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홍 ㅣ 녹색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과장
정부가 지난 1일 열린 비상경제회의에서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으로 비대면 산업 육성을 제시했다. 이 계획에는 사실상 원격의료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비대면 진료가 핵심으로 포함되어 있는데, 그 일환으로 약 42만명의 건강 취약 계층에게 혈압계, 혈당측정기기, 인공지능 스피커 등을 보급해 보건소나 병원을 통해 원격으로 건강관리를 받도록 하는 사업이 진행될 예정이다. 건강관리를 위한 정책이 ‘경제정책 방향’에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 말해주듯 이러한 시도는 코로나 사태를 틈타 원격의료 관련 산업의 활성화를 꾀하고자 추진되는 규제완화 정책이며 의료 현장의 필요나 요구와는 동떨어진 발상이다.
사실 코로나 사태 이전에도 지역사회에는 병원에 방문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이 많이 있었지만 보건의료정책에서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다. 고령이나 신체적 장애로 인해 거동이 불가능해지는 경우가 대표적인 예인데 지속적인 건강관리가 더욱 절실히 필요함에도 정작 병원에 방문하기가 힘들어 가족이 대신 동일한 약만 처방받아 가는 일들이 발생하곤 한다. 이러한 문제에 있어 원격장비를 이용한 비대면 진료로 대체하는 방식은 그 효과성이 어디에서도 검증된 적이 없다. 외국에서 시행 중이라는 원격의료도 실상을 자세히 보면 방문간호와 연계해서 활용하는 등 보조적인 수단이지 대면진료를 대체하는 방식이 아니다.
병원에 방문하지 못하는 환자를 돕기 위해 국외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오랜 기간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방식은 방문간호, 방문진료와 같이 의료진과의 대면 기회를 넓히는 사업들이다. 이러한 방식은 단지 병원에 못 오는 환자들에게 의료진이 찾아가 약을 처방한다는 단순한 차원이 아니라 환자의 삶을 더욱 포괄적이고 전인적으로 이해하며 건강관리를 돕도록 하여 의료의 질을 끌어올릴 잠재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장애인주치의 제도나 방문진료 시범사업 등의 제도가 시도되고는 있으나 일부 뜻있는 의료기관이나 공공병원에서 산발적으로 시작되고 있는 수준이다. 방문의료 서비스에 대한 지역사회의 호응은 높은 편이나 이를 본격화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은 여전히 부족하기 때문이다. 지역사회를 위해 복무하는 공공의료 영역에서 이러한 역할들을 적극적으로 수행하는 것이야말로 코로나 시대가 요구하는 과제가 아닐까.
정신건강의학과 영역에서는 연속적인 치료 유지가 중요한 중증 정신질환일수록 오히려 진료실을 찾지 않는 현상을 흔히 목격하게 된다. 질환으로 인해 판단능력을 잃은 환자들은 자신의 고통이 치료를 통해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는 생각을 못하기 때문이다. 환자를 병원에 데리고 다녀줄 가족이나 지인이 없으면 질환은 방치되며 악화되고 스스로를 돌보는 기본적인 일상 기능조차 유지하지 못한 채 사회로부터 고립된 삶을 이어가게 된다. 이러한 처지의 환자들이 겪는 어려움은 간과되는 반면 극소수가 공격적 행동 등으로 사건 사고에 연루될 때에만 잠시 언론의 주목을 받을 뿐이다. 병원에 가지 못하는 중증 정신질환자들에게 방문진료를 통해 기본적인 약물치료라도 제공하는 사업들이 있다면 보이지 않는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많은 환자가 최소한의 치료 기회를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다. 지역사회에서 이러한 사례들을 발견하고 관리하는 기능을 각 지역의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담당하고 있지만 그 역할과 권한이 환자 스스로 병원에 방문해보도록 권유하는 수준에 한정되어 있어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데에 한계가 있는 실정이다.
건강 증진을 위해 환자와 치료자의 관계를 좀 더 긴밀하게 연결하려는 시도들이 다각화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의료기기는 사람과 사람이 주고받는 치료와 돌봄의 도구일 뿐이다. 돌봄이 있어야 할 곳에는 우선 돌봄이 있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