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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반의반도] 독립이, 아니 생존이 될까, 광주 예술가로

등록 2021-07-20 16:55수정 2021-07-21 02:04

한반의반도 _ 13

‘지역청년여성 독립기획자’라는 긴 명칭은 뭔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발음하기에도 벅찬 이 말이 광주 예술생태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별로 없다. 지역기획자나 독립기획자, 여성기획자와 같은 방식의 용어가 있지만, 지역청년여성 독립기획자는 존재해본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그 이름 위에는 어느새 허상들이 덕지덕지 붙어서 여러 편견이 작동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지역청년여성 독립기획자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우선 그 이름과 싸워야 하는 일이 첫번째가 된다.
지역의 청년예술인들이 제도권의 지원 사업에 의존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또한 생존을 보장하진 못한다. 사진은 광주문화재단이 2019 문화예술지원 사업 공모 설명회를 진행하는 모습. 광주문화재단 제공
지역의 청년예술인들이 제도권의 지원 사업에 의존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또한 생존을 보장하진 못한다. 사진은 광주문화재단이 2019 문화예술지원 사업 공모 설명회를 진행하는 모습. 광주문화재단 제공

나는 공립미술관의 안내 공무직으로 근무 중인 독립전시기획자다. 낮에는 안내 일을 하고, 밤에는 전시기획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일을 하면서 매번 보는 풍경인데도, 전시 하나가 새로 꾸려지는 모습은 항상 낯설게 다가온다. 제도권 안의 전시 준비 과정은 언제나 일사불란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기획, 작가 섭외, 디자인, 구조물 철거 및 설치, 작품 운송 등 일련의 과정은 모두 완벽하게 분업화되어 있다. 그리고 이 판을 설계하고 전체의 풍경을 감독하는 이는 학예연구사, 즉 직업으로서의 전시기획자다. 독립기획자가 꾸려내는 전시 실행 과정은 이와는 사뭇 다르다. 불충분한 자원 탓으로, 각 능력에 특화된 전문가들을 섭외할 수 없기 때문에 여러 방면의 능력을 갖춰야 한다. 그러나 개인이 지닐 수 있는 역량에는 한계가 있기에 외부로부터 여러가지 의존을 경유하지 않는다면 독립기획은 불가능하다.

‘지역청년여성 독립기획자’라는 긴 명칭은 뭔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발음하기에도 벅찬 이 말이 광주 예술생태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별로 없다. 지역기획자나 독립기획자, 여성기획자와 같은 방식의 용어가 있지만, 지역청년여성 독립기획자는 존재해본 일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존재들이 이제껏 제 모습을 마음껏 드러내며 활동하지 못한 것은 해당 용어가 사용된 적이 없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도리어 앞에 잔뜩 붙은 이런 수식들이 광주의 예술생태계 안에서 제 위치를 제대로 보장받아본 적이 없었다는 데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겠다. 그렇다 보니 그 이름 위에는 어느새 허상들이 덕지덕지 붙어서 여러 편견이 작동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지역청년여성 독립기획자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우선 그 이름과 싸워야 하는 일이 첫번째가 된다.

특히 ‘독립’이라는 말이 그렇다. 실제 우수전시기획 선발을 위한 최종면접에서 한 면접관은 공립미술관의 전시안내 공무직이라는 나의 이력을 발견하고 “공무직이라고 들었는데, 해당 전시기획을 잘 소화할 수 있겠어요?”라고 질문한 적이 있다. 순간 질문에 담긴 함의를 놓칠 순 없었다. 그의 질문 안에서 ‘독립기획자’란 쓸 수 있는 모든 시간과 비용을 전시에 쏟아붓는다 해도 제대로 된 전시를 만들기 어려운 존재이고, 더욱이 직장에 다니면서 전시 활동을 충실하게 꾸려나갈 수 있는 독립기획자는 존재하지 않게 된다. 하지만 나는 여기, 광주를 살아가고 있다. 면접을 마치고 건물을 나서는 길, 독립기획자는 생계와 무관하게 오롯이 전시에만 매달릴 때 긍정될 수 있다는 인식이 이 면접장뿐 아니라 광주예술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정한 독립기획자의 삶을 살기 위해서 직장을 포기해야 한다는 우려를 가장한 지적을 계속해서 받다 보면 이들이 상상하는 독립기획자란 ‘가난한 예술가’와 같은 낭만적 포지션을 반복적으로 지정받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그러나 ‘가난한 예술가’의 이미지가 예술가 자신을 장악하게 될 때, 사회적 기반이 없는 청년예술인들은 자연스레 ‘생존’마저 위협받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지역의 청년예술인들이 작품 활동을 지속하기 위해 제도권의 지원 사업에 의존하게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처럼 보인다. 그러나 지역신진예술인의 육성과 정착을 목적으로 한다는 지원 사업들은 작품 제작이나 기획에 소요되는 직접 비용은 지원하지만, 생존은 보장하지 않는다. 일례로, 광주문화재단의 지역문화예술(특성화)지원 사업은 최근까지 지원 사업의 주체(기획자)에 대한 인건비 책정을 원칙적으로 금지했다. 이런 규정은 2020년부터 완화되었으나 지금도 공모사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직접적인 수입은 총 지원 금액의 10%로 한정된다.

