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상징하는 듯한 둥근 물체 위에 위태롭게 앉은 시력을 잃은 한 여인이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하프를 끌어안고 있다. 비록 현은 다 끊어져서 마지막 하나밖에 안 남았지만 그녀가 연주하게 될 음악은 희망임을 작가는 암시한다.
<희망>, 1886, 캔버스에 유채, 111.8×142.2㎝, 테이트 브리튼, 런던
서명숙 ㅣ 제주올레 이사장
40여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는데도, 그 초라하고 옹색한 사무실 풍경을 또렷이 떠올릴 수 있다. 변변한 가구 하나 없이 책상 두개만 달랑 놓여 있었고, 책상 위에는 각종 책자와 자료 뭉치, 파일들이 어지러이 널려 있었다. 좁은 사무실 벽 한쪽에는 어울리지 않게 커다란 세계지도가 걸려 있었다. 대학 선배인 영초 언니가 곧 결혼하게 될 정문화(그는 오래전 다시 못 돌아올 하늘올레길로 떠났다)씨가 그의 동료와 후배 단 세명이 시작했다는 사무실의 이름은 ‘한국공해문제연구소’였다.
1980년 길고 긴 군사독재의 시절이 끝나고 찾아온 ‘서울의 봄’이 삽시간에 사라지고 다시 동토의 왕국으로 얼어붙은 이 나라에서 한가하게 공해 문제나 연구하겠다니? 나 자신도 현실에 안주하고 사는 처지였지만, 열혈 운동권이었던 그들의 변신이 낯설고 영 마뜩잖았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문화씨의 동료는 한반도에서 공해 문제를 연구하고 해결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장시간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그의 이름은 최열이었다.
공해문제연구소를 못마땅하게 여긴 건 주변 사람들만이 아니었다.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말로 포장해야 할 만큼 민주화에는 켕기는 구석이 있는 박정희 정권이었지만, 산업화는 ‘한강의 기적’으로 대대적으로 홍보해온 압도적이고 유일무이한 치적이었다. 박정희의 정치적 계승자임을 자처하는 전두환 정권 아래서 산업화가 야기한 공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치적의 이면, 기적에 가려진 그늘을 들춰내는 괘씸하기 이를 데 없는 ‘정치적 행위’였다. 그뿐인가. 압축적 고도성장의 속도전에 제동을 거는 ‘반경제적인 행위’이기도 했다. 그들은 이쪽저쪽에서 눈흘김받는 이단아들이었다.
서울살이 하던 청년기에 처음 환경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준 이가 최열 환경운동연합 대표(현 환경재단 이사장)였다면, 50대의 나이에 고향 제주로 돌아와 올레길을 내기 시작한 내게 환경을 지켜야 한다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던져준 스승은 제주 해녀 삼촌(제주에서는 동네 어르신을 남녀 공히 삼촌, 삼춘으로 호칭한다)들이었다. 올레길이 지나가는 100개가 넘는 제주의 바닷가 마을들에는 어김없이 해녀들이 있었고, 수많은 사유지와 마을길을 지나가려면 마을의 터줏대감 격인 해녀들과 친해져야만 했다. 만날 때마다 해녀 삼촌들은 내게 바닷속이 예전에 비해 얼마나 황폐해졌는지, 물건(해산물)이 얼마나 줄어들었는지, 육지의 인간들이 버린 플라스틱 쓰레기들이 얼마나 많아졌는지, 이 때문에 해조류가 사라지고 암반이 흰색으로 변하는 백화현상이 얼마나 심해졌는지를 생생하게 들려주었다.
한편, 그때의 청년 최열은 시간이 흐르면서, 이 땅의 청소년들에게 환경 문제를 일깨워주는 ‘최열 아저씨’로 불리기 시작하더니, 언젠가부터는 지구촌 기후변화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최열 할아버지’로 다가왔다. 2018년 폴란드 카토비체에서 열린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그는 ‘석탄은 이제 그만’이라는 캠페인을 극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굴뚝에 들어갔다가 온몸이 새까매진 채로 나오는 퍼포먼스를 해 세계에서 온 참가자들의 시선을 끌어모았다. 70살이 다 되어가던 최열 할아버지와 스웨덴의 17살 소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는 지구의 환경을 해치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면 점점 뜨거워지는 지구는 인류에게 엄청난 재앙을 안겨줄 것임을 온몸을 던져서 경고했다. 하지만 세대와 국경을 뛰어넘은 그 간절한 호소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위대한 미국의 부활’을 외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019년 파리기후변화협약을 보란 듯이 탈퇴했다.
