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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럽

‘가난한 동쪽-부유한 서쪽’ 힘겨운 동거

등록 2007-03-30 18:00수정 2007-03-30 19:09

지난 24일 폴란드 북부도시 체친의 시내 중심가에서 시민들이 길을 건너고 있다. 시민들은 손에 세련된 가방 대신 비닐봉지를 든 사람이 많았고, 뒷편으로 지나는 낡은 전철은 곳곳에 녹이 슬었다.
지난 24일 폴란드 북부도시 체친의 시내 중심가에서 시민들이 길을 건너고 있다. 시민들은 손에 세련된 가방 대신 비닐봉지를 든 사람이 많았고, 뒷편으로 지나는 낡은 전철은 곳곳에 녹이 슬었다.
[유럽연합 50돌] ‘통합 용광로’ 현장을 가다 ④ 머나먼 사회통합

24일 폴란드 북부 국경도시 체친. 독일 국경선을 넘자마자 마치 낡은 앨범을 편 것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건물도 전철도 대부분 페인트 칠이 벗겨져 있었다. 구형 벤츠 택시는 덜덜거렸고, 푹 꺼진 뒷좌석에 앉아 있으면 좌우로 몸이 흔들렸다. 조금 전 넘어왔던 독일과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이웃하고 있는 독일과 폴란드의 전혀 다른 현실은 오늘날 유럽연합 내부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50년 간 정치·경제 통합을 향해 내달려왔다. 하지만 27개 회원국 사이의 경제적 격차는 아직도 유럽연합의 사회적 통합을 가로막는 최대 걸림돌로 남아 있다.

“동유럽 값싼 노동력이 일자리 뺏는다” 서유럽 불만
GDP 격차 최고 7배…‘공통점 찾기’ 지원·교육 활발

“폴란드 배관공이 일자리 빼앗아간다”=프랑스와 독일에서 ‘유럽연합의 나쁜 점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상당수가 “가난한 동유럽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온다”는 답이 돌아왔다. 아직도 떠도는 ‘폴란드 배관공’이라는 말은 서유럽인들의 거부감을 잘 드러낸다. 값싼 임금의 폴란드 배관공이 몰려와,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것이다. 2004년 폴란드가 유럽연합에 가입할 당시 서유럽 노동자들 사이에 팽배했던 우려였다.

물론 전문가들은 이는 사실과 다르다고 한다. 프랑스 외무부 유럽연합 협력국 줄리앙 스테이머 부국장은 “일종의 환상일 뿐”이라며 “폴란드 등 동유럽 국가들이 새로 유럽연합에 가입했다고 해서 서유럽 국가들의 고용 실태가 크게 변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통계상의 수치와는 별도로 정서적인 위화감, 차별은 분명히 존재하는 듯 했다. 폴란드인 제콘스 안즈레예프스키는 “서유럽인들은 폴란드 사람들을 소매치기라고 생각한다”며 “다 그렇지는 않지만 ‘너희 못 살잖아, 돌아가’라고 반응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얼굴을 찌푸렸다. 유럽연합이 1월 발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64%가 인종 차별이 광범위하다고 답한 것은 이런 현실을 뒷받침한다.

유럽연합 안에 동·서유럽 국가간의 차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스웨덴과 독일 등 사회 보장을 강조하는 사회와, 영국처럼 자유 시장 경쟁을 중시하는 국가들 사이의 이질성도 존재한다. 또 27개 회원국 23개의 서로 다른 언어는 다양성의 상징이자 장벽이다.

7.6배에 이르는 경제 격차=2004년 헝가리와 체코 등 동유럽 10개 나라가 가입하면서 유럽연합의 사회·경제적 격차 문제는 당면 현안 중 하나로 떠올랐다. 올해는 루마니아와 불가리아가 가입했다.


유럽연합 자료를 보면, 1인당 국민 총소득(GNI)에서 덴마크는 4만7390달러(약 4450만원)지만 불가리아는 3830달러(약 360만원) 밖에 되지 않는다. 경제적 격차를 쉽게 비교할 수 있는 실질 구매력 기준 1인당 국내 총생산(GDP)을 보면, 최상위 룩셈부르크는 최하위 불가리아의 7.6배에 이른다. 폴란드인 욜라 야네틱은 “돈을 4~6배씩 더 벌 수 있으니까 영국이나 아일랜드로 사람들이 일하러 가서 동네에 사람이 없다”고 전했다. 폴란드 정부는 전체 인구 3800만명 가운데 약 5.3%인 200만명이 외국으로 일자리를 찾아 떠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올해 신규 가입한 루마니아와 불가리아 등에서도 서유럽으로 일자리를 찾아 떠나는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격차 해소가 사회 통합의 지름길=프랑스 외무부 유럽연합 협력국 크리스틴 모로 부국장은 “회원국 간 격차 문제는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라며 “신규 회원국의 경제 성장을 최대한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럽연합은 올해 지난해보다 14.5% 늘어난 455억유로(57조1200여억원), 전체 예산의 36%를 신규 가입국의 통합과 적응 등에 돌렸다.

