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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대통령실

시작부터 ‘굴욕’ 당한 김무성, 다 이유가 있다

등록 2014-07-17 15:41수정 2014-07-17 16:51

박근혜 대통령이 15일 청와대에서 새누리당 신임 지도부와 오찬을 하기에 앞서 김무성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박근혜 대통령이 15일 청와대에서 새누리당 신임 지도부와 오찬을 하기에 앞서 김무성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임석규의 ‘정치 빡’ ⑦
‘힘센 여당 대표-힘 빠진 대통령 구도’ 무색했던 1라운드
‘김기춘 찍어내기’ 앞장섰지만, 결국 김기춘의 벽 실감해
‘힘센 여당 대표-힘 빠지는 대통령’, 여권 구도가 초장부터 이렇게 짜인 적은 없다. 아직 대통령 임기 1년5개월도 지나지 않았다. ‘박근혜-김무성 당청관계 라인업’은 여러모로 눈길을 끄는 ‘관심관계’다. 두 사람, 인연이 참 질기다. 앙금은 쌓였는데 부딪힐 일은 너무나 많다. 2016년 상반기에 진행될 20대 총선 공천은 뿌리깊은 두 사람 애증 관계의 정점이 될 것이다. 그때까지 김무성 대표 체제가 무탈하게 유지된다면 말이다.

비분강개, 의롭지 못한 것을 보고 의기가 북받쳐 원통하고 슬프다는 뜻이다. 김무성은 대표가 되자마자 “소수 중간권력자들의 권력독점에 비분강개를 느낀다”고 했다. 차디찬 냉기가 감돈다. 김무성은 “소수 청와대 관계자가 당내 일부하고만 소통해 박 대통령에게 잘못된 여론이 전달됐다”고도 했다. 김무성이 지목한 ‘소수 중간권력자’는 김기춘 비서실장과 ‘문고리 권력’, ‘환관 권력’으로 불리는 ‘보좌진 3인방’을 이르는 것으로 보인다.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과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 이재만 총무비서관 말이다.

대표가 된 김무성이 넘어야 할 1차 관문은 전방위적 압박에 굴하지 않고 굳건히 청와대에 버티고 있는 김기춘의 벽이다. ‘김무성의 비분강개’와 ‘김기춘의 경계심리’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당청관계의 불꽃 튈 것이란 얘기다. 1라운드는 김기춘의 판정승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천하를 제압한 듯 기세등등했던 김무성도 박 대통령 앞에만 서면 한없이 작아지고 만다는 사실을 대표 등극 이틀 만에 여실히 노출했다. 한 장의 사진이 때론 모든 걸 말해주기도 한다. 새누리당 지도부의 15일 청와대 오찬 사진 말이다. 김무성은 대통령의 맞은편이 아니라 오른편에 앉아 있다. 통상적 의전이라면 여당 대표가 맞은편에 앉는 게 관례다. 김무성이 아직 박 대통령과 마주앉을 만한 상대가 아니라고 청와대는 보는 걸까?

16일 정성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 사퇴 과정에서 김무성은 ‘청와대에 할 말 하는 여당 대표’와는 거리가 먼 모습을 보였다. 아침 라디오 인터뷰에서 “인사권자의 뜻을 존중하자”며 박 대통령의 정 후보자 임명 강행 방침에 힘을 보탠 것이다. 직언은커녕 여론을 거스르는 행보였다. 이후 2시간 만에 정 후보자가 사퇴했지만 김무성은 그때까지 청와대로부터 아무런 언질도 받지 못했다고 본인 스스로 기자들에게 고백했다. 김무성은 17일엔 사전에 정보를 알았었노라고 뒤늦게 말을 바꿨지만 청와대가 김무성에게 정보를 주지 않은 게 분명해 보인다. 김무성은 청와대에 해야 할 말은 하지 못했고 들어야 할 말을 듣지 못했다. 집권당 대표 당선 이틀 만에 소신 부족과 정보 부족을 동시에 드러낸 것이다. 정치권에서 여당 대표의 힘을 측정하는 저울은 바로 인사정보다. 집권당 대표는 둘로 나뉜다. 인사정보가 있는 대표와 없는 대표다. 후자는 정치권에서 ‘허당 대표’로 평가받는다.

김무성은 김기춘을 표적 삼아 고강도로 공격해왔다. “김기춘 실장이 당의 모든 업무에 관여하고, 지시하고, 공천에도 관여한다고 하는데 그렇게 해서 되겠는가. 시정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창극 인사파동 때도 ‘김기춘 책임론’을 주장하며 찍어내기에 앞장섰다. 이런 김무성이 김기춘의 눈에 곱게 보일 리 없었을 거다. 눈을 부릅뜨고 반격의 펀치를 날릴 기회를 노리고 있었을 것이다. 김기춘, 1라운드 공이 울리자마자 김무성이 크게 휘청거릴 만큼 제대로 한 방 먹였다.

