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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반의반도] 새로운 아기가 아니라 새로운 광주를 시작하자

등록 2021-08-31 18:37수정 2021-09-01 02:36

한반의반도 _19
저출생은 국가적 문제이지만, 소멸의 위기에 내몰리는 지역의 문제는 또다른 차원의 고민과 대응을 요구한다. 하지만 광주 또한 전국적 대책과 크게 다르지 않고, 무엇보다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강제하는 방식에 머물러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게티이미지뱅크
저출생은 국가적 문제이지만, 소멸의 위기에 내몰리는 지역의 문제는 또다른 차원의 고민과 대응을 요구한다. 하지만 광주 또한 전국적 대책과 크게 다르지 않고, 무엇보다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강제하는 방식에 머물러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게티이미지뱅크

여기 광주에서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이 이처럼 되어서는 안 된다. 적어도 국가 폭력에 대응해 자율적으로 공동체를 구성해본 역사적 에너지가 사회의 저류에 이어지고 있다면, 학연이나 지연, 혈연에 기초한 ‘이너서클’ 공동체가 반복적으로 국가와 자본의 흐름에 편승하는 것과는 다른 궤도를 구성해야 하는 의무가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전남의 아이를 ‘훔치’고 소수자들을 소외시키는 정책으로는 우리의 아이들에게 지역 삶의 미래를 약속할 수 없을 것이다.

아이 한명을 돌보는 데에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는 속담이 있다. 그만큼 아이를 키우고 돌보는 데에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며, 가족을 넘어서 지역공동체 전체가 노력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정말 그 말대로 사회가 작동한다면 출산에 대해 고민하지 않아도 될 텐데, 나는 배 속에 아기가 생겼다는 사실을 알고서부터 당황스러웠으며 불안해해야만 했다. 새 생명에 대한 책임 때문이기도 하지만 출산 이후 경력이 단절되거나, 복귀하더라도 직장맘으로 사는 일이 무척 힘들다는 이야기들과 함께 출산과 육아가 한명의 여성에게만 많은 것을 짊어지게 만드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출산·육아와 관련된 정책과 제도는 넘쳐나지만 지역사회가 출생 이후 아이의 돌봄에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을지 의문이다. 아기를 책임지는 일은 분명 엄마가 된 이상 당연하다. 하지만 아기는 광주에서 태어났고 아마도 이곳에서 살아갈 것이며, 그 아기를 돌보는 나 또한 광주에서 살아간다면 출산과 육아는 한 가족의 사건에만 머물 수 없다. 아기가 태어난 후 아기를 돌보기 위한 새로운 공동체 또한 탄생해야 하는 것이다.

국가뿐만 아니라 지역사회 또한 출생률에 관심이 많다. 지난 7월, 광주광역시가 “전국에서 유일하게 출생아 수 증가”한 도시라는 보도가 있었다. 광주시는 전국적으로 광주만이 유일하게 5개월 연속 늘었다고 홍보하면서 광주의 육아정책이 거둔 성과라며 자축하고 있다. ‘인구’의 증가가 기본적으로 사회적 재생산 구조와 인프라 덕분이라면, 응당 광주의 출산육아 지원정책은 긍정적으로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수치가 사실상 인접지역 전남에서 아이를 ‘훔쳐’온 결과에 가깝다면 평가와 기록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실제 전남 전체 지역의 출생률은 전국에서 가장 많이 감소해버렸고, 1분기에 광주와 전남에서 태어난 신생아 수를 모두 합쳐야 평균 감소폭에 근접하니 말이다. 대부분의 지역들이 소멸할 것이라는 예언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상황에서 전남의 임신부들은 의료, 교육, 경제적 인프라가 비교적 잘 마련되어 있는 광주에서의 출산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광주와 전남 지역들 사이에 새롭게 놓인 고속도로 덕분에 지역 간의 이동이 매우 용이해졌기에 이러한 ‘출산지’의 선택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이 때문에 광주의 출산육아 정책이 출생률 증가에 영향을 미칠 수는 있었겠지만, 그러한 수치가 곧 지역사회의 유의미한 재생산으로 평가되는 데 동의할 이들은 많지 않아 보인다. 광주의 출생률이 높아지는 동안 주변 지역은 빈집처럼 비어가고 있으며, 광주에서 나고 자랐을 청년들의 이탈은 줄지 않고 있다.

출산 뒤 맞이한 실제의 환경 또한 높아진 출생률처럼 희망적인 세계는 아니었다. 오히려 출산 이후의 세계는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 황량한 야생에 가까웠다. 임신 여성에게 제공되는 국가바우처는 앞으로 맞이할 야생의 환경이 어떠한 것인지 체감하게 해주었다. 진료비, 수술비 그리고 산후조리비용은 국가와 지방정부의 지원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었기에 은행 잔고는 텅텅 비어갔으며, 젖 먹이는 방법, 기저귀 가는 법과 같은 기본적인 육아 방법은 출산 이전에는 듣도 보도 못한 생경한 것이었다. 아이가 어린이집, 유치원을 거쳐 초등학교에 올라가면 육아의 어려움은 더 커진다. 나처럼 직장에 다니며 아이를 키우는 여성들은 무엇보다 돌봄 공백을 메우기가 힘들다고 입을 모은다. 일례로 광주의 산업단지에서 일하는 엄마들은 잔업을 하지 않으면 수입이 줄어 생계가 위태롭고, 심지어는 일자리를 잃기도 하기 때문에 아이를 집에 남겨두고 오는 경우가 허다하다고들 한다.

