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 청년이 ‘이충걸의 세시반’을 먼저 읽고 그리다. 김예원
이충걸|에세이스트
어떤 현자는 삶의 목표가 여유로움이라고 했다. 그래서 사과나무 밑에 누워 있겠다고. 그런데 이런 심리적 완충 시기에 누가 그럴 여유가 있지? 세상은 더이상 이어폰을 꽂고 어슬렁거릴 수 없는 곳이 되었는데.
그래도 다들 자기만의 방법을 찾는다. 포성을 피해 시계를 조립한 스위스 산골 마을처럼. 나도 한가지를 찾았다. 자기 전에 오페라를 보는 것.
부모의 결점을 찾는 어른들은 모든 것을 저지당하던 그때의 기억을 들춘다. 나는 어떤 맹공으로부터도 부모를 지킬 자신이 있다. 십대 초반, 아무리 오르간을 치고 큰 목청으로 노래해도 나를 제지하지 않는 것으로 이미 음악적 환경을 마련해주었으니까. 그리고 그때 나는 매일 카세트 녹음기로 줄리 런던과 임희숙과 수 톰슨을 들었다. 옆집 형은 노래하듯 말을 했다. 소위 음유시인 형이 듣던 노래는 죽음의 키스와 같았다. 라디오 주파수를 이지 리스닝에만 맞추곤 손도 못 대게 했기 때문에. 나는 화가 나서 한동안 음악 자체를 듣지 않았다.
오페라도, 처음엔 관심이 없었다. 외국 가서도 오페라극장 앞의 긴 행렬을 보며 세상에 어떻게 저런 인내심이 있을까? 그랬었다. 나에게는 객석에 앉는 것 자체가 주리 틀리는 일이라서.
호기심은 있었다. 레코드 가게에서 <나비 부인>을 살 땐, 여러 버전 중 제일 예쁜 표지를 골랐다. 턴테이블에 레코드판을 얹고 이십분까지는 버텼지만 더는 곤란했다. 꺼야 할 이유도 없었지만 재미도 없었다. 음악은 과학 공부와 달랐다. 오페라의 모든 것을 담은 책을 훑고 다시 표지가 멋진 책을 골랐다. 역시 성서 같아서 위대한 줄은 알아도 읽히진 않았다.
그 책이 맨 먼저 추천한 것은 베르디의 <리골레토>였다. 음악을 듣는 동안 어떤 것도 하지 않았다. 질다와 리골레토가 처음 듀엣을 했을 때, 그들의 떨림이 나의 박동은 아니었지만, 뭔가 잘 모르는 파동이 있었다.
나는 차이콥스키의 <예브게니 오네긴>과 오펜바흐의 <호프만 이야기>를 좋아했다. 베르디의 장관을 보았고, 푸치니를 흥얼거렸으며, 헨델의 ‘옴브라 마이 푸’에 홀렸다. 오페라 대본을 찾아 읽으며 음악은 스스로 고상해지는 무엇이라는 걸 알았다. 뭐든 관심이 생기면 논리가 필요할 것이다. 근원으로 들어가 퍼포먼스에 참가하기 위해선. 굉장한 오페라가 궁금하면 이탈리아에 가라는 말은, 커피의 참맛을 알려면 남미로 가라는 말과 같다. 크루아상도 프랑스 것이 필시 다른 나라 것보다 맛있으니까. 이탈리아 지도를 펼쳐 대충 다트를 던져도, 표적이 된 어느 도시든 장엄한 음악이 울릴 것이다. 이탈리아 오페라가 한 수 위라는 얘기에는 물론 몇세기에 걸쳐 연습했다는 진실이 웅크리고 있지만. 그해, 화재로 골격만 남은 베네치아 오페라하우스에는 폭격적 에네르기가 있었다. 나는 오페라하우스의 얼굴(검은 목과 그을린 뺨, 화염 속에서 튀어 오르는 입술 색)을 바라보며 만화 같은 감동을 느꼈다. 카탈로그처럼 몇 페이지 펼쳐지는 감동을. 상상은 실제적이었다. <라 트라비아타>의 비극적 오프닝이 끝난 저녁, 좁은 다리로 다가가는 베르디, 운하로 몸을 던지는 그 사람을 구체적으로 느꼈다.
오페라를 자꾸 볼수록 ‘음악과 지금’이라는 두 존재의 빛이 튕겨져 나갔다. 시간이 지나 라 스칼라에서 <피델리오>를 보았다. 금줄과 메달을 단 극장 스태프가 티켓을 확인한 뒤 홀을 가로질러 개인 코트 보관실을 열고는 관람석으로 안내했다. 개인 관람석이라고? 이 티켓이 그렇게 좋은 거였어? 금색 술이 달린 커튼 아래 붉은 벨벳 의자 두개가 보였다. 다른 객석 윗부분은 웨딩케이크에 장식된 거대한 층 같았다. 나는 넓은 원을 그리며 천장을 둘러보았다. 여기가 칼라스가 환호와 야유를 받았던 바로 그 무대구나! 잠깐 동안은 행복했다. 영국인 커플이 내 자리가 지들 거라고 우기기 전까지는. 자기네 티켓이 내 거보다 비싸다고 안 해도 좋을 말도 했다. 조명이 비치기 시작했다. 나는 끌어모을 수 있는 모든 위엄으로 내 좌석 뒤, 벽에 붙은 여섯개의 접이의자를 가리켰다. 그들은, 거기선 아무것도 안 보인다고 속삭였다. 내가 재빨리 매듭을 지었다.
“인생은 불공평해(Life is unfair)!”
각각의 개인 관람석마다 불행해 보이는 사람들이 피델리오의 농담을 알아듣기 위해 목을 길게 뺐다. 뭔지 몰라도 통쾌했다. 오페라는 그렇게 분별없이 사랑에 빠진 나의 잔인함에 불을 붙였다. 나의 한 부분이 침울하다고 해도 다른 부분은 곧 원래 궤도로 올라갈 거라고, 베이스 낮은음으로 다독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