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광역시 중흥동의 성매매집결지. 2020년 6월 맥양집이 즐비한 붉은 거리 옆에는 아파트 재개발이 한창이다. 사진 정유승
짧은 치마와 화려한 블라우스를 입고 헌혈 대열에 서성일 때 사람들의 수군거림 속에서 그녀들은 가느다란 외침으로 자신들을 드러냈다. “우리 피를 검사라도 해서 써주세요.” 그러나 그녀들은 퇴폐하고 문란한 존재라는 낙인으로 인해 5월의 역사 저편으로 사라져 갔다. 그녀들은 ‘시민’의 자리조차 할당받기 어려웠다.
‘그녀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미 뿔뿔이 흩어져 찾을 수 없었다. 상시적인 폭력에 노출되고 갚을 수 없는 ‘빚’으로 정처가 일정하지 않기도 했지만 너무 많은 시간이 흐른 탓이기도 했다. 사십년 전 그녀들을 추적하는 것은 예술가의 헛된 욕망일지도 몰랐다. 이 욕망을 불러일으킨 것은 상시적인 폭력에 노출되고 출구 없는 빚더미에 앉아 있던 그녀들이 1980년 5월 시민들 사이에 자신들을 드러냈다는 사실이었다. 실제 1988년 청문회 당시의 증언록이나 이후 이뤄진 증언에도 반복해 등장했다. 그녀들은 이름과 형상을 제대로 부여받지 못했지만, 어렴풋하게, 완벽히 지워지지 않을 정도로만 힘겹게 호흡을 멈추지 않고 있다. ‘창녀’라는 모멸적인 어법으로.
지번에서 도로명 체제로 바뀐 뒤 황금동은 정확한 지명도 알기 어려운 동네가 되었다. 항쟁의 거리로 나온 성매매업소인 세칭 ‘황금동 콜박스’ 일곱 여성들의 존재를 실감하기는 어렵다.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이나 5·18기념재단의 방대한 자료집 어디에도 그녀들은 나타나지 않았기에 무작정 골목 안으로 들어간 게 언제였던가. 이들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로 ‘유리방’ 안에서 버려진 물건들을 따로 모으기도, 전시를 하기도 했지만 그녀들의 자취는 끝내 찾을 수 없었다. 행불자나 신원미상 사망자에 그녀들 역시 포함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이즈음부터 들기 시작했다.
홍등가의 불이 꺼져가는 5월의 새벽, 그녀들은 업주의 눈초리를 피해 버려진 옷가지와 신발 켤레를 주워 담고, 삶은 계란 한판을 들고 홍등가 끝자락의 슈퍼마켓에 맡겼다. 물 담긴 주전자를 옮기고 망자의 시체를 염했다고도 전해온다. 황금동 콜박스를 중심으로 도청은 걸어서 5분 안팎 거리였으니, 그녀들이 나타난 것은 항쟁이 출현시킨 공동체에 감응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콜박스 거리 가까이 적십자병원이 있었고 병원의 현관과 복도에 어지럽게 누워 있는 사상자들을 그녀들 역시 외면할 순 없었다. 짧은 치마와 화려한 블라우스를 입고 헌혈 대열에 서성일 때 사람들의 수군거림 속에서 그녀들은 가느다란 외침으로 자신들을 드러냈다. “우리 피를 검사라도 해서 써주세요.” 그러나 그녀들은 퇴폐하고 문란한 존재라는 낙인으로 인해 5월의 역사 저편으로 사라져 갔다. 그녀들은 ‘시민’의 자리조차 할당받기 어려웠다. 이들을 한사코 지우려 들던 건 계엄군만이 아니었다. 그녀들은 항쟁이 종료된 이후에도 한동안 그곳에 있었을 가능성이 크지만, 지금까지 어떤 목소리도 들려온 바 없다.
