 마음을 올린다. <끝>

*이번 회로 ‘정문태의 국경일기’ 연재를 마칩니다. 필자와 독자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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