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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반의반도] 길들여질 수 없는 5·18, 그리고 어머니

등록 2021-05-11 16:03수정 2021-09-24 14:32

[한반의반도] _3
1995년 광주 망월동에서 열린 통일미술제는 공식 비엔날레에 대한 저항이기도 했다. 사진은 당시 통일미술제에서 가장 눈길을 끈 들머리에서의 만장 설치미술. 광주/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1995년 광주 망월동에서 열린 통일미술제는 공식 비엔날레에 대한 저항이기도 했다. 사진은 당시 통일미술제에서 가장 눈길을 끈 들머리에서의 만장 설치미술. 광주/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상실의 자리를 보상으로 왜곡하고 그 대가를 챙기는 방식은 조직적이며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 제도적 기획의 일환이다. 검은 양복에 배지를 단 사람들은 매해 5월18일 찾아와 향에 불을 붙였다가 연기가 흩어질 즈음 돌아간다. 다신 이런 일이 있어선 안 될 것이라 해마다 말하는데, ‘이런 일’은 이미 일어나고 있다.

그것은 대체되지 않는다

우리는 그녀의 이름을 여전히 모른다. ‘어머니’라고만 부를 뿐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녀의 부음은 오래전에 학교를 졸업한 학생이 입소문을 듣고 장례식까지 찾아갔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불확실한 부음을 접하고도 어머니의 장례식을 찾은 것은 그 졸업생의 학교 기억에 ‘어머니’가 정박되어 있던 때문이다. 그에겐 ‘어머니’가 단 한명 애써 기억하지 않더라도 생생하게 새겨진 삶이었던 것이다. 1980년 5월, 시위에 나선 학생들에게 주먹밥과 떡을 나누어주다가, 그들의 빈자리가 몸에 남아버린 어머니는 수십년 동안 그 자리를 지키며 학생들에게 먹거리를 파셨다. ‘어머니’가 사라졌지만 그 자리는 여전히 ‘어머니’의 자리였고, 전남대학교 인문대 앞을 지나쳤던 사람들의 몸에 여전히 새겨져 있다. 비록 그 자리 근처엔 벌써 1년 전부터 무인커피자판기가 설치되어 어머니를 ‘대체’하고 있지만 말이다.

물론 교환되지 않는 삶의 기억은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가령 무인자판기가 그렇게 되지 말란 법은 없다. 그러니까, 어슬렁거리는 고양이는 물론이고 벼락을 맞아 고사 위기에 처해 있는 나무나 등나무가 휘감아 그늘을 만드는 벤치, 함부로 자라고 있는 풀들도 자연스레 풍경에 참여해 삶이 된다. 그러니 이름이 불명확한 존재들이 비록 다른 것으로 대체될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이 아직 놓여 있는 ‘자리’를 함부로 다루어선 안 되고 쉽게 교환될 수 있다고 믿어선 안 된다. 광주의 지역 국립대에서 숲과 연못을 기능적 공간으로 ‘공사’함으로써 기억과 역사를 모조리 ‘현금’이 될 수 있도록 ‘교환’한 것처럼 말이다.

간척사업 하듯이 진행되는 대학 내 기능적 공간의 배치 과정을 보고 있으면 이곳이 과연 지역거점이라는 용법에 알맞은 방식의 이념과 방향을 갖는 국립대학인지 의문이 든다. 공간이 삶을 주조한다는 앙리 르페브르의 말은 어머니와 숲과 연못을 오랫동안 들여다보아 온 인문을 ‘혁신’하고 ‘융합’함으로써 현금화하려는 흐름과 닮은 것이기도 하다. 달리 말해 ‘스펙’ 신체는 취업을 고려하는 학생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지거국’(지방거점국립대)이 만들고자 하는 몸의 형상이다. 스테로이드로 불린 텅 빈 몸처럼. 이곳으로 기입되는 모든 영혼들은 양화되어 측정되거나 평가되며 언제든지 대체될 수 있다. 심지어 교묘히 쓰다가 손쉽게 버려지는 일도 비일비재한 것이 사실이다.

