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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반의반도] 모란꽃 그녀 그리고 학동4구역

등록 2021-06-22 17:06수정 2021-06-23 02:35

한반의반도 _9
1980년 5월21일 옛 전남도청 앞 집단 발포 직전 전옥주씨가 등을 보인 채 시위대 단상에 서서 전남도지사와의 협상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1980년 5월21일 옛 전남도청 앞 집단 발포 직전 전옥주씨가 등을 보인 채 시위대 단상에 서서 전남도지사와의 협상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그녀에게 누군가가 민주화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아직 모르겠어요. 그러나 내가 아는 민주화는 남의 말을 마지막까지 듣는 것이에요.” 마지막까지 생각할 수 있는 자유, 생각한 것을 말하고 토론할 자유가 모든 자유의 근간이라고 주장하는 존 스튜어트 밀을 빌려오지 않더라도, 그녀가 몸으로 채득한 민주주의 사회는 서로의 의견이 존중되는 사회이다. 그렇기 위해서는 강자의 귀가 열려 있어야 한다는 데에 방점이 있다.

“전라도 사람치고는 멀쩡하네.” 서울에서 미술학원에 다닐 때 강사가 했던 말이다. 벌써 삼십년도 더 되었지만 소화되지 못한 채 남아 있다. 그가 보기엔 전라도 사람처럼 안 보인다는 말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전라도 사람은 미치광이이거나 시뻘건 얼굴이기라도 해야, 전라도 사람인 것이다. 멀쩡하다는 표현은 상식을 경유해서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감각이라고 할 수 있다. 곧 나는 지배적 가치에 위반되는 일 없는 그런 학생으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이다. 5·18 이후 군사정권이 전라도 사람들에게 씌워버린 편견을 고려한다면, 그는 광주에서 올라온 나를 나름대로 살갑게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여준 것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정작 ‘멀쩡하다’는 규정은 나의 위치가 속절없이 부정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저 강사는 알지 못했다. 칭찬과 부정 사이에 들어가버린 나는 멀쩡해야 하는 것인지, 멀쩡하면 안 되는 것인지를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멀쩡하면 할수록 멀쩡해질 수 없었다. 광주에서 멀쩡하게 오월을 지나가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시간의 리듬이나 자연의 순환 그리고 생애사적 주기가 파괴되어버린 사람들이 사는 광주에서 멀쩡하게 지내는 일은 오히려 광주를 부정하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멀쩡하다는 규정은 광주를 부정하고 살라는 말이다. 너는 ‘폭도’처럼 보이지 않으니, 앞으로도 ‘보통 사람’으로 지내라는 명령이다.

하지만 멀쩡하게 사는 일은 불가능했다. 오히려 멀쩡하게 지내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국가폭력이 자행된 도시에서 사람들이 멀쩡하게 살 순 없다. 자식을 잃은 어머니가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에도 집 안을 말끔히 청소하고 일상을 영위하는 것은 멀쩡한 일이 아니다. 친구를 남겨두고 나왔다는 죄책감을 떨쳐내지 못하거나 오월을 외면하지 못하는 일도 멀쩡한 것이 아니다. 광주까지 와서 사십년 전 어떤 여성의 생사를 묻고 다니는 공수부대원도 멀쩡한 것일 수 없다. 국가폭력의 책임자가 멀쩡하게 잘 살고 있는 일도 멀쩡한 일이 아니다. 멀쩡한 외형만 있을 뿐이고 자본의 순환에 떠밀리는 삶만 있을 뿐이다. 멀쩡한 척하는 사람들이 다다.

정상, 비정상을 판결하는 그 강사 앞에서 나는 주눅 들었다. 그에게 이의를 제기하는 대신, 긍정도 부정도 하지 못하고 애매하게 서 있었다. 명백히 화를 내야 할 상황이었지만, 기이하게도 욱하는 마음이 솟아오르는 동시에 싸늘한 공포감에 휩싸였다. 1980년 5월의 광주를 찾아온 공포는 “언제든, 누구든,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이 힘을 가지면 나를 죽일 수도 있겠구나” 싶은 사실이었다. 그런 의견을 가진 ‘사람 떼’가 무서워졌다. 그들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정상을 요구했는데, 그 정상, 비정상이라는 것을 가르는 기준은 우리 입장에서 보면 너무나 우연적이다. 멀쩡함의 기준은 언제나 그들에게 있다.

이 때문에 멀쩡할 수 없었던 사람들의 시간은 아직도 1980년 5월18일, 그 시각에 못 박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멀쩡한 척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도, 그래서 그날과는 점점 멀어지고 있을 때도, 그들은 그 자리에 있다. 그들 중 한 사람이 ‘전옥주’(본명 전춘심)였다. 혐오와 추앙 사이에서, 폭도와 민주투사 사이에서 살았던 그녀가, 올해 2월 세상을 떠났다. 80년 5월, 대본 따위가 있을 리 없는 긴박한 상황에서 그녀는 마이크를 들고 군중 앞에 섰다. 한번은 분노에 찬 시위대에게 계엄군 한 사람이 잡혀 온 일이 있었다. 이미 시민들이 많이 죽은 상황이라 위험했다. 그녀는 시위대를 진정시켜 계엄군 병사를 상처 하나 없이 돌려보냈다. 그녀는 5·18 당시 대학생 중심의 시위를 전 시민의 시위로 확장하는 데 역할을 했다고 평가된다.

