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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승홍의 맞울림] 사회적 유대를 위한 방역

등록 2020-03-15 18:00수정 2020-03-16 02:05

이승홍 ㅣ 녹색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과장

코로나19의 대유행이 장기화되며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실에도 이와 관련된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분들이 늘고 있다. 사태 초기에는 미지의 전염병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주로 보였다면 지금은 뒤바뀐 생활에 대한 적응상의 어려움이나 심리적 소진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일상적인 외부 활동에서조차 긴장도가 높아진 반면 모임과 여가활동의 중단으로 스트레스 해소의 출구는 막혀버린 상황이다. 국가트라우마센터와 전국의 정신건강복지센터에 코로나19와 관련된 상담이 줄을 잇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자가격리자들은 물론 비감염 상태의 시민들까지 불안감과 우울감을 호소한다는 것이다.

전국민이 함께 겪고 있는 이 초유의 재난 경험은 사태가 지나간 뒤에도 모종의 집단적 기억을 남기게 될 것 같다. 나라에 어려움이 닥치면 함께 모여 서로를 격려하고 똘똘 뭉치는 게 좋겠지만 전염병 사태는 모두가 서로 거리를 두어야 물리칠 수 있다는 점이 고약하다. 현재 피치 못하게 강조되고 있는 이른바 ‘사회적 거리 두기’는 모두의 생존을 위해 개개인이 고립을 감수하도록 호소하는 일이다. 국민들은 사태가 어서 종식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를 따르고 있겠지만 그 이면에는 혹시라도 잘못하면 사회에 폐를 끼친 사람으로 지목될 수 있다는 두려움도 엿보인다. 동선이 공개된 감염자들의 일부 행동에 대한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를 충분히 목격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단지 각자가 조심하는 것만을 해법으로 삼는다면 타인에 대한 경계와 사회에 대한 불신이 후유증처럼 남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불신 대신 사회적 신뢰와 유대감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것은 공동체로부터 보호와 도움을 받았다는 실질적인 경험이다. 대다수 국민들은 이미 개인적인 실천뿐만 아니라 기부, 봉사를 통해 공동체를 지키려는 노력을 충분히 하고 있다. 여전히 부족한 것은 우리 사회의 기본적인 안전보장의 인프라다. 우리나라의 공공의료 체계가 부실하다는 지적은 이미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방치했던 의료체계의 ‘기저질환’이 코로나 사태를 맞아 드러났을 뿐인데 그 대가는 죄 없는 환자들이 받고 있다. 지역에서 확진자들이 대량으로 발생했다고 해도 준비된 대비체계를 갖춘 공공의료가 작동하고 있었다면 적어도 환자들이 자택에 격리된 채 사망하는 일은 없었을지 모른다. 속절없는 사망 소식에 국민들이 불안에 빠지는 것은 추가적인 피해이다.

궁여지책으로 생활치료센터를 개설하거나 타 지역으로 환자를 이송하는 방식이 도입됐지만 이마저도 유기적으로 작동하지 못해 곳곳에서 파열음이 들린다. 공공병원을 하루아침에 만들어낼 수는 없겠지만, 기존의 민간병원을 매입해 공공병원으로 활용하는 등 다양한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음에도 정부는 미온적이기만 하다. 집권 여당의 총선공약에는 정작 공공의료 확충 방안이 빠져 있다. 지금 대구·경북 지역에는 각지에서 모여든 의료인들이 지역 의료인들과 힘을 합쳐 국가적 재난을 온몸으로 막고 있다. 평상시에도 간신히 돌아가던 저인력 구조의 병원에서 끝없이 밀려드는 환자들을 돌보는 것은 신체적, 정신적 소진을 우려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무엇 하나 바꾸지 않은 채 이들의 봉사정신을 미담으로 소비하는 데에서 그친다면 이마저도 지속 가능할지 의문이다.

지금 국민들이 경험하는 공포감은 비단 전염병에 대한 두려움에서만 기인하고 있지 않다. 생계의 위협이 이미 피부에 닿아 있다고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불안정하게 고용되어 있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일자리가 없어지거나 임금이 삭감되는 중이다. 국민들은 다방면에서 생존의 위기를 경험하면서도 제 몫의 시민의식을 발휘하고 있다. 이런 고통을 겪으면서도 개인이 사회에 대한 신뢰와 유대감을 잃지 않게 할 조건을 만들어내는 역할은 국가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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