물론 광주시의 지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연령대별로 일정 시간 아이를 맡길 수 있는 프로그램 운영이 대표적이다. 긴급아이돌봄센터에서는 영유아만을 대상으로 돌봄을 지원하고, 다함께돌봄사업은 3개 자치구에 돌봄기관을 두고 초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 육아지원을 제공한다. 하지만 지원 대상과 횟수가 한정적이라서 ‘보편 돌봄’으로 제공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선지 대부분의 맞벌이 가정은 여전히 부모님이나 여자형제, 특히 미혼의 여자형제에게 육아의 부담을 나누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현실을 잘 알고 있는 듯 광주시는 조부모들의 육아를 지원하는 ‘손자녀 돌보미 지원사업’도 시행하고 있지만 이 또한 해당되지 않는 여성이 적지 않다.

맞벌이 가정의 경우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은 소위 “할마”와 “할빠”가 감당하는 형편이지만, 이런 조건이야말로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현실적으로 ‘강제’하는 방식이 될 수도 있다. 아빠, 엄마, 그리고 자녀로 이루어져 있는 가족을 정상적인 가족으로 규정하는 사회에서 무자녀 가족, 입양 가족, 동거 가족, 조손 가족, 이민자 가족, 동성결혼 가족들은 지역의 정책으로부터 소외당하거나 특수한 형태의 가족으로 분류된다. 이를테면 광주시가 운영 중인 온라인 플랫폼 ‘광주아이키움’은 가족의 유형을 다자녀, 다문화, 입양, 장애아동, 한부모 가정으로 구분해 영유아 양육을 지원하고 있다. 이러한 유형 구분과 지원은 광주시가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지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정상가족의 생애사적 주기를 복제하는 데 주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난 4월 광주시가 추진하려다 시민사회로부터 거센 반발을 몰고 온 ‘두근두근 하트 줌(ZOOM)’ 또한 이를 방증한 사건이다. 이 행사는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25살 이상 40살 이하의 미혼남녀들에게 만남의 장을 제공하겠다는 취지로 기획되어 공공사업을 표방하면서도 민간영역 청년을 소외시켰을 뿐 아니라, 출산이 가능한 연령으로 대상자를 한정 지음으로써 결혼을 철저히 출산의 예비조건으로 간주하는 입장을 보였다. 결국 행사는 보류되었지만 광주의 출산육아 정책이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 묶여 있고, 또한 시민을 그에 묶어내려는 오래된 관점과 태도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이런 방식으로 정상가족을 지원 대상으로 규정하고 혈연공동체에 돌봄을 분담하도록 하는 현실은 다른 가족의 가능성을 허용하지 않는 체계 아래에서 이루어진다. 이런 제도 속에서 가족은 더 이상 삶으로 고양되는 ‘영혼의 거푸집’이 되지 못하고 소위 정상가족주의 이데올로기와 그를 위한 생애사적 주기를 강제하는 정치적 현장이 되어버린다. 아이가 삶을 재생산하는 길이 출산과 육아 제도를 통해 이미 ‘결정’되어버리는 셈이다. 지역사회가 소외된 가족과 아이의 삶을 돌보는 일보다 가시적인 수치에 매달리게 되면 지역의 삶의 기반은 취약해지기 마련이고, 지속성도 기대하기 어렵다. 특히 출산과 양육 그리고 그에 따른 교육과 의료 체계에서부터 여성의 경력단절과 사회적 활동, 미혼·청년 여성의 삶 그리고 이들의 주거와 생활 안정성에 이르기까지 거의 삶의 모든 영역이 각기 뛰어넘어야 할 허들이 되어버린 상황에서 지역 도시의 지속가능성 또한 전망하기 쉽지 않다.

특히 여기 광주에서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이 이처럼 되어서는 안 된다. 적어도 국가 폭력에 대응해 자율적으로 공동체를 구성해본 역사적 에너지가 사회의 저류에 이어지고 있다면, 학연이나 지연, 혈연에 기초한 ‘이너서클’ 공동체가 반복적으로 국가와 자본의 흐름에 편승하는 것과는 다른 궤도를 구성해야 하는 의무가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지금이 대대적인 출생의 ‘위기’ 상황이라면 광주의 인구정책 구축은 ‘페미니즘 정책과 제도’로부터 사유되고 상상되어야 할 것이다. 페미니즘 정책과 제도란 요컨대 광주가 올해부터 내세우는 ‘아이 낳아 키우기 좋은 광주’가 아니라 여성과 소수자가 살기 좋은 광주를 만들어나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지금처럼 전남의 아이를 훔치고 소수자들을 소외시키는 정책으로는 우리의 아이들에게 지역 삶의 미래를 약속할 수 없을 것이다. 광주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기 위해서는 광주의 민주주의를 먼저 구성해야 하는 이유다. 1980년 5월, 광주는 서로의 상처 입은 몸을 보고 함께 분노했다. 그가 노동자든 넝마주이든 상관없었다. 노동자, 넝마주이, 성매매 여성 등 소외된 이들이 당면한, 질식할 것 같은 현실이 개인의 목소리가 아닌 공동체의 정치적인 목소리로서 금남로 광장에 크게 울려 퍼진 것처럼 이제 광주는 이주자, 예술노동자, 성매매 여성, 경계인, 유가족, 청소년, 출산 여성들이 직면한 현실에서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최송아 | 광주모더니즘

인문학 교육단체 시민자유대학의 사무국장. 전남대에서 철학 전공. ‘시네필로’라는 제목으로 영화 속 철학적 사유를 글로 담았다. 여성, 동물, 돌봄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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