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9일 오후 광주 동구 학동의 철거 작업 중이던 건물이 붕괴되면서 시내버스 등이 매몰되고 사상자가 발생했다. 전 5·18 단체 대표가 연루된 학동 재개발 참사는 ‘5·18 광주’의 가치와 다르게, 폐쇄적 ‘인맥사슬’이 도시의 지반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 보여준 사건으로도 해석된다. 광주/연합뉴스
마흔, 광주에는 친구가 없다. 진짜다. 흉금을 터놓기 어렵다. 모두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이 각종 ‘일’로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낯선 사람이 들어와도 누가 이 거미줄 네트워크를 진동하게 하는지 곧장 알아차린다. 안다고 생각하면 금세 무리 안으로 들이거나, 경계해 나가떨어지도록 만드는 일도 없지 않다. 수없이 쏟아지는 ‘뒷담화’가 바로 드나듦을 결정하는 논리이며 일을 하도록 할 것인가, 글러 먹은 태도를 지적질하며 지켜보다 내칠까를 은연중에 ‘합의’하고 ‘결정’하는 것이다. 제도와 시스템이 아니라, 이런 ‘뒷담화’가 ‘자리’를 조성하는 일은 원리상 불가능해 보이지만, 비록 친구가 아니더라도 모르는 사람이 없는 광주에선 충분히 가능한 현상이기도 하다.
광주가 이런 ‘꼬라지’가 된 건 공교롭게도 5·18 때문이다. 아니, 5·18 이후 형성된 분위기가 광주의 생태계를 학연, 지연으로 통칭되는 ‘인맥사슬’의 구조 안으로 몰아갔다. 국가폭력과 같은 외부의 강제에 더 이상 당하지 않고 살겠다는 논리가 한편으로 배타적인 관계 네트워크가 내부에 똬리를 틀도록 만든 것이다. 5·18과는 아무 상관 없이 이루어진 이런 분위기는 그저 파워엘리트의 ‘파워’를 강화하고 ‘자리’를 꿰찬 자들의 지위와 권력을 강화하는 논리만을 제공하게 만들 뿐이었다.
숭고한 사랑으로 이루어진 절대공동체라는 경험이 굴절되는 과정은 정작 5·18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을, 관심도 별로 없다는 것을 아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민주주의의 성지’, ‘인권도시 광주’라는 숭고한 슬로건 뒤에는 무관심 속에 방치된 어두운 과거와 현재가 있으나 사람들은 대부분 별 관심이 없다. 비근한 예로 1989년 광주 청문회를 기점으로 5·18 당시 일어난 성범죄 문제를 규명할 기회는 여러차례 있었지만 당시 정치권과 시민사회는 “악랄하지만 성폭행까지 당했다면 진상규명 과정에서 오히려 역공을 당할 수 있다”는 이해할 수 없는 이유를 근거로 그녀들의 비극에 침묵의 사슬을 채운 일이 있었다는 사실들이 이제야 드러나고 있다.(<5·18민주화운동 38주년 기념 학술세미나 자료집>, 2018) 5·18 이후에 광주(의 지도층과 파워엘리트) 스스로 억압한 민주주의의 역사를 어떻게 할 것인지 아무런 해명을 내지 않는 셈이다.
지난 6월24일 광주의 공공예술기관의 지위와 상식을 가졌다는 이들이 자행한 직장 내 갑질과 내면화된 검열에 대해 피해자인 예술가와 예술노동자들이 저항하고 연대하는 집담회가 있었다. 2013년부터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개관을 준비하던 아시아문화개발원부터 현재 아시아문화원의 검열 사례, 광주시립극단 단원들에 대한 노동인권 침해 문제, 지난 4월 폭로된 (재)광주비엔날레 직장 내 괴롭힘과 보복성 인사조치 등 광주 공공예술기관에 만연한 부조리들을 공론화하는 자리였다. 그러나 1980년 절대공동체를 체험하고 5·18을 민주주의의 상석에 올려놓은 선배들은 별다른 관심도 지지도 보이지 않았다. 5·18의 정신을 슬로건으로 내세우는 공공기관에서 5·18의 가치를 부정하는 일이 일상이 되어버린 사실은 우연이 아님을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5·18에 대한 이야기는 바깥에서 하도록 만들고 안에서는 5·18이 안착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해야 한다. 5·18이 민주주의, 하나의 민주주의가 아니라 더 많은 민주주의가 이루어질 수 있는 역사적 토양이라면, 내부에서는 이를 위한 ‘말’이 자생하고 안착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할 당위가 있다. ‘알음알음’ 자체가 문제인 것은 아니다. 알음알음이 ‘뒷담화’의 위계로 합의를 종용하는 부정의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증진할 수 있는 ‘말’의 자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뒷담화’에 대한 극명한 이해가 드러나는 ‘말’이 “전략적 선택”이다. 선거 때마다 같은 당을 지지하는 언론과 정치인들이 내뱉는 광주의 선택은 항상 옳다는 ‘말’ 앞에서 소수자들의 말들을 ‘옳지 않은 말’들로 만들고 왜곡하여 다른 진영의 말로 변조한다. 다양한 민주주의 대신 이런 민주주의만이 옳다고 종용하는 그들의 말은, 광주의 말과 관계들을 누추하게 만들고 있다. 이런 행태들은 상대의 말을 입막음하며 이번만 참으면 네가 원하는 대로 해줄게, 너의 사랑은 나만 받아들여줄 수 있어라고 위협하는 ‘가스라이팅’과 닮아 있다. 어느 영화에서 여자친구 배를 때리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남자 주인공처럼 말이다. 광주에서 이런 가스라이팅이 통하는 것은 1980년 홀로 저항하다 버림받은 깊은 트라우마와 그것들의 상처가 꿰매지지 않은 상태에서 오로지 우리의 고통을 아는 사람들만 믿으며 기형화된 인맥사슬 탓이 크다. 전 5·18 단체 대표가 연루된 학동 재개발 참사는 광주의 인맥사슬이 도시의 지반을 어떻게 무너뜨리고 있는지를 발가벗겨 보인 사건이다.
