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 청년이 ‘김여사의 어쩌다 마을’을 먼저 읽고 그리다. 장태희
동네 절친 애라는 얼마 전 제주 한달살이를 다녀왔다. 원 없이 책 읽고 글 쓰고 산책하면서 자신에게 집중한 시간이었단다. 문학이 자기 삶을 지탱하는 이유이자 로망인 애라다. “몇년 전 시집을 낸 후 내내 미뤄온 꿈을 위한 행복한 시간”이었다니 우리 모두 부러워할 수밖에.
애라는 나와 동갑이지만 그녀가 걸어온 삶은 한참 윗세대인 것만 같다. 갓 스물, 대학교 1학년 때 고향 목포의 도자기 공장에 노동자로 들어갔다. 거기서 노조를 만들다 체포돼서 옥살이를 했다. 남편도 노동운동 중에 만났다. 큰아들은 부부가 함께 징역을 살던 때 태어났다. 집안 반대를 무릅쓰고 남편과 서울로 야반도주한 이야기는 꼭 영화 같다. 전 재산이 집에서 훔쳐온 ‘콩 한 말’이었다고. 서울에 와서도 그녀의 삶은 평탄하지 않았다. 남편의 사업은 거듭 실패했고, 삶의 막다른 골목으로 밀려나기도 여러 번이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책 속에서나 볼 법한 구한말이나 식민지 시절 신산한 여인네의 삶이 느껴진다. 나도 집안 형편이 꽤 어려운 축에 속했다. 어려서부터 삶의 고단함을 꽤 겪었다고 생각했지만, 그녀 앞에서는 ‘온실 속 화초’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삶의 모진 풍파를 통해 단련된 덕분일까? 그녀는 너른 공감능력으로 우리 동네의 힐링캠프 구실을 톡톡히 한다. 힘든 일이 있으면 그녀에게 달려간다. 그녀와 이야기하다 보면 어느덧 그 어렵던 일이 별것 아닌 일이 되곤 한다.
내면의 힘은 강하지만 그녀의 육체는 허약하고 자주 아프다. 젊어 징역살이 중 허리를 다쳐 여러 차례 디스크 수술을 한데다 만성 빈혈로 자주 몸져눕는다. 약한 몸으로 두 아들에다 ‘후천성 철분 결핍증’ 남편까지 ‘자식 셋’을 키운다. 6남매 집안의 맏며느리 노릇도 있다. 가사와 돌봄노동에 생계노동까지 감당해야 한다.
애라는 3년 전 가족에게 중대선언을 했다. 밥은 차려줄 테니 설거지, 빨래, 청소 등은 세 남자가 분담하라고. 놀란 세 남자가 긴장해서 가사노동을 시작했지만, 그래도 그녀 몫은 여전히 크다. 그녀의 고단함을 실제로 덜어준 건 빨래건조기, 식기세척기, 로봇청소기 같은 가사노동 3종 세트였다.
결국 떠나야 했다. 작년부터 시작한 제주 한달살이는 애라가 이 지긋지긋한 노동에서 잠시라도 벗어나기 위한 결단이었다. 첫해는 남편과 함께였다. 그래도 한달살이 동안 ‘삶의 전환’을 모색할 첫걸음은 뗐다. 올해는 온전히 혼자였다. 한달 동안 ‘자유와 해방의 시간’을 가지면서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했다. “나를 지키는 게 제일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날 지키면 남편, 아이들 보듬을 힘도 생겨요.”
한달 떠나기는 결단도 실행도 쉽지 않다. 고단한 노동을 마치고 돌아오면 사랑하는 아내의 돌봄을 간절히 바라는 남편이다. 고등학교 2학년인 막내아들은 엄마의 보살핌과 지원이 절실한 나이다. 게다가 경제적으로도 늘 빠듯하다. “제주 한달살이를 떠나면서 가족에게 말했어요. 엄마는 가족에게 헌신하며 살지 않겠다고. 가족에게 헌신하면 헌신한 만큼 더 요구하게 돼요. 가족이 내 기대에 못 미치면 실망하게 되고요. 그러다 나 자신을 잃어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수만가지 현실적인 어려움에도 그녀가 제주 한달살이를 결단한 이유다.
‘탈가족주의 선언’ 이후 애라가 없는 한달은 집안 남자들이 자립심을 키워가며 성장하는 시간이 됐다. 애라의 부재를 통해 가족들은 그녀의 존재감을 깨달았다. 애라는 이제 1년에 한번은 제주 한달살이를 하면서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려 한다. ‘제주 한달살이’ 덕분에 나머지 시간도 기꺼이 버틸 수 있을 것 같단다. 몇년 후 막내가 대학을 마치면 남편과도 각자의 생활을 존중하면서 자유롭게 살기를 꿈꾼다. 일종의 ‘졸혼’이다. 가족은 힘이고 짐이다. 멈춤을 통해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의 확보야말로 지속가능한 가족을 위한 방편이다.
이제 동네 여인들은 너도나도 제주 한달살이를 꿈꾸기 시작했다. 아내가 없으면 ‘똥도 못 누고, 잠도 못 자는’ 남편에게 이야기를 꺼낸 릴라 언니는 대번에 퇴짜를 맞았단다. 대신 남편을 주말마다 낚시여행 보내는 묘수를 냈다. 그렇게 자신만의 시간을 가져볼 요량이다.
며칠 전 나도 남편에게 살짝 졸혼 이야기를 꺼냈다. “십년 후엔 지금처럼 같이 살되 서로 얽매이지 말고 각자 세계를 가져가면 어떨까.” 남편은 선뜻 안 된다고 거부하지 못한다. 조금 시무룩해져서 “고양이와 나, 어떻게든 살아볼게”라며 들릴 듯 말 듯 대답한다. 나도 자유를 위한 소중한 첫걸음을 디딘 걸까? 벌써부터 홀가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