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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여사의 어쩌다 마을] 아프니까 마을이다

등록 2020-08-09 17:48수정 2020-08-10 02:39

이십대 청년이 ‘김여사의 어쩌다 마을’을 먼저 읽고 그리다. 김우석
이십대 청년이 ‘김여사의 어쩌다 마을’을 먼저 읽고 그리다. 김우석

찌니의 첫인상은 어눌했다. 소년 같기도 청년 같기도 했다. 중장년들이 모인 마을 송년회 자리에서 시선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먹는 데 집중했다. 그때 찌니는 22세, 지능이 낮아서 ‘느린 학습자’였다. 대안학교 졸업 후 3년째 검정고시 준비 중이라고 했다. 치킨집에서 ‘1인 1닭’을 고수할 정도로 먹성이 좋은 찌니는 내가 해주는 음식을 좋아했다. “전 다음에 김여사 아줌마 같은 사람과 결혼할래요.” 칭찬에 기분이 좋아져 이유를 물었다. “음식은 잘하는데 적게 먹잖아요.” 모두 크게 웃었다. 엉뚱한 유머 감각은 찌니의 특기다. 찌니가 대학 진학 대신 건설 현장에 분전반을 납품하는 공장에 출근하기 전날, 가까운 이웃들은 성대한 축하파티를 열었다. 요즘도 찌니 엄마와 나는 찌니 진로를 놓고 머리를 맞대곤 한다.

찌니 친구 용이는 처음 봤을 때 좀 과하게 들떠 있는 듯했다. 그래도 재주가 많았다. 동네 아저씨들과 어울려 자전거 타는 걸 좋아했다. 용이 가족은 몇년 주기로 계속 이사를 다녔다. 지난해 4월 조현병 환자 안인득 사건으로 사회가 떠들썩할 무렵, 오랜만에 용이 엄마 소식을 들었다. 용이는 어린 나이부터 마음이 많이 아팠다는 걸 그때 알았다. 행동이 좀 튀고 남들과 다르다 보니 가는 곳마다 낙인으로 고통스러웠단다. 아픈 걸 숨긴 채 몇년 주기로 이사를 다녔던 이유다. 그래도 우리 마을에 살 때는 자전거도 즐겁게 타고, 어른들도 편견 없이 친구처럼 대해주어서 가장 행복한 시절로 용이가 기억한단다. “용이 같은 아이가 제때 치료받지 못하고 나이 들어 돌봐줄 사람 없이 방치되면 안인득같이 될 수 있어요. 안인득도 처음부터 그런 사람은 아니었을 거예요.” 용이 엄마가 가슴속 말을 담담히 풀었다. 담담할 리가 없다. 용이는 종종 엄마가 가짜라는 망상에 사로잡혀 엄마를 공격하곤 했다. 머리채를 안 잡히려고 삭발까지 했던 그녀다. 다행히 용이가 많이 좋아졌단다. 지속적인 치료와 가족의 헌신 덕분에 이제는 대학생활을 즐기고 있단다.

마을에 살다 보면 아픈 아이들이 많다. 아픈 어른들은 더 많다. 이 마을에 장애인이 유독 많은 탓일까? 2018년 기준 인구의 5%가 장애인이다. 20명 중 1명은 장애인이지만 주변에서 장애인을 보기는 쉽지 않다. 왜 그럴까? 장애인 운동을 해온 지인의 대답이다. “우리 사회가 장애인을 배제하는 노선을 택해왔기에 ‘존재하고 있지만 지워지는 존재’가 되어버린 게 아닐까요. 그 핵심에 ‘시설’이 있어요. 장애인들은 눈에 띄지 말라는 쪽으로 우리 사회가 합의해온 거죠.” 정신장애인을 포함해 모든 ‘비정상’을 시설에 가두어 배제하고, ‘정상인’ 중심의 멸균된 사회로 만들려는 근대의 기획을 비판한 프랑스 철학자 푸코의 문제의식과 겹치는 대목이다. ‘비정상’을 배제하면서 성립한 사회가 ‘정상’일 리는 없다. 타자를 가둔 채 내가 자유로울 수는 없다.

1940~44년 나치의 프랑스 점령 동안 약 4만명의 정신질환자가 사망했다. 평시보다 폭증한 수였다. 연구 결과 기아와 추위만이 아니라 정신질환을 절멸하고자 했던 나치 국가와 프랑스 비시 체제의 정책들이 비극을 낳았음이 밝혀졌다. 반면 프랑스의 생탈방 지역은 달랐다. 정신의학자 프랑수아 토스켈과 레지스탕스들은 정신병원의 문을 활짝 열어 환자들과 주민들이 섞여 살게 했다. 환자들은 들판에 가서 농민들을 돕고, 노동의 대가로 감자, 양배추 따위를 받아 끼니를 이었다. 병원은 마을 사람들을 채용해 병원 일을 돕게 했다. 후일 ‘제도화된 정신치료’로 명명되는 이 접근법의 원칙은 “환자를 치료하려면 우선 병원을 치료해야 한다”는 것, 즉 사회적 소외, 배제와 싸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혁명가 프란츠 파농이 여기서 배웠고, 정신의학자이자 철학자 펠릭스 가타리가 영향을 받았다.

마을에 살다 보면 서로의 숨겨진 아픔들이 눈에 들어온다. 나 역시 알코올로 몸과 마음이 병들어 시설 수용을 고민하는 늙은 동생과, 아들 걱정으로 같이 병들어가는 엄마가 있다. 내 가족에게 마을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을이 치료해줄 수는 없다. 다만 편견 없이 품어줄 수는 있다.

찌니는 두번의 공장일을 거쳐 지금은 대형마트의 친환경 급식 준비팀에서 일한다. 무더운 여름에 종일 마스크와 장갑을 끼고 과일, 채소를 건사하면서도 “같이 일하는 여사님들이 하루에 양파, 감자를 수십킬로씩 까요. 정말 존경스러워요”라며 노동하는 이들을 존중한다. 며칠 전 저녁에는 찌니가 회사에서 직원가로 싸게 구입했다며 싱싱한 채소를 나눔했다. 찌니의 노동으로 우리가 풍성해졌다. 여기가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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