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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충걸의 세시반] 겨울밤에 문득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등록 2020-11-15 15:16수정 2020-11-16 02:39

스무살 청년이 ‘이충걸의 세시반’을 먼저 읽고 그리다. 김예원
스무살 청년이 ‘이충걸의 세시반’을 먼저 읽고 그리다. 김예원

이충걸|에세이스트

사랑이나 계절처럼 시간이 지나자 호기심이 변했다. 언제부턴가 신학이 개입된 고고학이 좋아졌다. 예수 이름이 새겨진 가족 묘가 발굴됐다거나 본디오 빌라도의 흔적을 찾았다거나 하는 소식은 유달리 의미심장했다. 예수가 실존 인물이 아니라면 서양사가 다시 쓰여야 할 테니까. 예수와 유에프오(UFO), 둘 다에 관심을 가지니 즐거운 양가감정이 생겼다. 그러나 우리는 우주에서 혼자가 아니라던 칼 세이건의 사랑의 과학, 외계인을 찾는 것에 더 신중해야 한다는 스티븐 호킹의 경고에 상관없이 외계인의 존재가 이렇게 실재적으로 느껴지던 때도 없었다.

입동 즈음의 11월 밤, 나는 와글대는 티브이를 끄고 와인을 챙겨 옥상으로 올라갔다. 형체 없는 빈 공간을 응시하며 추운 와인을 두잔 마셨다. 이러다 진공 속 삶에만 자부심을 느끼는 티브이 금지론자가 되면 어떡하지? 문득 냉면 그릇만한 유에프오가 옥상에 착륙하는 상상이 들었다. 문이 열리고 손가락만한 외계인이 이편으로 둥둥 떠내려와선 술 좀 줄이라고 충고하면 뭐라고 혼내주지? 이게 순전히 펑크적인 흥미인지 미확인된 진실인지는 아직 모를 일이다.

나는 팽창과 냉각을 반복하며 창공에 위치를 잡는 별과 은하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스페이스와 코스모스, 유니버스의 차이를 되짚었다. 전부 우주로 번역되지만, 스페이스는 인간의 탐사선이 대기권 밖으로 나아갈 수 있는 물리적 우주를, 유니버스는 천문학적 탐구 대상인 우주를, 코스모스는 유니버스에 철학이 스며든 우주를 의미한다는 것을. 마음에 오래 남는 온화한 산책이었다.

최근의 천체 물리학은 지구와 환경이 비슷한 행성이 속속 발견된다고 보고한다. 케플러 452b를 시작으로 프록시마 b를 거쳐 케플러 1649C까지 지구형 행성들은 손가락으로 세기 힘들 만큼 늘어났다. 미지이던 별의 분화구가 처음엔 탐사선을 위한 런웨이 이상이 아닌 것 같더니 이제 마지막 하강에 가까워진 걸까. 실험적으로 드러났으나 설명하기 힘든 숫자의 나열은, 만사가 꼬인 여기를 탈출해 아무도 아는 사람 없는 곳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은 뻔뻔한 마음에 불을 붙인다.

케플러가 수집한 데이터 위에 항성의 광도, 암석의 밀도와 구성 원소, 대기의 성분과 두께를 측정한 결과치는 그 행성들에 액체의 물이 존재한다고 추정한다. 이론적으로 생물체가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설사 유기체가 없다 해도 생물학적인 매력으로 가득하다.

갈릴레오도 아닌 내가 순진하게 흥분할 때, ‘어차피 가지도 못할 텐데 나와 무슨 상관이야?’ 하며 누군가 이죽거린다. 확실히 현대적인 문맥으로 보면 무정형의 열망에는 허위의 측면이 있다. 증명된 사실들은 정교하고 복잡하며 증명 이전의 상태로 자주 바뀌기 때문에. 그간의 용맹스러운 천문학 연구에도 불구하고 질문은 팽창한다. 문제는, 우주를 상상하는 데 따르는 딜레마가 너무 골치 아프고, 이 어리둥절함에 대한 기술적인 설명이 너무 어렵다는 것이다.

다중 우주는 있을까? 우주 바깥엔 뭐가 있을까? 혹시 우주는 도넛처럼 구부러져서 아무리 가도 영원히 제자리일까? (중성자와 양성자로 이루어진) 원자핵을 둘러싼 쿼크와 전자의 질량은 누가 결정할까? 화성은 진짜 지구의 쌍둥이별이었을까? 그 황량한 땅에도 언젠가 선인장꽃이 필까? 편도로 화성에 가겠다는 이들은 대체 누구일까? 우리를 흡족하게 하던 인간 중심 원리는 언제까지 옹호될까? 우주가 만들어진 심오한 이유가 따로 있을까? 아니면 즐거운 우연? 더 발견될 진실은 무엇일까? 우리 은하가 계속 형성되고 파괴되는, 본질적으로 무한대인 우주 가운데 하나라면 다들 좀 섭섭해할까? 우리 같은 관찰자의 존재를 허락하기 위해 우주는 반드시 추론대로여야 할까? 지금은 인류가 우주 중심에서 주변부로 이행하는 마지막 단계일까, 아니면 상상보다 웅대한 계시의 첫 단계일까? 혹시 올해가 가기 전에 외계인을 만날 수 있을까? 어쩌면….

그렇지만, 우주에 인간밖에 없다는 필수적 진실에 매달리고, 우린 참 운 좋은 별에 산다는 낙관에 동조한다 해도 그것이 흑임자보다 작은 나의 일 하나 덜어주진 못한다. 얼마나 많은 우주가 태어나고 죽었는지, 저 밖에 불모의 우주가 얼마나 되는지에 상관없이, 나는 지금 때맞춰 엄마 약을 챙겨야 하고, 보내야 하는데 끝내지 못한 칼럼 때문에 마음이 엄청 바쁘다. 단순한 생활의 숙제 하나가 우주의 팽창 가속화를 돕는 중력조차 저 멀리 밀어내다니. 그러나 내가 없다면 우주도 없을 것이다.

내 말은, 인간은 우주의 박테리아. 그러나 그 박테리아가 우주를 사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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