지구를 학대하고 할퀴는 기업과 소비자들의 행태도 여전히 계속되었다. 석탄 캐기는 계속되고, 비행기와 자동차에서 내뿜는 배기가스는 나날이 늘어가고, 에어컨 사용량은 해마다 연중 최대치를 경신하는 등 지구를 뜨겁게 달구는 인간들의 어리석은 짓은 계속되었다. 하지만 최열 할아버지와 소녀 툰베리의 경고가 현실화하는 데에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만년을 버틸 거라고 굳게 믿었던 북극에서 얼음이 녹아내리기 시작하고, 그 녹아내린 물은 나비 효과를 불러일으켜서 유럽에서는 전례 없는 폭염을, 중국·일본·한반도에는 전대미문의 장맛비와 홍수를 퍼부었다. 인류의 보건 역사상 최대의 재앙이라는 코로나19로 휘청거리는 세계인들에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기상이변이라는 재앙까지 닥친 것이다. 이제야 사람들은 이 모든 것이 아껴 써야 할 지구의 자원, 함께 공존해야 할 동식물, 지키고 보호해야 할 자연을 마구 퍼 쓰고 남획하고 아프게 만든 대가임을 뒤늦게야 깨닫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세계 2강이라는 미국과 중국의 지도자들은 지구와 인류에게 닥친 재앙을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기는커녕,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방어하기 위한 무역 전쟁과 자국의 군사력을 과시하고 확인하려는 군사적 대치와 홍콩 사태를 둘러싼 정치적 비방과 선전전에만 여념이 없다. 우리나라 안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 사태로 ‘집콕’이 대세가 되고 로켓 배송으로 모든 의식주를 해결하면서 각종 일회용품과 플라스틱 폐기물들이 더욱더 늘어나는, 그나마 자리를 잡아가던 자연 순환, 재활용이 후퇴하는 현상까지 생겨나고 있다. 이 지구에서 우리보다 더 오래 살아나가야 할 미래 세대에게 참으로 면목이 서지 않는, 출구가 보이지 않는 날들이 계속되는 이즈음이다.
그런 상황에서 어떤 그림 하나가 떠오른다. 19세기 영국 화가 조지 프레더릭 와츠의 그림 <희망>이다. 지구를 상징하는 듯한 둥근 물체 위에 위태롭게 앉은 시력을 잃은 한 여인이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하프를 끌어안고 있다. 비록 현은 다 끊어져서 마지막 하나밖에 안 남았지만 그녀가 연주하게 될 음악은 희망임을 작가는 암시한다.
그렇다. 최열처럼 30대 청년 시절부터 70살을 넘긴 지금까지 ‘사랑은 뜨겁게 지구는 차갑게’를 외치면서 환경운동에 한 생애를 바친 사람이 있는 한, 기후변화를 멈추기 위해 어른들은 당장 왜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느냐고 대차게 쏘아붙이면서 동맹 휴학을 주도한 소녀 툰베리 같은 미래 세대가 있는 한, 바다 자원을 보호하기 위해 끝끝내 산소통을 메지 않고 자신의 숨만으로 목숨을 건 작업을 수행하는 제주 해녀 삼촌들이 있는 한, 희망은 존재하고 이어진다. 우리도 그 희망의 끈을 잇는 작은 행동이라도 당장 실천에 옮겨야만 한다. 우선 자가용을 세워두고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거나 미리 서둘러 걸어서 출근하는 일부터 시작할 일이다. 일회용품을 하나라도 덜 쓰고 플라스틱 쓰레기를 덜 버리고 하나라도 더 재사용할 일이다. 지구가 더 이상 뜨거워지지 않도록. 수해를 복구하는 손길들에게 미안하다고, 수고하신다고, 용기를 잃지 말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