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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공공배달앱만으론 충분하지 않다 / 이종현

등록 2020-06-25 18:29수정 2020-06-26 11:48

이종현 ㅣ 가천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 위원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 소상공인 자영업을 도와주기 위한 대책이 다양하게 마련됐다. 2018년에 자영업비서관이 처음으로 신설된 것도 그렇고,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에 관한 특별법’ 역시 같은 취지에서 마련된 것이다. 최근 ‘배달의 민족’의 수수료를 둘러싼 논란이 벌어지자 여러 지자체가 공공배달앱을 구축하겠다고 나선 것도 그 대응책의 하나이다. ‘배달의 민족’이 여론의 반발을 수용해 수수료 체계를 변경하지 않기로 했지만 광고비든 수수료든 가맹점들이 적지 않은 비용을 치르는 구조는 바뀌지 않았다. 따라서 공공배달앱을 통해 비용을 줄이자는 지자체들의 정책은 여전히 유효한 상황이다.

자영업에 대한 지원은 시장 참여자의 일부에게 혜택을 주는 것이어서 늘 논란이 벌어진다. 경쟁을 저해한다는 주장부터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약하는 반시장적 행위라는 비판도 등장한다. 공공배달앱은 여기에 민간의 사업 영역에 왜 정부가 세금을 쏟아부으며 참여하느냐는 비난까지 듣고 있다. 그러나 시장에서 정부와 민간의 관계는 칼로 자르듯 명확하게 구분되는 것이 아니다. 정부는 세금으로 민간의 일부에 대해 직접 지원도 하고 새로운 산업을 육성하기도 한다. 직접 참여자가 되거나 관리자가 되더라도 그다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아무런 기준 없이 정부가 행동할 수는 없다. 정부의 개입에는 대체로 구조적 균형과 효율성이라는 단서가 붙는다. 구조적 균형을 유지하면서 효율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민간이 더 효율적인데 시도 때도 없이 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정당화되지 않는다.

공공배달앱은 이러한 조건을 충족할까? 공공배달앱은 기존 배달플랫폼의 독점적 상황에 제동을 걸고 구조적 균형을 실현한다는 의미가 있다. 이를 통해 경제적 약자를 보호할 뿐만 아니라 경제적 효율성도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배달의 민족’과 ‘요기요’의 합병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가 강도 높은 조사를 하고 있는 것도 독점의 우려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공공배달앱은 운영 방식을 둘러싸고 논란이 없지 않지만 정책적 개입의 타당성을 대체로 충족한다고 할 수 있다.

구조적 측면에서 시장의 효율성에 기여한다고 해도 또 다른 문제는 공공배달앱이 조직적 효율성으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느냐에 있다. 다수의 공급자와 다수의 소비자를 중개하는 배달플랫폼은 경쟁력의 두 가지 원천을 보유하고 있다. 소비자를 끌어들이는 능력과 가맹점을 관리하는 능력이다. 둘 사이에는 긴밀한 상보관계가 있다. 소비자가 많으면 기회를 찾는 공급자가 더 유입되고, 가맹점이 많으면 다양성을 원하는 소비자가 더 몰려든다.

공공배달앱은 새로운 플랫폼의 건축비용을 댄 것에 불과하다. 소비자를 유인하는 마케팅 혁신은 운영 과정에서 나온다. 그러나 공공배달앱에 기존 배달앱과 같은 기민한 대응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것은 공공부문의 전문성이 아니다. 시장에 대응하는 미시적 혁신은 민간기업의 장기이다.

경쟁력의 또 다른 관건은 약자로 치부되는 가맹점이다. 가맹점은 플랫폼의 ‘혁신’에 의존하지만 이는 가맹점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가맹점이 없으면 플랫폼은 텅 빈 가상 건축물에 불과하다. 기존 배달앱도, 공공배달앱도 마찬가지다. 가맹점은 양쪽 모두에 가입해 필요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이런 구도가 만들어지면 운영의 혁신에서 앞서는 기존 배달앱이 압도하게 될 것이다. 기존의 독점적 구조는 바뀌지 않고 정부는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다른 정책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다른 하나는 가맹점이 공공배달앱을 선택하는 것이다. 가맹점이 많고 다양할수록 플랫폼은 화려해지고 손님이 몰린다. 다소 더딘 혁신도 파급력이 클 것이다. 공공배달앱의 운영을 민관협력체계(PPP: Private-Public Partnership)와 같은 방법으로 모색해볼 수도 있다.

이러한 점에서 공공배달앱의 성패는 정부의 의지가 아니라 가맹점의 손에 달렸다. 그러나 소비자에 대한 노출을 한 단계 올리려 출혈경쟁도 불사하는 가맹점들이 결단을 내릴 수 있을까? 새로운 플랫폼이 자리잡기까지 공존의 인내를 발휘할 수 있을까? 쉽지 않지만 공공배달앱의 미래는 그들이 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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