실상 1980년의 숭고한 사랑과 사랑의 통증을 국가가 인정한 이후 사랑은 끝이 난 것이었다. 다른 사랑을 시작했어야 했다. 그런데도 끝나버린 사랑을 욕보이고 때만 되면 찾아와 옷자락을 붙잡고 매달리는 일이 반복된다. 그런 사랑의 방식에 익숙해진 광주는 다시 또 그들을 선택한다. 그리고 그것은 ‘전략적 선택’이 된다. 가스라이팅에 중독되어버렸으니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는지 없는지조차 알 수 없다. 5·18의 사랑은 민주주의뿐이며, 전략적 선택을 향한 선거 앞에서 다른 선택과 사랑은 모두 하찮은 조개 따위나 줍는 일로 폄하되었다. 나아가,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받거나 오해받는다. 그리고 그 의심은 선택의 뒷배경을 파고, 누가 어떤 라인이 있는지 들추어 난도질하기에 이른다. 그래서 선거판이야말로, 파벌과 라인밖에 없는 판 아니었던가. 거대한 라인이 된 광주. 누가 되든 광주의 지지를 받는 당은 1980년 사랑의 절대공동체 라인에 서게 된다. 1997년 이후 모든 대선에서 광주는 평균 90%에 육박하는 지지율로 민주당 후보를 선택했고, 이는 전략적 선택이라는 찬사로 상찬을 받았다.
민주주의와 숭고함이라는 말로 ‘자연화’되어버린 5·18 중심의 사회구조 속에서 5·18과 관련되지 않은 다른 목소리들은 사회적 발언권을 얻을 수 없는 사소한 일로 치부되고 있는 것이 광주의 현실이다. 그래서 5·18은 ‘지위’를 얻기 위해 관련도 없고 5월의 진상을 정면으로 보려고 노력도 하지 않은 정치인만이 아니라, 누구나 입에 올리는 상투적인 수사가 되어갔다. 광주에서는 공공기관, 시민단체, 시민들, 청년예술가들 등등 모두가 5·18을 목소리 높여 외치지만, 정작 민주·인권·평화의 도시 광주는 지역별 성평등지수가 2013년 이후 중하위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2019년 지역별 성평등 수준 분석 연구>, 한국여성정책연구원)
5·18이 상투적 제스처로만 끝나지 않고 현실의 수많은 목소리들을 끄집어낼 수 있도록 5·18은 다시 발명되어야만 한다. 전략적 선택 이후 버려지는 민주주의라는 상투적인 수사만으로 살아갈 수도 해결될 수도 없는 현실에서 광주의 사랑이 미래를 꿈꾸게 하는 근거로 작동되어야 한다. 지금껏 5·18이 민주주의의 역사로 발명되었다면 이젠 그 역사에서조차 배제되었던 목소리를 복원하기 위한 페미니즘으로 발명되어야 한다. 이것은 여성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군으로 산화하기 전 보통의 노동자였던 윤상원과 같은 소수자들 모두를 말하는 것이다. 5월의 숭고한 사랑을 나눈 넝마주이도, 거리의 성매매 여성들도, 서른의 윤상원도 아무런 몫이나 지위를 갖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숭고한 사랑을 전략적 선택이라고 칭송하는 높으신 어른들의 목소리로만 가둬두어선 안 된다.
전략적 선택이라는 허울 좋은 수사에서 벗어나 몫 없는 자들이 죽음과 약속으로 지켜냈던 광주의 사랑을 다시 한번 대면하고, 지금 우리의 현실과 어떻게 접속해야 하는지에 대한 모색과 실천이 더욱 중요하다. 지위가 없는 그들의 목소리들이 발화될 때 신경쇠약 직전의 광주는 전략적 선택이라는 가스라이팅에서 벗어나 1980년의 숭고한 사랑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한재섭 | 광주모더니즘
광주의 첫 영화비평지 편집장. 전남대 문화전문대학원에서 광주민중항쟁 전후 광주문화운동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 준비 중. 박물관, 미술관, 콘텐츠 지원기관, 광주영화영상인연대 등에서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