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째 억압적인 통치 방식을 고집하고 있는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에 맞서는 신세대 활동가의 상징으로 떠오른 라만 프라타세비치가 2017년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민스크/AP 연합뉴스
벨라루스 정부가 자국 영공을 통과하던 외국 항공기를 강제 착륙시켜 젊은 언론인 라만 프라타세비치(26)를 체포함으로써 유럽연합(EU) 등 서방과 갈등을 촉발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24일 회원국 정상회의를 열어 벨라루스에 대한 경제제재에 합의했다.
이번 사건은 1994년부터 27년째 권력을 지키고 있는 독재자 알렉산드르 루카셴코(66) 대통령의 조바심을 반영한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특히 프라타세비치는 1991년 소련 붕괴 이후에도 강압적인 통치를 지속한 루카셴코에게 도전하는 젊은 세대의 부상과 영향력 확대를 상징한다.
소련의 집단농장 관리인 출신인 루카셴코는 1991년 벨라루스가 독립을 선언한 이후 반부패 운동가로 활동하면서 명성을 얻었다. 그는 이 명성을 바탕으로 1994년 처음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됐다. 하지만 대통령 당선 이후엔 옛 소련 방식의 통치 행태를 답습했다. 2005년 미국 정부는 벨라루스를 “유럽의 심장부에 남은 진짜 마지막 독재국가”로 비판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루카셴코는 이런 평가에도 아랑곳하지 않았고 자신을 벨라루스를 지키는 수호자로 부각시켰다. 그의 이런 전략은 2차 세계대전 때 독일 나치의 침공으로 큰 고통을 겪은 노인층에서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다. 노인층은 과거 외세의 침략 기억 때문에 외국에 대한 불신이 강하다고 <비비시>(BBC) 방송은 전했다.
루카셴코는 지난해 8월 실시된 대선에서 6선에 도전하면서 영구 집권을 꾀했다. 하지만 그가 80%의 압도적 지지율을 얻은 것으로 나타난 직후, 수많은 시민들이 선거 부정을 주장하며 거리로 나섰다. 매주 10만명 정도가 참여하는 대규모 시위가 수도 민스크에서 몇달 동안 이어졌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강경 탄압으로 대응했고, 대선에서 그에 맞섰던 스뱌틀라나 치하노우스카야 후보 등은 리투아니아 등 외국으로 피했다. 이와 함께 선거 부정 항의 시위도 차츰 잦아들었다.
1991년 소련에서 독립한 이후 첫번째 벨라루스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27년째 권력을 유지하고 있는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 브라힌/AP 연합뉴스
하지만 루카셴코에 대한 도전은 이웃나라로 건너간 벨라루스인들을 중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런 움직임을 이끄는 이 중 하나가 프라타세비치를 비롯한 젊은 언론 활동가들이다. 2019년 벨라루스를 떠나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에서 활동하는 프라타세비치는 메신저 서비스 텔레그램을 통해 주로 전파되는 온라인 매체 <네흐타>(넥스타)를 설립했다. 이 매체는 벨라루스 전체 인구의 10%를 넘는 150만명의 구독자를 확보하고 있으며, 지난해 선거 부정 항의 시위 때 정부의 정보 통제에 맞서는 주요 매체로 떠올랐다. <네흐타>는 정보만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위대의 조직화를 적극 지원하는 활동도 벌였다고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가 지적했다.
지난 대선 후보였던 치하노우스카야의 보좌관 프라나크 뱌초르카는 2011년 16살의 나이로 반정부 시위에 참여한 프라타세비치를 처음 만난 때를 기억한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그 이후 프라타세비치는 각종 언론 매체 활동을 이어가면서 언론인 겸 정치활동가로 성장했다. 뱌초르카는 “10년 전 많은 활동가들은 정치활동만으로는 (독재에 맞서) 승리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며 “그 이후 언론과 정치활동의 결합이 나타났고, 프라타세비치도 이런 활동가 중의 하나”라고 말했다. 그는 “프라타세비치는 추진력이 강하고, 창조적이며, 부정을 결코 받아들이지 못하는 인물”이라고 덧붙였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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