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사의 어쩌다 마을]
“여사님, 며칠만 이 할머니 간병 좀 부탁드려요.” 엄마가 요양병원으로 옮겨 가던 첫날, 상담실장은 오기로 한 중국 동포 간병인이 ‘노쇼 ’를 했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 궁여지책으로 다른 병실의 간병인에게 엄마의 간병을 부탁하며 ‘여사님’이라고 깍듯이 불렀다. 임시로 투입된 간병인은 예순 남짓의 중국 동포 여성이었다. 한국말도 잘하고 간병도 수준급이라 엄마는 매우 흡족해했다. “권 여사님이 나를 번쩍 들어 휠체어에 태워 화장실에 데리고 갔어. 처음으로 대변도 보고 목욕도 해서 정말 개운하다.” 교통사고 이후 3주 만에 화장실에서 용변을 본 엄마는 아이처럼 좋아하셨다. 간병인은 그냥 아줌마로 불러달라고 했다지만 엄마는 진심을 담아 또박또박 여사님이라고 불렀다.
‘여사님 ’이라고 하면 뭔가 고급스러운 느낌이 난다. 그 단어에는 물기가 없다. 대신 물기 묻은 사람들을 부리는 몸가짐 단정한 우아함 같은 것이 떠오른다. 지난 3월 초, 그 여사님들이 세상에서 제일 많은 곳에 일주일쯤 머물렀다. 엄마 간병을 위해 요양병원에 들어갔더니, 거기서는 여성 간병인들을 모두 여사님이라고 불렀다. 엄마가 입원한 7층은 한명을 제외하고 간병인 전원이 중국 동포였다. 동포 간병인들은 나에게도 여사님이라고 불렀다. 얼떨결에 나도 여사님이 됐다.
어쩌면 요양병원의 환자에게 의사나 간호사보다 더 절실한 존재가 간병인이다. 환자와 오랜 시간 온몸으로 부대끼면서 식사부터 대소변 배출, 목욕 등을 도맡아 한다.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일이자 가족도 감당하기 힘든 궂은일이다. 대개 요양병원에서는 간병인 한명이 6~8인실 전체를 책임진다. 치매 환자, 코로 영양식을 주입해 연명하는 중증환자도 많다. 워낙 고된 일이다 보니 숙련된 간병인일수록 피한다. 코로나로 간병인 구하기가 더 힘들어지면서 중국 동포 중에서도 의사소통이 안 되거나 전혀 훈련받지 않은 사람도 적잖다.
요양병원의 유일한 한국인 간병인은 혼자서 7명의 중환자를 돌봤다. 온몸에 파스를 붙이고 절뚝거리면서도 3년 넘게 병실의 간병을 도맡고 있단다. 얼핏 들여다본 병실은 기저귀, 음식물, 반찬통 등으로 너저분했고 간병인이 움직일 때마다 숨이 가빠오는 게 느껴졌다. 간병을 받아야 할 분이 간병을 하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될 정도였다. “이 여사님 없으면 중증환자들 케어가 불가능해요. 24시간 침대에 누워 있는 환자들 대소변 기저귀 갈고, 플라스틱 통에 환자영양식을 넣어 먹이고, 목욕도 시키고 정말 대단한 분이에요.” 간호사의 말에 왠지 숙연해졌다. 잠시간의 편견이 부끄러웠다.
여사님이라는 호칭을 처음 들었을 때는 이질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엄마가 대학병원에 있었을 때 간병해준 70대 어르신에게는 처음에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아무래도 어색해서 곧 ‘간병인님’이라고 바꿨다가, 이 또한 이상하기는 매한가지여서 결국 ‘아주머니’라고 편하게 불렀다. 요양병원에서는 모두가 여사님이라고 부르니 차라리 편하다.
문득 이웃집 청년 찌니가 대형마트에서 친환경 급식용 농산물 다듬는 일을 할 때 늘 여사님 이야기를 하던 것이 떠오른다. “무더운 여름에 종일 마스크와 장갑을 끼고 과일, 채소를 건사하다 보면 땀으로 샤워를 하게 돼요. 그런데도 나랑 같이 일하는 여사님들은 하루에 양파, 감자를 수십킬로씩 까요. 정말 존경스러워요.” 찌니는 지능이 낮은 느린 학습자지만, 마음이 진솔한 장점을 지녔다. 찌니가 ‘여사님’이라고 부를 때면 진심으로 존경과 애정이 느껴졌다. 그런 찌니를 여사님들도 늘 아껴주었다.
코로나로 요양병원 집단감염이 심각하다. 엄마가 입원한 요양병원도 한때 코호트 격리가 됐었다. 의료시스템은 물론 돌봄시스템까지 붕괴하고 있다는 뉴스가 나온다. 그 전쟁터 한가운데서 요양보호사, 간병인들이 버티고 있다. 가장 낮은 곳에서 땀 흘려 일하는 필수노동자들이다. 그들의 땀과 노동 덕분에 우리가 생존하고 있다.
몇년 전 대통령 부인의 호칭을 놓고 논란이 일었던 적이 있다. 일부 언론에서 ‘여사’ 대신 ‘씨’를 붙인 것이 발단이었다. 여사라는 호칭이 전근대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느낌이 심하니 ‘○○○씨’로 부르자고 하자 반대 여론이 거셌다. 무례하다는 것이었다. 아무튼 우리 사회에서 여사님이라는 호칭은 대통령 부인에서 간병인까지 다 아우르고 있는 셈이다. 물론 간병인에게 붙이는 여사님은 그 안에서만 통하는 호칭 인플레이션일 뿐이다. 호칭을 높이는 것으로 정당한 보상을 대신하려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도 나는 ‘여사님’이라고 부르면 마음이 짠해진다. 진짜 여사님들은 다 여기에 있다. 여기 이 낮은 곳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