그러던 어느 날 전옥주가 북한 공작원이라는 말이 소문으로 돌았다. 그녀는 시위대에게 붙잡혀 계엄군에게 넘겨졌다. 그녀는 ‘모란꽃’이 되었다. 그녀는 도무지 멀쩡할 수가 없었다. 그날부터 그녀를 괴롭혔던 것은 이쪽과 저쪽 모두에게서 간첩과 프락치라는 의심을 받는 것이었다. 모진 고문과 모욕을 견디고 출소했다. 자살 시도를 했다. 실패하자 이번에는 살아보려고 했다. 그러나 어느 것도 쉽지 않았다. 그녀를 감시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녀는 번번이 직장에서 쫓겨났다.

그러는 중에도 조대 학생 이철규씨 사건이 났을 때 장례식에 참석했다(조선대학교 학생 이철규씨는 고문을 당하여 성한 구석이 하나도 없는 몸으로 1989년 5월9일 청옥동 제4수원지 상류에서 발견된다. 누가 봐도 타살임이 분명한 그의 죽음을 국과수는 단순한 익사로 결론 내렸다). 그녀는 새벽마다 이철규의 사진을 서울 지하철역에 붙였다. 금방 붙이고 오면 떼여 있고, 없으면 복사를 해서 다시 붙였다. 멀쩡하게 웃고 멀쩡하게 잡담을 하고 멀쩡하게 출근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결혼도 하고 아이도 키우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녀도 한번쯤은 멀쩡하게 살아보고 싶지 않았을까? 40년이라는 긴 시간을 홀로 지내면서 멀쩡한 시간은 도대체 얼마나 있었을까? 그녀를 추동하는 힘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생전에 그녀를 본 일이 없다. 그것이 지금은 몹시 아쉽다. 구술을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진 것이다. 조금씩은 멀쩡하지 않은 우리가 멀쩡하게 살아가다가 멀쩡할 수 없을 때, 그녀를 떠올릴 것이다. 그녀에게 누군가가 민주화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저는 답을 못 합니다. 아직 모르겠어요. 그러나 내가 아는 민주화는 남의 말을 마지막까지 듣는 것이에요.”(<광주, 여성>, 후마니타스, 2012, 166쪽) 마지막까지 생각할 수 있는 자유, 생각한 것을 말하고 토론할 자유가 모든 자유의 근간이라고 주장하는 존 스튜어트 밀을 빌려오지 않더라도, 그녀가 몸으로 채득한 민주주의 사회는 서로의 의견이 존중되는 사회이다. 그렇기 위해서는 강자의 귀가 열려 있어야 한다는 데에 방점이 있다.

“매년 망월동 기념식에는 금배지 단 사람들이 오는데, 휠체어를 탄 동지 한 사람이 진흙에 바퀴가 빠져 옴짝달싹을 못 해도 아무도 관심 갖지 않았어요. 그래서 망월동에 가지 않습니다.” 그녀의 눈에는 보이는 것들이 금배지 단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너무 멀쩡해져서 조금이라도 멀쩡함을 잃은 사람들은 투명해지는 것일까? 이미 절반쯤은 투명해진 사람들의 목소리를 되살리지 않는다면, 민주주의의 정의는 허울뿐인 것이 된다. 전라도 사람의 얼굴을 미치광이이거나 시뻘겋게 만든 사람들, 너무도 멀쩡해서 멀쩡하지 않은 그들과, 다를 바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온 시민이 민주주의를 부르짖던 도시는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광주는 명예롭고 멀쩡한 새 얼굴에 집착한다. 그 과정에서 어둡고 칙칙하고 불편한 것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건물들, 구역들, 거기 살았던 사람들, 그들의 역사를 지워간다. 80년대부터 대대적인 대도시계획이 세워졌고 5·18특별법이 제정(1995년 12월21일)되었다. 광주는 광역시로 승격되었고 인구도 늘어나고 신도심이 생겨났다. 그러자 이제는 구도심 공동화 현상을 문제 삼아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 6월9일, 학동4구역의 5층 건물이 공사장을 넘어 도로 위로 쏟아져 내렸다. 54번 버스 위로 콘크리트 덩어리가 무너져 내린 것이다. 등골 서늘한 장면이었다. 학동은 가난한 동네였고 공사장 맞은편에는 오래된 성매매집결지가 있었다. 여성 착취의 역사에 대한 반성이나 고민도 없이, 그 역사를 어떻게 자리매김시킬 것인가에 대한 합의도 없이, 광주는 땅을 파헤치기에만 급급했던 것이다.

광주는 상처 위에 상처를 덧입히고 있다. 변화를 거듭하며 멀쩡함을 연기하는 도시는 지난 이름들을 재빨리 덮고 싶어 한다. 이 도시는 가난한 거주자들의 상처를 일상적이게 만든다. 도시는 전옥주에게조차 기억될 땅 한평을 주지 않는다. 그녀뿐이겠는가. 가끔은 멀쩡하지 않은 나도 저 학동의 철거될 건물처럼 붕괴될 것 같은 기분에 소스라친다. 그래서 나는 단지 한번이라도 그녀들의 이름을 다시 불러보고 싶은 것이다. 청자, 순이와 같은 이름을 가졌던,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곳에 가서 다른 사람 목숨을 위해 따땃한 밥 한끼를 지었던 분들, 선옥, 미자같이 안타까운 이름들, 금숙 같은 살아남아 모두에게 실낱같은 희망을 보게 하는 이름들. 그리고 이름도 없는 이름들. 오늘 하루쯤은 멀쩡하지 않은 채로 보내면서, 이처럼 멀쩡하지 않은 이름들과 함께하고 싶다.

광주모더니즘

한유진 ㅣ 문화기획자.
전남대 철학과 박사 과정. 광주의 대표적 민간클래식음악회인 ‘광장음악회’를 기획하고 10년간 진행했다. 마을대학 강의·포럼, 마을 아이들과의 음악극 공연 등을 해오며 지역의 풀뿌리 문화 확산에 관심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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