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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여사의 어쩌다 마을] 피할 수만 있다면! 돌봄노동

등록 2020-11-22 16:24수정 2021-02-14 16:24

이십대 청년이 ‘김여사의 어쩌다 마을’을 먼저 읽고 그리다. 김우석
이십대 청년이 ‘김여사의 어쩌다 마을’을 먼저 읽고 그리다. 김우석

그는 동네에서 ‘휴식’으로 통한다. 무려 21세기 이래 경제활동을 쉬고 있어서 휴식인데 그것만은 아니다. 휴식같이 편안한 사람이라는 뜻도 담겼다. 이른바 86세대에 속하지만 젊었을 때는 사회문제에 별 관심이 없었단다. 선거에서는 몇 년 전까지도 보수정당 후보를 찍었다고. 동네살이에 세상 보는 눈이 바뀌었다. 20세기에는 나름 잘나갔단다. 그가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하던 1990년대 초반, 한국 경제는 호황이었다. 안정된 대기업에서 일했고, 주식투자에 성공하면서 서울의 강남 아파트도 몇 채 소유했다고. 화근도 주식이었다. 아예 전업투자자로 나섰다가 결국 빈손이 됐다. 그렇게 수도권 외곽의 이 동네로 이사 온 게 십여 년 전.

20년 가까운 ‘백수’ 생활에 움츠러들 만도 하지만 휴식은 늘 유쾌하고 해맑았다. “남는 게 시간”이라며 마을 모임과 행사에 감초처럼 참가했다. 밥때가 되면 아이들 챙긴다고 웃으며 집으로 향했다. 가계를 책임진 부인에겐 무책임한 남편이었을 게다. 그래도 그에겐 어떤 이야기든 진심을 다해 들어준다는 놀라운 장점이 있었다. 공감능력 100점이었다. 일에 쫓겨 사는 마음 바쁜 사람들 사이에서, 휴식은 ‘휴식’ 같은 중심이었고 ‘회복탄력점’이었다. 재작년에는 동네 서점이 협동조합이 되면서 이사장이 됐다. 휴식은 날개를 달았다.

휴식의 또 다른 별명은 상속자였다. 천성도 해맑지만 오랜 경제적 곤란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데에는 부모의 자산이라는 든든한 배경도 있다고 서로 믿었다. 이 동네도 사람 사는 곳이다. 다들 휴식을 좋아하지만 ‘물려받을 것 없는 우리는 힘들게 일해도 삶이 불안한데, 누구는 부모 덕에 해맑아서 좋겠다’는 고까운 마음 한구석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휴식의 아버지가 얼마 전 돌아가셨다. 일군 재산도 많고 일가친척도 번성하다 보니 장례도 허투루 지낼 수 없었다. 장남인 휴식이 장례를 도맡았다. 장례식장은 번듯하게 잡았다지만 문제는 화환이었다. 오랜 공백 탓에 휴식에겐 인맥이 약했다. 고민을 눈치챈 동네 사람들이 이심전심 작전을 짰다. 모든 직함과 모임을 총동원해서 화환을 보냈다. 동네 동아리들까지, 각계에서 답지한 화환으로 장례식장이 꽉 찼다. 휴식에 대한 애정으로 기꺼이 ‘허례’에 동참했다.

휴식의 아버님이 이상 증세를 보인 건 작년 2월, 처음엔 치매인 줄 알았는데, 치매보다 훨씬 위중한 병이었다. 약 1년8개월 동안 사실상 식물인간 상태로 연명하다 세상을 떠나셨다. 더불어 휴식의 삶도 달라졌다. 강남 친가에 머물면서 돌봄을 전담하게 됐다. 아버지 돌봄도 힘겨웠지만 어머니 수발이 더 큰 일이었다. 어머니는 좀처럼 아버지의 부재를 인정하지 않으셨다. 곧 깨어나실 테니 큰 병원으로 옮겨 치료받자고 조르셨단다. 갈수록 종교에 맹목적으로 의존하셨다고도 한다. “어머니와 친척 어른들의 믿음이 너무 강해요. 이제라도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아버지를 편히 보내드리자고 말하고 싶은데, 이야기를 꺼낼 수가 없네요.” 휴식의 한숨이 깊어졌다.

죽음은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다지만 의료기술이 발달하면서 죽음도 관리 가능한 영역이 됐다. 경제적 뒷받침만 된다면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생명을 연장하고 싶은 게 가족의 인지상정이다. 몇 년 전 연명치료 중단을 허용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그 후 많은 어르신들이 자발적으로 사전 연명의료 중단 의향서를 작성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하지만 준비되지 않은 죽음 앞에서 판단은 늘 혼란스럽다.

늙고 죽어가는 과정에는 돌봄이라는 역할이 꼭 필요하다. 요양보호사, 간병인 등 외부의 지원도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족의 부담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돌봄은 경제적 문제이자 가족 간 역할 나눔이라는 이해관계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리고 대개 딸이나 며느리 같은 여성의 몫으로 미뤄졌다. 휴식은 기꺼이 자신이 맡았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오랜 간병에 아들 셋 중 둘이 지쳐서 포기했다. 이제 휴식은 진짜 상속자가 됐지만 모두의 휴식처였던 여유는 찾아보기 어렵다. 휴식을 유독 따르는 이웃 동생은 장례식장에서 “경제적으로는 빠듯했어도 여유 넘치던 시절의 형이 그립다”며 한탄했다. 휴식이 쓸쓸히 웃었다. 부디 그가 다시 휴식할 수 있기를.

상속자인 휴식조차 돌봄노동으로 삶이 피폐해졌다. 돈 없는 서민에겐 그 짐의 무게가 얼마나 클지 가늠하기 어렵다. 돌봄은 우리 시대의 숙명이다. 늙고 병들어가는 엄마를 떠올려본다. 존엄한 삶 못지않게 존엄한 죽음이 절실하다. 죽는 이에게도, 남는 이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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