영혼을 갈아 넣으면서 소진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은 대학 내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가령 노랗게 얼굴이 뜬 행정실의 조교와 인턴들, 3년마다 다시 계약해야 하는 ‘여전한’ 시간강사와 같은 연구자들이나 연구교수라는 ‘멋진 타이틀’만 달고 있는 비정년 트랙 사람들이 그러하다. 어떤 연구자가 자신에게 주어진 행정노동을 몇년 동안 놀라울 정도로 성실히 수행하다가 자발적으로 그만두는 상황에 처한 경우도 본 적 있다. 시간에 따른 정리나 자발적 정리나 매한가지다. 이곳에선 선별된 정규직을 제외하곤 소진과 폐기라는 개미지옥 바깥으로 나가는 출구를 찾기 어렵다. 교육부가 하달하는 사업을 ‘수주’하지 못하면 학과가 위기에 빠지는 딜레마를 정규직들도 알면서 어쩌지 못할 뿐이다. 아, 지역 대학은 숱한 상실들로 숭숭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이다.

지금도, 비엔날레와 안티비엔날레

반복되는 상실을 막을 바리케이드가 보이지 않는다. 1980년 5·18의 장소 중 한 곳이었던 광주의 국립대학이 처한 위기는, 단지 한 지역 대학의 몰락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연구자를 지키지 못하는 무력한 대학은 대체의 폭력에 맞서기 위한 5·18의 새로운 당위성도 만들 수 없다. 광주에서 5·18의 당위가 발명되지 못하는 동안, 광주의 저항정신을 표방하는 예술기구도 힘을 잃었다. 지난 4월26일 광주비엔날레 노동조합 직원들의 성명서는 우리가 알던 대체 불가능한 예술을 다루는 조직에선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을 보여주었다. 대표이사가 노동법을 무시하고 직원을 당일 해고했으며, 갑질까지 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성명서 각 내용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히 밝혀진 바 없다. 하지만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었던 건 직원들을 얼마든지 대체할 수 있고, 그것을 누군가 무기 삼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9일 폐막한 13회 광주비엔날레 ‘떠오르는 마음, 맞이하는 영혼’전은 폭력에 희생된 삶을 돌보며 공동의 생존을 살피고 있지만, 정작 재단 조직 내부의 삶들은 신음하며 가라앉고 있었다.

광주비엔날레 재단에서 벌어진 사건들이 간신히 외부로 드러났음에도, 진상조사가 곧바로 이어지지 않은 건 이상한 일이다. 노조 직원들이 제출한 진정서에 대해 광주시는 ‘전시에 국내외 이목이 쏠려 있다’는 이유로 ‘재단 임직원들은 전시에 전념해달라’고 말했다. 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는 동안 직원들이 재단을 떠나고, 대표이사에 대한 옹호나 반대 등 갈등만 깊어지면서 남은 노조 직원들은 고립무원 상태에 놓여가고 있다. 그러니 물을 수밖에 없다. 광주시는 이 상황을 방관하는가, 조장하는가. 그들이 만일 성공해야 할 비엔날레 전시에 노조가 흠집 내고 있다고 여긴다면, 광주시가 말하는 5·18이나 인권도 전시되는 것에 불과하다.

자신은 견고한 자리를 잡고 있으면서 자리가 취약한 사람들을 쉽사리 대체시켜온 이들은 절차 없는 해고를 노동자들의 무능력 탓으로 돌린다. 그들 저항을 대하기 어려운 특이한 사례처럼 취급한다. 관리자와 자본가의 말이 노동자들을 거칠고 난폭한 집단으로 재현하듯이.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라든가 ‘옛날에 나는 너보다 더했어’라는 말을 추가하면 확실해진다. 혹은 후폭풍을 걱정하며 ‘아무렇지 않은 척해야 해’라는 위장까지 추가된다. 저항이 특이한 사례가 될수록, 우리는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사람으로 변모하고 그게 일상이 된다. 갑질이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된다. 이런 원리가 작동되는 사회는 마치 상실을 ‘보상’할 수 있는 무엇으로 여긴다.