뒤늦게, 그녀들을 쫓아 광주에 있는 오래된 성매매집결지를 돌아다니며 그녀들이 머물고 떠난 자리를 영상에 담았다. 그곳에 들어가 카메라를 들고 서 있는 것만으로도 몸과 마음이 닳는 고통에 시달렸다. 더군다나 성매매집결지 주변을 돌아다닐 때마다 누군가가 나를 감시하는 듯한 느낌에 불안했지만, 어쩌면 이 폭력에 노출될지 모른다는 공포가 그녀들의 감각인 것만 같아 쉽사리 털어낼 수는 없었다. 누군가로부터 직접적으로 연원하지 않는 이 시선이야말로 그녀들의 위치를 드러내는 것이었고 이를 감내할 몫이 내게 있다는 판단도 들었다. 이러한 감각 없이는 그녀들에게 도착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유리방 속에서 지금의 디지털성범죄 피해자들이 겪었을 수치심과 모멸감을 떠올린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1980년 황금동을 두고 “수술해야 할 도시의 환부”(<월간전매> 80년 4월호)라며 재개발을 주장했던 광주와 지금의 광주는 달라졌을까. 지금의 공공기구는 그녀들을 ‘치부’라는 말로도 표현하지 않고 그저 없는 셈 친다는 게 다르다면 다른 점이다. 황금동을 도시에서 도려내야 할 곳으로 설정하면서 도시미화와 재개발을 이야기했던 때로부터 41년이 지난 지금 황금동은 쇠퇴한 구도심의 한 곳이 되었다. 그리고 황금동 건너편 천변 근처에 위치할 ‘유네스코 미디어아트 창의도시 플랫폼_미디어아트융복합센터(AMT센터)’는 올해 완공될 예정이다.
2년 전 5월을 앞둔 어느 봄, 광주시립미술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주영한국문화원이 주최했던 ‘2019 유네스코 미디어아트 창의도시, 광주’를 기념하는 미디어아트 전시인 ‘순환의 메타포_주영한국문화원_2019’의 참여 작가로 선정되었다. 출품작은 15곳의 광주 성매매집결지를 낮과 밤의 시간대로 분할하고 화면 앵글을 대조적인 시각으로 담은 <집결지의 낮과 밤>(2018)이었다. 성매매 피해자의 인권과 권리가 착취당했던 곳이지만, 광주에서는 존재해도 보이지 않도록 처리되는 공간으로 의미화한 작품이었다.
그러나 결국 전시에 참여할 수는 없었다. 담당자에게 항의했지만 해결되지 않자 성명을 내고 집담회를 열었다. 일방적으로 찾아온 시립미술관 관계자들은 아랫사람에게 책임을 미루거나 담당자가 바뀌었다는 식으로 말을 돌리면서 이 문제를 그저 개인의 실수에서 비롯된 것처럼 취급했다. 이들의 말을 종합하면 결국 참여하는 작가들 중에 나이가 제일 적으며, 인권도시 광주라는 명성에 누가 갈 ‘성매매집결지’라는 드러내선 안 되는 주제를 다루기 때문이라는 것이 선정 후 배제 논리의 요지였다.
이 사건이 드러낸 건 ‘추하고 불편한’ 것을 구분 짓고 외면하려는 기관의 편협한 미적 태도, 그리고 예술제도가 문제의 책임을 돌리고 해결을 지연시키는 방법으로 연공제를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러한 예술제도 안에서는 5·18이 살아남을 수 없다. 광주의 미술관 누리집(홈페이지)에 사과문이 게시됐지만 단 2주 만에 삭제된 사과문 앞에서 더 이상 싸워낼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지금도 그 일은 짙은 흉터로 남았다.