실제 광주의 독립기획자나 예술가 대부분이 각자의 자리에서 생존을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문화예술기관의 계약직 인턴 생활을 시작하거나, 미술학원 시간강사로 입시미술을 가르치거나,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인 벽화사업에 투입되고, 그런 기회조차 얻지 못한 사람들은 희망하는 일과 관계없는 단기 아르바이트를 통해 삶을 이어나간다. 생존활동과 예술활동 사이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다. 함께 미술대학을 다녔던 동기들 대부분은 전공과 전혀 관계없는 일들로 발걸음을 돌렸다. 하나 분투하는 청년예술인들의 고단한 얼굴은 쉽게 식별되지 않는다. 먹고살기 위해 감행한 선택은 때로 공모사업의 면접관에게는 숨겨야만 하는 두 집 살림과 같은 것으로 취급되기 때문이다. 아예 예술생태계로의 진입을 포기하는 이들이 늘면서, 오늘 광주의 지역예술생태계는 늘 ‘어제’보다 더 심각한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2021년 6월 광주광역시 비정규직지원센터의 ‘청년프리랜서 실태조사’에 따르면 광주지역 청년프리랜서 가운데 문화예술계 종사자 비율이 66.4%로 가장 높다. 부당대우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표준계약서의 개발과 보급을 명시한 지원조례가 2020년 9월 제정되었으나 1년이 돼가는 지금도 계발 단계에 머물러 있다. 지난 7월8일 광주시청에서 열린 ‘예술인 권리와 지위 보장에 관한 방안 마련’ 정책 토론회에서 우리가 처해 있는 지역예술생태계의 위기가 조금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미진한 지원정책에 대한 문제 제기뿐 아니라, 최근 드러난 광주비엔날레와 광주시립극단 갑질 사태, 아시아문화원의 하성흡 작가 작품 검열 등 사건 당사자와 관계자들이 직접 나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 자리에서 발언을 이어나간 이들은 제도의 피해를 입은 희생자인 동시에, 이 문제를 공적 차원에서 제기함으로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생태계의 자정을 꾀하는 사람들이다. 서로 처한 문제는 달라도 맥락은 다르지 않다.

따라서 독립기획자가 하나의 전시를 꾸려내기 위해서는 상호의존적 관계가 필수적이다. 달리 말해, 이미 갖추어져 있는 ‘제도’와 시스템에 의해 매개되는 관계를 넘어 개별 간에 불안정하나마 관계를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독립기획은 실제적으로는 상호의존성을 다 함께 공유하고 경험하도록 만드는 일이다. 그러나 이런 관계가 제대로 성립되지 못한 채 기획이 이루어지는 일이 다반사다. 부족한 지원금과 한정된 인적자원이 만들어낸 공백은 서로에 대한 의존으로 쉽게 보충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일방적으로 지원 금액이 삭감된다 해도, 계획서상의 내용을 모두 수행하기 위해 기획자와 작가들은 그 비용을 감당해야 한다. 이는 자칫하면 기획자와 작가, 그리고 디자이너와 시공업체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은밀한 착취로 변모한다. 지원제도의 방관 아래 착취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더군다나 사업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효율성의 논리에 포섭되기 쉽다. 상호 의존할 수밖에 없는 관계가 상호 착취로 변질되지 않게, 끊임없이 서로를 돌보는 일이 필요하다. 조직 내에 주어진 질서와 규율 아래 자기 역할에만 충실하면 될 뿐인 듯한 제도권 안의 전시 과정일지언정, 모순적으로 이 과정에 관여하는 수많은 이들을 동료로 인정하는 일이다. 테크니션, 인쇄소 직원들, 전시관 담당자, 하물며 재료를 배달하는 택배 직원들까지 고려하는 일로부터 전시기획은 시작된다. 이는 제도권이 지향하는 효율성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기에 돌보는 일이야말로 ‘독립기획자’를 위한 전제라 할 수 있다. 1년 단위로 진행되는 사업에서 우리는 그보다 더 먼 미래를 함께 일구어야 한다.

독립기획자이자 공무직으로 살아온 지도 벌써 4년이 되었다. 제도권과 독립기획자의 영역 사이에 발을 걸치고 있는 일은 여전히 힘겹다. 어느 한쪽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부담감을 아직까지 안고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경계에 걸치고 사는 부담이 나 혼자에게만 주어진 건 아닐 것이다. 이질적인 것들은 쉽게 보이지 않아서, 우리가 차마 감지하지 못한 다양한 자리에서 또 다른 존재들이 생존을 위한 움직임을 만들어내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야 할 곳이 여전히 척박한 예술생태계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렇지만 이 생태계에서 멸종하지 않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존재들을 발견하고 함께 연대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 이질적인 존재들이 함께 어울려 지역예술생태계의 척박함을 고발하는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될 때, 나뿐 아니라 다른 이질적인 존재들도 살아갈 터전이 마련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다. 이 연대를 만들어내는 일이야말로 돌봄이며, 또한 감추어져버릴 목소리를 드러내는 것도 우리의 돌봄의 과정 중 일부일 것이다. 여기서부터 우리의 ‘연대 기획’이 시작된다.

최하얀 | 광주모더니즘

독립기획자이면서 광주시립미술관 근무. 전남대 미술학과 졸업. 성매매여성, 넝마주이, 여성노동자로 대변되는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예술로 옮겨내는 전시기획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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