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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반의반도] 지역의 학력 차별과 젠더 차별적 층위

등록 2021-09-07 18:50수정 2021-09-08 02:32

한반의반도 _20
수도권에 비해 가부장적 문화가 더 강하게 남아 있는 ‘부울경’ 지역의 여성들은 취업 전선에서 학력 차별 외에도 젠더 차별이라는 이중의 벽에 부닥친다.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열린 ‘2017 글로벌 취업박람회’에서 해외 취업에 도전하는 구직자들이 채용 정보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수도권에 비해 가부장적 문화가 더 강하게 남아 있는 ‘부울경’ 지역의 여성들은 취업 전선에서 학력 차별 외에도 젠더 차별이라는 이중의 벽에 부닥친다.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열린 ‘2017 글로벌 취업박람회’에서 해외 취업에 도전하는 구직자들이 채용 정보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부산은 여전히 ‘싸나이’에서 ‘스트롱맨’에 이르기까지 지역을 남성 주체로 표상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지역 산업 개편을 논하는 미래나 혁신과 같은 담론은 마치 이런 오래된 성차별에 기반한 담론과 무관한, 젠더 중립적인 것처럼 거론되기에 더 문제다. 또한 ‘중공업 가족’으로 표상되는 부울경의 산업단지 시대는 저물고 있음에도 가부장 남성, 아내인 여성, 그리고 그들의 자녀로 구성된 중공업 가족으로 부울경 주민을 표상하는 방식은 아직도 강고하다.

지방대 졸업생인 나는 학교 바깥에서 동문을 만난 적이 거의 없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부산 바닥에서 이미 수차례 마주쳤을지 모르지만, 모른 채 지나쳤을 가능성이 크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누군가가 먼저 물어보지 않는 한, 지방대 졸업생이 스스로 출신 학교를 밝히는 일은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이처럼 지방대생이 스스로 자신의 출신 학교를 일부러 말하지 않는 것은 한국에서 지방대생을 바라보는 혐오와 편견이 담긴 사회적 시선 때문일 것이다. 지난달 출간된 <어느 대학 출신이세요?>(오월의봄, 2021)에는 경북 소재의 한 대학 졸업생이 자신의 모교(중학교)를 방문해 출신 대학의 이름을 밝혔다가 순식간에 ‘핵인싸’에서 ‘갑분싸’가 되어버린 일화를 소개한다. 대학 이름을 밝히자마자 싸늘해진 분위기에 결국 울음까지 터트리고 말았다는 이야기는 한국 사회에 만연한 학벌주의와 실제 많은 학생이 이를 체화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당시 현장에서 이를 목격한 후배 중 한 사람이었던 일화의 주인공은 그날의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아 자신도 그 선배와 같은 상황을 겪게 될까 봐 모교를 찾아가기 두렵다고 말한다.

<어느 대학 출신이세요?>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의 비영리독립언론 <단비뉴스>에 2년간 연재된 기획 기사를 엮은 것으로, 실제 지방대생을 취재하고 인터뷰한 내용을 통해 학력 차별과 지방대(생) 혐오 문제를 다양한 층위에서 분석하고 있다. 책은 한국 사회에 만연한 학력 차별과 지방대(생) 혐오가 얼마나 구조적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밝힘으로써 최근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다시 불거진 한국 사회의 능력주의와 공정 담론의 허점을 비판한다. 그리고 부모의 사회경제적 격차, 자원 분배 방식, 그리고 노동시장의 불평등에서 비롯된 한국의 교육 현장의 불공정을 기회, 과정, 결과 세 단계로 나눠 살펴보며, 그로 인해 지방대생이 얼마나 불공정한 대우를 받고 결과적으로 비합리적인 불평등에 처해 있는지 고찰한다. 다시 말해, 한국 사회에서 학력 차별은 단순히 능력과 노력의 문제가 아닌, 승자가 독식하는 편파적인 자원 분배 시스템에서 기인한 불공정의 문제라는 것이다.

다만, <어느 대학 출신이세요?>에 젠더 차별에 대한 고려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학력·지역 차별을 젠더 차별에 대한 분석 없이 계급 차별로 다 해명할 수 있을지 확신하기는 어렵다. 예를 들어 부산은 학력 차별에 얽힌 역사적·제도적·사회적 문제 외에도, ‘젠더 차별’이라는 문제가 한 겹 더 겹쳐 있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배경의 격차뿐만 아니라 부모의 젠더에 대한 차별적 인식에 따라서도 교육 기회의 불평등이 발생한다. 부모의 이런 인식이 자녀가 진학, 취업 경로를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이다. ‘공대 나오면 시집 못 간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한국 사회에서 오랫동안 이공계열의 일은 남자들만 하는 일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고, 세월이 흘러 이런 성역할 고정관념에 대한 인식이 옅어졌음에도 여전히 부산은 이러한 인식을 완전히 탈피하지 못했다. 흔히 여성이 이공계 진학을 기피한다고 하지만, 이는 실상 젠더 차별적 부모로부터 비롯된 가정환경과 가부장적 사회 분위기가 영향을 미친 것이다.