하나의 사건을 넘어, 광주가 이미지화하고 싶은 범주에 ‘그녀들’의 자리는 애초 없었단 진실을 폭력적으로 확인시킨다. 2014년, 유네스코 미디어아트 창의도시로 선정된 광주는 야심 차게 ‘유네스코 미디어아트 창의벨트’ 조성을 계획하고 ‘자연과 첨단이 만나는 예술도시 광주’라는 미래상을 그리는 중이다. 이에 도시는 산수나 풍경을 미디어 화면에 옮기거나 빠르게 전환하는 시각적 효과만이 담긴 미디어 작품들을 선정하고 전시하기에 여념이 없다. 물론 그 산수와 풍경에 예전에도 부재하던 ‘그녀들’이 새삼 있을 리 없다.
광주는 인권과 예향을 재료로 삼아 낡아가는 도심을 가상의 유토피아로 만들려는 것일까. 기술로 구현될 ‘인권의 빛’은 인권 너머에 있는 ‘몸’들을 직면하려고 하지 않는다. 미디어 안에서 반복되는 5·18의 이미지는 41년 전 독재정부에 대한 저항을 상기시키지만, 반대로 지금 곪아가고 있는 도시의 아픈 상처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내버려둔다.
2019년 연말, 광주광역시 동구는 관할 지역인 대인동의 폐업소 ‘영빈관’을 빌려 인권작품 전시회를 열게 했다. 전시는 어쩌다 남은 연말의 사업비에서 공간 임대료만 지불하기에도 퍽퍽한 예산으로 진행되었다. 막상 유리방으로 첫발을 디디자, 멈춰 있던 시간들은 금세 드러났다. 빛 한 점 들어오지 않은 32개의 붉은 방에는 굽 높은 구두, 얇은 옷들, 여성의 이름이 적힌 돈 봉투가 먼지 먹은 채 놓여 있었다. 벽에 남겨진 “윤희야 힘내자”라는 낙서는 감옥 같은 방에서 작은 희망이라도 찾고자 했던 그녀의 구조요청 같았다.
지금의 젊은 그녀들은 신도심 상무지구에 모여 있다. 시청과 은행, 방송국, 유흥업소들이 즐비한 상무지구에는 굳이 미디어아트가 들어오지 않아도 이미 불야성이다. 술 취한 사람들과 차들이 몰리는 와중에 승합차 한대가 유흥업소 건물 앞에 서면, 여성들이 서둘러 내려 건물 안으로 들어가곤 한다. 광주성매매피해상담소 ‘언니네’와 함께 ‘아웃리치’(현장지원활동)를 나가, 업주의 안내를 받고 구조 문구와 24시간 연락대기 스티커가 붙은 생활용품을 장판 위에 쏟아내고 빠져나온 적이 있다.
그녀가 벽 위에 구조요청을 남긴 것도, 또 다른 여성들이 손을 내밀게 되는 것도 제도나 기관의 관심은 충분하지 않은 탓이다. 그녀들은 일상적인 폭력들을 견디면서 미래를 상상하지 못하고 오늘만을 지탱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1980년 황금동 여성들도 2021년 상무지구의 여성들도 침묵할 수밖에 없다. ‘빛’고을은 밝은 미래를 보여주는 장막을 치고 음지의 여성들을 가린다. 사람들은 홀린 듯 그곳만을 바라보고 있다. 과연 우리는 그 장막을 걷고 그녀들을 바라볼 수 있을까. 그때야 그녀들은 입을 떼게 될 것이다.
※편집자 주: 한칼 공모를 통해 선발된 독립연구공동체 ‘광주모더니즘’은 격주로 광주의 현실과 개별의 삶을 이야기한다. 다음 차례는 또 다른 한칼 선정자인 부산 기반의 젠더·어펙트연구소가 맡는다. ‘한반의반도’는 한반도에서 또 나머지 반(半)으로 구별, 인식되는 ‘지역’으로부터의 발화를 심도 있게 담아보고자 한다.
정유승 | 광주모더니즘
영상미디어작가. 전남대 미술학과(조소 전공) 졸업. 수년째 광주지역의 성매매집결지 공간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관찰, 기록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2018 광주비엔날레에 ‘상상된 경계들’로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