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대 청년이 ‘김여사의 어쩌다 마을’을 먼저 읽고 그리다. 김우석
애정하던 동네 만두가게가 지난해 말 폐업했다. 집밥 같은 소담한 음식 솜씨는 기본, 주인 부부가 쿨하면서도 따뜻해서 동네 사랑방 구실을 하던 곳이었다. 우리 부부와 나이도 비슷해서 친구처럼 의지하고 지냈다. 장사가 안된다는 말이 들린 건 한참 전인데, 그래도 꽤나 버텼다. 자기 집이라 임대료 걱정이 없는데다 종업원 없이 부부 둘이서만 꾸려나간 덕이었다. “그때 폐업하기 얼마나 다행이야. 지금까지 문을 열었으면 더 고생했을 텐데.” 올해 2월 이후 코로나19 사태가 자영업을 덮치자 이웃들이 웃픈 덕담(?)을 건넨다.
자영업 위기는 뿌리가 깊다. 우리나라 경제활동인구 중 자영업자 비율이 25%를 넘을 정도로 포화상태가 된 지 오래다. 5년 생존율 30%라는 암울한 지표에도 중장년들은 오늘도 씨감자 같은 퇴직금으로 치킨집, 편의점을 차린다. 이 부부도 그랬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중견 건설사를 다니던 남편이 회사를 나왔다. 그때 남편의 나이 40대 초반, 아이 셋에 연로한 부모님도 부양해야 하는 처지였으니 얼마나 막막했을까? 고심 끝 선택이 만두집이었다. 마땅한 대안이 없었던 탓이다.
도처에 자영업자는 넘쳐나는데 소비행태는 급변하고 있다. 온라인 간편식의 부상은 변화의 뚜렷한 예증이다. “수십가지 선별한 재료로 정성스레 만두를 빚어봐야 값싼 냉동만두를 당할 수가 없네. 이젠 맛까지 제법이야.” 스스로 빚은 수제만두에 자부심이 넘치던 이들 부부의 한탄이었다. 냉동 간편식은 대세를 넘어 코로나19로 외식이 어려워진 시대의 구세주가 되었다. 직장맘인 후배는 “냉동만두, 치킨 같은 간편식하고 에어프라이어가 없었으면 무슨 사태가 났을지 몰라” 하며 푸념했다. 나 또한 지난여름 자가격리에 가까운 3주일을 온갖 종류의 간편식을 ‘집밥’ 삼아 버텼다. 소비자로서 우리가 누리는 편리함과 자영업 이웃들의 고단함은 이렇게 어긋난다.
폐업한 만두가게의 부인은 다행히 곧 마트에 취직했다. 골프 치는 사모님에서 만두집 아줌마를 거쳐 이제 마트의 계약직 노동자가 됐지만 그녀는 여전히 씩씩하다. 씩씩해서 좋은데 미래는 다시 불안하다. 마트에는 얼마 전 키오스크(무인결제단말기)가 들어섰다. 냉동만두가 손만두를 대체했듯이 기계가 사람을 대체하는 중이다. 2년 뒤 그녀는 어디에 있을까?
동네에서 베이커리 카페를 운영하는 또 다른 이웃은 제법 안정적인 축에 속했다. 인스타 감성 가득한 분위기와 커피 맛으로 나름 인근의 핫 플레이스로 자리잡았다. 널찍한 야외 테라스까지 갖춰 코로나로 힘든 시절에도 그럭저럭 버텼단다. 하지만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앞에서는 속수무책, 매출이 80%나 폭락했다고 한다. 카페는 김밥, 치킨처럼 포장, 배달 수요가 많은 업종도 아니라서 우산 없이 폭우를 맞는 격이 되었다. “매출은 줄어도 임대료, 알바생 월급은 나가고, 빵도 구워야 해요.” 저녁 무렵 커피와 빵을 사러 간 내게 주인은 당일 구운 건 다음날 못 판다며 케이크를 잔뜩 얹어주었다.
얼굴 맞대고 사는 동네인지라 고단한 자영업자 이웃들을 응원하려는 작은 노력들이 저절로 생겼다. 또 다른 동네 사랑방인 서점은 확장 이전을 하면서 동네책방의 필살기 커피와 음료 판매를 안 하기로 했다. 대신 이웃 카페의 메뉴판을 비치해놓고 주문을 받아준다. 파이 다툼보다는 ‘같이 사는 가치 있는’ 길을 택했다. 어떤 이들은 인터넷으로 값싸게 구입하던 원두 대신 동네 카페의 비싼 원두를 사서 나눔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동네 가게에서 재난지원금이나 지역화폐로 선결제를 한다. 추석을 앞두고 이런저런 선물 주문도 많아지면서 가게들에 숨통이 조금 트인다는 소식이다. 반갑다.
마을에서 함께 살아가는 법을 알기 전까지 내 정체성은 늘 소비자였고, 지향은 합리적 소비자였다. 가격 비교 사이트에서 최저가를 찾아 온라인으로 주문하고, 대형마트에서 프로모션 상품을 값싸게 구입할 때 뿌듯했다. 절약은 경제적으로 합리적이고 윤리적으로 올바르다고 믿었다. 확실히 그렇다. 서로 낯선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세상에서라면. 내 몇푼을 절약할 수 있다면 누군가 폐업하고 누군가 해고되는 일들이 무어 그리 큰일이랴. 가게 문 닫거나 잘리는 이들이 얼굴 맞대고 사는 이웃이 되자 그럴 수 없게 되었다.
전대미문의 팬데믹으로 모두가 힘든 시기다. 나의 비합리적 소비가 누군가에게 큰 힘이 된다. 내 낭비가 누군가에겐 폭풍우를 건널 수 있는 우산이 된다. 이웃이 불행한데 나 혼자 행복할 수는 없다. 동네에선 영리에도 영혼이 깃들기 마련이다. 자영업 이웃들, 부디 힘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