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위 구성 실패 이후
자주파-평등파 갈등 깊어 ‘타협’ 난망
분당땐 민심 설득 어려워 가능성 작아
자주파-평등파 갈등 깊어 ‘타협’ 난망
분당땐 민심 설득 어려워 가능성 작아
민주노동당이 대선 후유증을 수습할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에 실패함으로써,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로 빠져들 조짐을 보이고 있다.
비대위 구성을 놓고 다수파인 자주파(NL)와 소수파인 평등파(PD)가 줄다리기를 벌였지만 의견 조율에 실패했기 때문에, 다시 비대위를 추진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평등파 쪽은 이미 ‘정파 관계자 비례대표 불출마 선언’을 주장한 데 이어, ‘종북(從北)주의·패권주의 청산’까지 비대위 임무로 제안했다. 비례대표 후보에 정파 관련자 대신 국민적으로 설득력 있는 인물들을 ‘전략공천’할 권한을 비대위에 주자는 수정안을 받아들이려던 자주파 쪽은, 종북·패권주의 문제가 거론되자 반대쪽으로 급선회했다. 이렇게 감정의 골이 파일 대로 파인 상황에서 절충점을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총선이 코앞에 다가온 상황에서 지도부 공백 상태로 당을 운영할 순 없기에, 자주파 쪽에선 임시 당대회를 최대한 빨리 열어 5월로 미뤄둔 당 지도부 선거를 실시하자는 견해가 나온다. 자주파의 한 핵심 인사는 “한쪽에서 분당론이 나오고 있으니, 빨리 수습하려면 곧바로 당직 선거에 들어가야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당 지도부 선출은 오히려 분당을 가속화하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 평등파 쪽이 “대선 평가와 재창당을 각오하는 수준의 당 쇄신이 없는 수습안은 ‘봉합’에 불과하다”며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전날 중앙위원회에서 평등파 최대 의견그룹인 ‘전진’이 ‘종북주의·패권주의 청산’ 안건을 현장에서 발의한 것도, 정파 갈등의 핵심 문제를 건드리지 않은 수습은 미봉에 불과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평등파 쪽의 한 핵심 인사는 “환부는 건드리지 않은 채 당 지도부를 뽑아서 뭘 할 수 있겠느냐”며 “그런 선거는 인정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평등파 일부에선 “이럴 바엔 차라리 갈라서자”는 분당 얘기까지 나온다.
그러나 자주파 쪽 인사들은 “대선 패배 원인을 찾자는 데는 공감하지만, 느닷없이 웬 종북주의냐”며 “대선 참패 원인을 종북주의에서 찾는 게 과연 설득력이 있겠느냐. 위기 상황에서 다수파를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색깔론”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평등파가 이 논란을 확산시키는 배경엔 결국 당의 주도권을 잡거나, 당을 깨기 위한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자주파 인사들은 지우지 않고 있다. 자주파 안에선, 분당 주장을 ‘협박’으로 받아들이며 “나갈 테면 분란 일으키지 말고 나가라”는 감정 섞인 반응도 나오고 있다.
분당을 주장하는 평등파 인사들의 고민은, 분열에 관해 당원과 지지자들을 설득할 만한 대외적인 명분이 없다는 점이다. 특히 내년 총선에서 지역구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이들로선 당장 당의 기반이 사라지게 되면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자주파랑 싸우다 져서 새로운 당을 만들었다고 하면 고개를 끄덕일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당에 남아 강력한 혁신을 주장하든, 당을 떠나 새로운 길을 찾든 ‘망설임의 시간’은 임시 당대회나 중앙위가 열릴 1월 중순까지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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