여학생들의 이공대 진학 비율이 증가하기 시작한 것은 1995년 이후다. 1990년대 후반부터 여성 엔지니어의 필요성이 증대하고, 공대가 취업에 유리해지면서 여대에서도 공대를 신설하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 몇년간 지속된 극심한 취업난으로 인문·사회계열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업률이 높은 공학계열로 여성 진학률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실제 1980년부터 2020년까지 공대 여학생 수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40년 전과 비교했을 때 이공대 진학 여학생의 수가 88.5배나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90배 가까운 수치가 증가했다 할지라도 전체 비중으로 환산했을 때 이공대 진학 여학생의 비율은 20%로, 여전히 절반에 훨씬 못 미치는 적은 수에 불과하다. 그뿐만 아니라 세부 전공별로 여학생 비율을 조사한 결과, 여학생 비율이 가장 높은 과는 37.4%의 섬유공학이었고, 자동차공학과 기계공학은 각각 5.2%와 8.3%로 여전히 그 비율이 낮았다.

설사 이공대에 진학하게 된다 하더라도 여성은 학과 생활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남성 비율이 월등히 높은 남초과 특유의 위계적이고 성차별적 분위기에 적응하기도 힘들거니와, 뛰어난 성취를 이룬다고 하더라도 남성에 비해 이를 인정받기 힘들기 때문이다. 실제 여러 통계에서 이공대 진학생 중 여학생의 자퇴 및 중도탈락 비율이 남학생보다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여성의 이공대 진학률이 높아졌다 할지라도 공대는 여전히 여성이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해야 한다거나, 여성이 남성에 비해 힘든 일을 하기 어렵다는 인식, 그리고 연구실의 군대 문화 등이 학과 생활 전반에 작용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통계상 부산을 포함하여 울산·경남 지역의 일자리가 적지 않은 것으로 집계되지만, 여성의 취업률이 갈수록 낮아지는 이유가 이와 연관이 있다. 해당 지역의 일자리 대부분이 중화학공업이나 자동차 산업 등, 이공계 전공 남성 일자리에 치우쳐 있어 실제 여성의 비율이 높은 이공계열 학과와 큰 연결 지점이 없다. 여성의 경우 대졸, 비대졸 상관없이 해당 산업 분야에 일자리를 확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부산 지역 대학에서 학생들의 취업률을 높이고 학생을 학교에 유치하기 위해, 산학협력을 맺고 다양한 취업 연계 프로그램을 개설하며 방안을 모색하고 있음에도 갈수록 부산 지역 대학의 자퇴생과 중도탈락생 비율이 늘어나는 것도 이와 연관이 있다.

지역 일자리를 창출하고 지역 인재를 육성하기 위한 일환으로 지역에 미래산업·신산업을 유치하고자 하는 정부 정책 역시 지역 여성의 일자리 문제와는 동떨어져 있다. 정부가 주장하는 미래산업·신산업의 핵심 주력산업 분야가 인공지능(AI), 미래 차, 바이오 등 이공계열의 남성 일자리에 편향되어 있어, 결국 기존 전문교육의 기회, 과정, 결과 전반에 걸친 젠더 차별을 반복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지역의 중소기업에도 대졸 여성이 취업할 수 있는 일자리는 아주 적다. 그나마 지역에 남아 있는 출판사, 문단, 언론 등의 인문·사회 기반 일자리도 거의 남성 인력이 독점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니 지역 대졸 여성이 일자리를 찾기 위해서는 서울로 가는 것 외에는 방법이 별로 없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지역 내에서는 이러한 문제에 대한 의식이 낮은 상황이다. 오히려 2030세대 전반에서 보이는 취업률 감소 그래프를 근거로 대졸 남성도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다고 호소하며, 취업 준비생의 눈높이만 탓하고 있을 뿐이다.

부산에서도 지역 청년 실업 문제나 지역 재생산 문제는 ‘미래’, ‘혁신’과 같이 마치 젠더 중립적인 것처럼 보이는 담론으로 구축된다. 서울과 수도권이 서울 주민을 남성 보편 주체로 인식하는 방식을 가까스로 벗어나고 있는 것과 달리, 지방은 여전히 지역 주민을 남성 주체로 보편화하는 오랜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부울경 지역과 같이 한국에서 전통적으로 가부장적 남성성을 대표하는 지역은 더욱 문제다. 부산은 ‘싸나이’에서 ‘스트롱맨’에 이르기까지 지역을 남성 주체로 표상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역 산업 개편을 논하는 미래나 혁신과 같은 담론은 마치 이런 오래된 성차별에 기반한 담론과 무관한, 젠더 중립적인 것처럼 거론되기에 더 문제다. 또한 ‘중공업 가족’으로 표상되는 부울경의 산업단지 시대는 저물고 있음에도 가부장 남성, 아내인 여성, 그리고 그들의 자녀로 구성된 중공업 가족으로 부울경 주민을 표상하는 방식은 여전히 강고하다.

따라서 지방대 차별을 비롯한 학력 차별은 학력·지역·계급에 대한 논의뿐 아니라 젠더 차별과 관련한 여러 층위가 다층적으로 얽힌 문제로 논의되지 않는 한, 지역에 대한 젠더 차별적 인식을 오히려 강화할 뿐이다. 특히 교육의 기회에서부터 과정, 결과에 이르기까지 지역 여성의 생애사 전반에 걸쳐 작동하며 이들에게 가해지는 복합차별, 특히 젠더 차별과 가부장적 문화를 변화시키지 않는 한 지역에 여성의 자리는 마련되기 힘들 것이다. 그렇기에 기존의 학력 차별 논의를 젠더 차별적 이론을 통해 사유하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

강희정 | 젠더·어펙트연구소동아대 소속 특별연구원
‘백신이 되는 증언과 이야기 유물론-김숨론’으로 2021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 당선. 현재 부산의 한 수산가공업체에서 미식과 이를 둘러싼 담론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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