동유럽의 가입이 서유럽 경제에 해만 주는 게 아니라 도움이 되는 측면도 있다는 분석도 있다. 동유럽 발전으로 소비가 확대되면 서유럽의 새로운 시장이 열린다는 것이다. 폴란드 출신인 라파엘 트르자스코프스키 유럽의회 외교관계위원회 보좌관은 “우리는 가난하지만 빨리 발전하고 있고, 서유럽에도 혜택을 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젊은 세대를 겨냥한 사회·문화적 노력도 진행되고 있다. 특히 대학생 교류 프로그램 ‘에라스무스’를 통해 2004~2005년에만 폴란드 대학생 8300여명 등 14만4000여명이 다른 회원국에서 공부하며 서로의 이해를 키웠다. ‘소크라테스’와 ‘레오나르도 다빈치’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소수 언어 등 외국어 학습도 적극 지원하고 있다. 프랑스-독일간의 공동 역사교과서도 올해 보급이 시작됐다.

유럽청소년의회 뱅상 쿠론 회장은 “사회·문화적 가치관의 차이가 분명히 있지만 공통점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며 “국가와 국가를 연결하는 게 아니라, 국민과 국민을 연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독일 알프레트 오펜하임 유럽연구센터 얀 테하우 연구원은 “매력적으로 들리지는 않겠지만 작은 것부터 하나씩 풀어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유럽연합 27개국 국내 총생산 비교
유럽연합 27개국 국내 총생산 비교

파리·브뤼셀·베를린/글·사진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EU는 50살 중년의 위기
헌법·회원확대 갈등…해법은 “하나하나씩”

유럽 현지에서 만난 전문가나 현지 언론은 ‘위기’라는 단어를 자주 썼다. 유럽연합이 지난 50년 간 평화와 번영의 정치적 통합과 최대 단일시장의 경제적 통합을 이뤘지만, 새로운 고비를 맞고 있다는 것이다. 헌법 제정을 둘러싼 논란, 회원국 간의 격차, 내부의 사회적 통합 문제 등 유럽이 안고 있는 문제는 한둘이 아니다. 최근 시사주간 〈이코노미스트〉는 유럽연합의 오늘을 ‘50대 중년의 위기’라고 규정했다.

최대 논란은 유럽 헌법 문제다. 얀 테하우 독일 알프레트 오펜하임 유럽연구센터 연구원은 “최근 2년 간 유럽연합은 헌법 제정을 놓고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불확실한 시기를 이어왔다”며 “정치적 위기를 벗어나려면 뭔가 변화를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프랑스와 네덜란드가 유럽연합 대통령과 외무장관을 두려는 유럽연합 헌법을 2005년 부결시킨 뒤, 유럽연합은 아직 의견을 모으지 못하고 있다. 25일 로마조약 50돌을 기념하는 ‘베를린 선언문’도 유럽연합 헌법에 대한 논란을 벌였다. 하지만 애매한 표현으로 넘어갔다. ‘독립국가와 연방제의 중간’을 어디로 설정할 것인지에 대해 회원국마다 생각이 다르다.

이슬람 국가인 터키 등 새로운 회원국의 유럽연합 가입도 논란이다. ‘확대 피곤증’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거리에서 만난 시민들은 유럽연합에 대해 ‘뭐 하나를 결정하려고 해도 너무 느리다’며 “관료주의” “예산 낭비”라고 비판했다. 프랑스·독일·스페인 등이 공동 운영하는 에어버스는 개별 국가의 이익을 앞세우려는 각국의 잦은 간섭으로 심각한 경영난에 빠졌다. ‘함께’ 하는 데 따른 어려움의 대표적 예다.

하지만 유럽연합은 실패보다는 성공에 무게를 뒀다. 독일 외무부 유럽연합국 하르디 뷔클러 부국장은 “이웃 국가인 중국과 일본이 아직 화해하지 못한 것에 비하면 우리는 놀라운 성공을 거뒀다. 때론 논쟁하지만 공동의 이익을 찾아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얀 테하우 연구원은 “친구 다섯 명이 모여서 무슨 영화를 볼지 결정하기도 어렵다”며 “27개국이 모여 중대한 국제 이슈에서 합의를 보기란 쉽지 않다”고 평가했다.

프랑스 외무부 유럽연합 협력국 크리스틴 모로 부국장은 “관세 장벽을 없앤 뒤 사람들이 자유롭게 오가고, 그를 바탕으로 공동 안보·외교정책을 추진해왔다”며 “단기적으로 성과는 적고 느리지만 단계적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파리·브뤼셀·베를린/김순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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