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성분 유입땐 엔진 멈출수도
아이슬란드 화산재 분출로 사상 최악의 항공대란이 이어지면서 인체와 항공기에 치명적인 화산재의 심각성이 새삼 부각되고 있다. 유럽 공항들은 2001년 9·11테러 때 미주노선 운항을 중단했지만 평시에 공항 기능이 완전히 마비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유럽 항공당국이 대규모 운항 중단 조처에 나선 것은 화산재가 조종사 시야를 가리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항공기 엔진에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화산재에 들어 있는 모래나 유리 성분이 제트엔진에 들어가면 섭씨 1400~2000도의 고온에 녹아 터빈이나 냉각시스템 노즐에 눌어붙는다. 터빈이 제대로 돌지 않거나 공기 냉각이 안 되면 엔진이 멈춰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스튜어트 존 전 영국 왕립항공학회 회장은 <비비시>(BBC) 인터뷰에서 “비행기 엔진의 냉각기능이 마비되면 금속은 고온을 견딜 수 없어 엔진이 멈출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난 20년간 항공기가 화산재 구름을 통과한 것은 80차례다. 그중 1982년 인도네시아 상공을 날던 브리티시항공 보잉747 여객기와 89년 알래스카를 지나던 네덜란드 카엘엠(KLM)의 같은 기종 여객기는 간신히 참사를 면했다. 짙은 화산재와 맞닥뜨린 브리티시항공 여객기는 엔진 4개가 모두 꺼지는 바람에 11㎞ 상공에서 3.5㎞ 높이까지 고도가 떨어졌다. 이 여객기는 다행히 엔진이 재점화돼 비상착륙에 성공했다. 카엘엠 여객기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화산재 구름이 가라앉기 시작하면 땅 위가 비상이다. 엄청난 양의 낙진이 생명체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16일 “화산재의 미세한 먼지가 폐로 들어가 호흡기 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며 “화산재가 떨어지면 유럽인은 되도록 실내에 머물러야 한다”고 경고했다.
지난 14일 밤부터 분출을 시작한 아이슬란드의 에이야퍄틀라이외퀴틀 빙하지대 화산은 11㎞ 상공까지 재를 뿜어올릴 정도로 활동력이 왕성하다. 이 화산은 1821년 2년간 재를 뿜은 적이 있어, 이번에도 활동이 길어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한편, 시드니 소재 항공 컨설팅 회사인 아시아태평양항공센터는 이번 항공대란이 사흘간 지속될 경우 항공업계가 최대 10억달러(약 1조1000억원)의 손실을 입을 것으로 추산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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