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대 청년이 ‘김여사의 어쩌다 마을’을 먼저 읽고 그리다. 장태희
동네 이웃 수철이 쿠팡에 입사한 건 2년6개월 전, 아픈 아내와 두 아이를 돌보기 위해서였다. 일 시작한 지 한달 만에 10㎏ 넘게 체중이 빠진 수철을 보며 이웃들은 안쓰러워했고, 힘든 일을 씩씩하게 해내는 모습에 대견해했다. 응원하는 마음에 인터넷 주문은 되도록 쿠팡을 이용했다. 배송이 편리하기도 했지만, 회사가 성장해야 수철의 고용도 안정될 거라는 소박한 마음이었다. 원래 쿠팡은 매출 이상으로 적자가 늘어나는 ‘불안한’ 회사였다. 이왕이면 가족이나 이웃이 다니는 기업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인지상정이다.
작년, 코로나19로 택배 물량이 폭증하면서 쿠팡은 급성장했다. 회사는 잘나가는데 배달·물류노동자들은 죽음을 무릅쓴 노동에 시달렸다. 물류센터의 집단감염도 여러차례 일어났다. 이윤을 앞세워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외면하는 행태에 화가 났지만, 그래도 수철이 일하는 회사라며 이웃들은 화를 다독였다. 쌀이나 생수처럼 무거운 물건은 되도록 주문하지 않았다. 배달노동자의 고단함을 살피는 마음에서다. 역시 인지상정이다.
얼마 전 경기도 이천의 쿠팡 덕평물류센터에서 불이 났다. 여름에 에어컨도 없이 선풍기만으로 버티다 과열되면서 화재로 번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노동자들이 여름에 에어컨도 없이 물류 작업을 한다는 소식에 사람들은 아연실색했다. 지난 1월에는 밤샘 근무를 마친 50대 여성이 물류센터 화장실에서 쓰러져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기록적인 한파에도 난방을 하지 않았다고. 요란스레 뉴욕 증시에 상장한 ‘혁신 기업’의 이면이다.
환경, 사회, 지배구조 등 기업의 사회적 가치를 중시하는 이에스지(ESG) 경영이 화두다. 이윤 추구만 중시하고 사회적 책임을 외면하는 기업의 미래는 어둡다. 세계적인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는 환경을 위해 매출 일부를 ‘지구세’(Earth tax)라는 이름으로 매년 기부하고, 옷 수선도 평생 책임지는 정책으로 유명하다. 기업이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면서 돈도 벌 수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반면 혁신 기업을 표방한 쿠팡은 어떤가? 첨단 물류 방식이라던 로켓배송이 사실은 노동자의 피와 땀을 쥐어짠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쿠팡맨 수철은 2년을 견뎌내고 작년 12월에 마침내 정규직이 됐다. 그리고 6개월 만에 퇴사했다. 대책 없이 그만두는 탓에 실업급여도 못 받는 그를 동료들은 걱정하며 말렸단다. “나름 글로벌 대기업이라 노동법이나 취업규칙도 지켜지고, 꽤 안정된 직장이었어요. 얼마 전까지도 10년은 더 일하려고 했지요. 아이들 대학 보낼 때까지는 안정된 벌이도 필요하고요.” 버티려 애를 썼지만 도리가 없었다. “마라톤 할 때 에너지의 80% 정도만 써야 오래 달릴 수 있어요. 하지만 쿠팡에서는 100%도 모자라 늘 쥐어짜야 해요.” 평소 달리기로 다져진 수철이지만 허리와 손목 등 곳곳이 잦은 부상에 시달렸고, 늘 피로감에 절어 지냈다. 수철이 전한 또 하나의 소식은 정규직이 된 동료들 상당수가 병가나 휴직을 내고 쉬고 있다는 것이다.
물류센터 화재 사건에 이어 고객 갑질 방조를 부른 쿠팡이츠 불공정 약관 문제, 성희롱 피해 무시 사건까지 연달아 터지자, 이웃들은 더는 못 참겠다며 쿠팡을 잇따라 탈퇴하고 있다. “쿠팡이 제일 저렴하고 빨라서 편하게 이용했죠. 탈퇴하니 불편하긴 해요. 그래도 이건 아니죠.” 쿠팡이 제공한다는 고객 만족이 물류노동자이자 배달노동자인 내 이웃의 희생 위에 이뤄지는 것이라면 묵과할 수 없다는 말이다. “자기 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동료 시민으로 인정하지 않는 기업에 뭘 기대하겠어요. 노동자들의 건강과 안전을 지켜주지 못하는 기업을 우리가 지켜줄 이유가 없죠.” 쿠팡이 그토록 소중히 여긴다는 고객의 대다수는 사실 노동자다. 특히 장시간 저임금에 시달리는 배달노동자들이 돈과 시간을 아끼기 위해 쿠팡을 자주 이용한다고 한다. 고객과 노동자, 우리 이웃은 이렇게 분리될 수 없는 존재다. 쿠팡이라는 기업에는 희한하게도 ‘고객’만 있고 ‘노동자’는 없다.
수철은 예술노동자로 돌아왔다. 살도 제법 붙었다. 2년 반의 배달노동으로 한층 단단해진 수철이 어떤 애니메이션을 만들지 기대된다. “가끔 흐트러질 때면 함께 일했던 동료들을 생각해요. 지금쯤 어느 구역에서 배달을 하고 있겠지, 생각하면서 마음을 다잡아요.” 쿠팡이 망하기를 바라는 게 아니다. 수철의 동료들, 노동자를 동료 시민으로 대우하길 바랄 따름이다. 이걸 외면하고 계속 이익만 셈한다면? 그런 기업들이 과연 존재할 가치가 있는지 회의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