5월이 되면 광주는 상실을 애도하고 기념하는 행사들이 빼곡하고, 상당수는 국가가 주도한다. 그러나 국가 폭력이 이 도시를 쓸어버렸을 때 사라진 사람들 모두, 그녀, 그, 어머니, 아버지, 아들, 딸이라는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살아남은 이들에게 5·18의 기억은 말보다 고통이 먼저 터져 나오는 상처였다. 상실과 상처가 즐비한 도시는 울음소리도 함부로 내지 못하다가, 문민정부 들어서야 간신히 말할 길을 얻었다. 그러나 제도와 시스템은 5·18이라는 거대한 상실을 협상 테이블에 올려버렸다. 상실의 자리를 보상으로 왜곡하고 그 대가를 챙기는 방식은 조직적이며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 제도적 기획의 일환이다. 검은 양복에 배지를 단 사람들은 매해 5월18일 찾아와 향에 불을 붙였다가 연기가 흩어질 즈음 돌아간다. 다신 이런 일이 있어선 안 될 것이라 해마다 말하는데, ‘이런 일’은 이미 일어나고 있다.

1995년, 광주에 주어진 비엔날레는 5·18의 구멍을 메우려는 국가의 교묘한 시도였다. 5·18 고소 고발에 대해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검찰의 공소권 없음 결정 이후 생긴 비엔날레였기에 이 기구의 도입이 과거 청산을 미루는 대가로 이해되는 건 잘못된 판단이 아니었다. 광주의 상실을 비엔날레라는 바라지 않는 보상으로 채워보려는 시도가 도리어 광주를 더 아프게 만들었을 뿐이다. 고통의 목소리를 감지한 전국의 민중미술가들이 모였다. 그들은 망월동 묘역에 미술 축제를 열었고, 그것이 바로 1995년 제1회 통일미술제, 안티비엔날레였다. 말과 글, 그림, 사람들이 자율적으로 모여들어 장례와 기념의 공간인 망월동 묘역은 광장으로 변모했다. 5·18의 아픔이 무엇으로도 해소될 수 없음을 보여줌으로써 오히려 5·18을 위로한 셈이다. 안티비엔날레는 비록 1회로 끝났지만, 메시지는 지금도 남아 광주비엔날레 주변을 맴돌고 있다.

지난해 8월 광주시립극단에서 벌어진 객원 단원들에 대한 막말, 성희롱 피해사건 또한 광주비엔날레의 사태와 맥락을 같이한다. 두 사례는 모두 비일비재한 일 중 겨우 수면 위로 떠오른 사건들이다. 그들은 네가 지워질 수 있다면 나 또한 삭제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발화하고 있다. 지금 떠오르고 있는 저항들이 우리의 이야기임을 잊지 말자. ‘어머니’가 5·18의 빈자리를 40여년 동안 지킨 것처럼, 안티비엔날레가 말한 것은 상실의 자리에 대한 존중이기에.

※편집자주: 한칼 공모를 통해 선발된 독립연구공동체 ‘광주모더니즘’은 격주로 광주의 현실과 개별의 삶을 이야기한다. 다음 차례는 또 다른 한칼 선정자인 부산 기반의 젠더·어펙트연구소가 맡는다. ‘한반의반도’는 한반도에서 또 나머지 반(半)으로 구별, 인식되는 ‘지역’으로부터의 발화를 심도 있게 담아보고자 한다.

김서라 | 광주모더니즘

광주에서 나고 자란 청년 연구자. 전남대 대학원 박사과정(철학)을 수료했다. 광주·전남 일간지 <광남일보>에서 미술평론 당선. 관심 분야는 미술, 도시, 지역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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