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대 청년이 ‘김여사의 어쩌다 마을’을 먼저 읽고 그리다. 김우석
코로나19로 삶이 위축되고 불안과 두려움이 엄습하는 시절이다. 우리 마을이라고 다를까? 수다 떨기와 합창, 자전거 타기 등 비말과 땀방울을 공유해온 이웃살이 대다수가 정지 상태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접촉과 밀착을 기본으로 하는 마을살이에 치명적이다. 이 치명적 시절에 우리 마을에는 지구 반대편에 사는 아프리카 이웃들이 생겼다. 아프리카에서 온 후배 지니가 사절 노릇을 했다.
지니는 아프리카 몇몇 나라에서 국제개발협력 일을 해온 엔지오 활동가다. 지금은 3년째 탄자니아의 시골 마을에서 일하는 중이다.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심각해지던 3월 말, 귀국 지시를 받고 급거 귀국했다. 자가격리를 마친 지니는 우리 집으로 감격의 첫 외출을 했다. 나와의 인연도 깊었지만 몇해 사이 우리 동네 사람들과 제법 친분이 생긴 까닭이기도 했다. 지니와의 인연을 계기로 이웃 몇명은 한해 전부터 아프리카 여행 모의를 시작해서 온라인 톡방도 만들고 계도 만들었다. 지니가 없었다면 평생 아프리카 여행 따위는 상상도 못 했을 사람들이다.
지니가 방문했을 때 마침 이웃 여럿이 모여 마스크를 만들고 있었다. 공적 마스크를 사려는 사람들로 약국 앞이 장사진을 이루던 시절이었다. 동네 어르신들, 필요한 이웃들과 마스크를 나누자고 사람들이 정성을 모았다. 지니의 눈에 그 모습이 좋았나 보다. 탄자니아로 돌아가면 자기도 주민들과 마스크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했다. “그곳엔 진단 키트도 없어. 그러니 마스크가 절대적으로 필요해. 특히 마을 사람들이 함께 협력해서 마스크를 만들면 의미가 클 것 같아. 우리 마을에서도 자립의 기반을 만들어보고 싶어. 지역 주민들이 실천하는 사회적 경제가 이런 게 아닐까”라며 한껏 고양되었다.
지니에게 들은 탄자니아 상황은 심각했다. 아픈 사람에게 주술 치료를 하는가 하면 심지어 대통령이 기도로 코로나를 물리쳤다고 선언할 정도로 사실상 코로나 방치 상태라고 했다. 하긴 멀쩡해 보이는 소위 ‘선진국’들의 사정도 상식을 벗어나기는 마찬가지 아니었던가? 그 자리에서 우리는 지니의 탄자니아 이웃들을 위해 마스크를 만들기로 약속했다. 완성된 마스크 말고 제본된 천, 줄 등 부품들이 함께 포장된 ‘마스크 키트’로 만들기로 했다. 지역 주민들이 모여 함께 완성할 수도 있고, 부품과 디자인을 보며 응용도 할 수 있겠거니 싶었다.
6월 말 지니의 출국 날짜가 잡히자 키트 제작을 위해 마을 여성 10여명이 모였다. 누군가는 본을 그리고, 다른 누군가는 천을 잘랐다. 혹은 줄과 와이어를 자르고, 줄 길이를 조절하는 돼지코를 끼웠다. 또 누군가는 재료들을 모아 하나의 키트로 정리했다. 동네 남성들이 요리와 과일로 응원했다. 이렇게 마스크 키트 200개가 만들어졌다. 더 많이 만들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지니의 가방에는 더 이상 여유가 없었다.
얼마 전 탄자니아로 돌아간 지니가 사진 몇장을 보내왔다. 100여명의 탄자니아 시골 마을 아이들이 똑같은 마스크를 쓴 채 브이자를 그리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손팻말 여러개를 들고 있어서 확대해보니 손글씨로 ‘고마워요’라고 한글, 영어, 스와힐리어로 적혀 있었다. 우리가 만든 마스크였다. 또 다른 사진에는 화려한 탄자니아 천으로 만든 마스크를 쓴 어른들이 눈으로 웃고 있었다. 탄자니아 사람들의 응용품이었다. 사진이 마을 에스엔에스에 올라가자 유쾌한 간증들이 쏟아졌다. “올해 들어 가장 잘하고 보람된 일 같아요” “우리 앞으로도 이렇게 착하게 살아요” “엄마, 아빠가 한 일이 아프리카로 이어지는 걸 보니 신기하고 자랑스러워요” 등등.
마스크를 만들어 보낸 일이 무슨 대단한 선행이라고 자랑하려는 건 아니다. 그저 약간의 돈과 시간, 수고를 들였을 뿐. 가난하고 비위생적인 아프리카에 도움의 손길을 뻗친다는 ‘원조의 서사’ 따위가 들어설 여지도 없는 정말 소소한 에피소드에 불과하다. 그래도 이 에피소드를 통해 우리는 왜 대가 없이 타인을 돕고 싶어지는 걸까, 생각해보게 된다.
타인을 돕는 데서 느끼는 기쁨도 따지고 보면 결국 자기만족을 위한 건 아닐까 하고 스스로 묻게 될 때가 있다. 설령 그렇더라도 타인을 돕는 데서 얻는 만족과 타인을 이기고 해치는 데서 얻는 만족이 같을 리는 없지 않을까? 아프리카로 함께 여행 가자던 마을 사람들의 희망은 코로나19 탓에 한때의 즐거운 상상으로 끝날 것 같다. 우리 대신 마스크가 아프리카로 갔다. 그 마스크가 우리와 탄자니아의 시골 사람들을 연결해주었다. 그들이 웃음에 우리도 좋았다. 지구 반대편에 이웃이 생겼다. 이것으로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