김무성과 박근혜 대통령 얘기로 돌아가 보자. 사이가 틀어지지 않았을 땐 김무성이 직언을 하면 박 대통령은 이를 수용했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시절의 얘기다. 친박으로 분류되던 한 초선 의원이 박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씨, 강남의 한 건설업자 이아무개씨와 골프도 치며 자주 어울렸다. 초선 의원은 지방선거 때 건설업자 이아무개씨를 강남구청장 후보로 공천해달라고 박근혜 대표에게 부탁했다. 이 사실을 안 김무성은 박근혜 대표에게 지만씨와 이씨, 초선 의원의 ‘그렇고 그런 관계’를 보고했다. 박 대표는 즉각 박지만씨에게 경고장을 날렸다. 이아무개씨가 공천에서 탈락했음은 물론이다. 이후 이 초선 의원은 친박의 품을 벗어나 친이계로 전향한 뒤 18대 재선에 성공했다.

김무성의 이런 면모를 ‘문고리 권력 3인방’은 몹시 껄끄러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기세가 등등했던 이들도 주군에게 거침없이 할 말 하는 김무성은 어려웠던 것이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김무성이 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였다. 3인방 가운데 한 명이 난데없이 ‘출석체크’를 하고 나섰다. 아무리 실세의 측근이라고 해도 주제넘은 행위였다. 김무성은 이 장면을 그냥 넘어가지 않고 호통을 치며 나무랐다. 이런 김무성이 대통령의 눈과 귀를 독점한 이들에게 곱게 보일 리 없었을 거다. ‘삼인성호’, 세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외치면 믿지 않을 도리가 없다는 얘기다. 3인방이 김무성이 아주 훌륭한 사람이라고 박 대통령에게 진언했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김무성도 이를 잘 알고 있었으니, 대표 ‘취임 일성‘으로 ‘소수 중간권력자들의 권력독점’에 그토록 비분강개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14일 오후 서울 잠실체육관에서 열린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인사말을 마친 뒤 당대표로 출마한 김무성 의원을 비롯한 후보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박근혜 대통령이 14일 오후 서울 잠실체육관에서 열린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인사말을 마친 뒤 당대표로 출마한 김무성 의원을 비롯한 후보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김무성은 7·14 전당대회에서 박 대통령의 도움은커녕, 심한 견제 속에 압도적 1위로 당선됐다. 박 대통령이 전대 현장에 나타난 것도 김무성 견제구라는 해석이 일반적이다. 김무성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을 것이다. 이것은 여권의 행로에서 매우 중요한 포인트다. 더구나 김무성은 박 대통령에게 별로 받을 게 없다. 장관이나 총리 자리는 물건너간 지 오래다. 지난 대선 때 이미 ‘임명직 포기 선언’을 했기 때문이다. 당내 조직에서도 대통령에게 도움받을 필요가 없다는 걸 전당대회에서 여실히 보여줬다. 오히려 1년 반도 안 돼 힘이 빠져버린 현직 대통령은 차기를 노리는 대선주자에게 더할 수 없이 좋은 표적일 수도 있다.

물론, 정치란 게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대통령은 사정의 칼자루를 쥐고 있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정치인이 어디 있겠는가. 김무성은 김영삼 대통령 시절, 청와대 민정비서관과 사정비서관을 해봤다. 검찰 인사권을 쥐고 있는 청와대가 검찰을 어떻게 길들이고 어떻게 거래하고 무슨 방식으로 정치인을 다루는지 김무성은 누구보다 잘 안다. 더구나 김무성은 기업인 혈통이다. 가족 가운데 기업을 하는 이들이 많다. 청와대는 국세청도 얼마든지 동원할 수 있다. 차기 대선을 노리는 김무성은 여권 내부에서 김문수, 정몽준 등 만만치 않은 이들과도 경쟁해야 한다. 어느 지점에선 박 대통령의 도움이 필요한 대목도 있다. 김무성은 청와대를 향해 결코 넘지 못할 선은 넘지 않을 것이다, 아니 넘지 못한다고 표현하는 게 더 정확하다. 청와대에 할 말은 하겠다던 김무성이 정성근 문화체육관광부 후보자를 감싸고 돌며 ‘청와대 수비대장’ 노릇을 자처했지만 청와대로부터는 아무런 사전 정보도 얻지 못한 채 철저히 무시당하며 체면을 구긴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김기춘의 힘이 만만치 않다는 사실도 김무성을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김기춘의 힘은 ‘칼’에서 나온다. 바로 검찰에 대한 강력한 영향력이다. 김기춘은 청와대 ‘사정권력’의 핵심인 민정수석실을 직접 통제하고 있다. 김기춘과 김진태 검찰총장과 같은 경남 출신이다. 두 사람은 매우 각별하고 긴밀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물론, 아무리 힘센 검찰권력이라도 집권당 대표를 함부로 손대기는 어렵다. 하지만 구석에 몰리면 체면이나 여론, 관행 따위는 언제라도 쉽게 내팽개쳐온 게 검찰의 빛나는 전통이요, 관행 아닌가. 김기춘의 ‘칼’이 최소한 김무성의 도발을 방지하는 강력한 억제력으로 작용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임석규 논설위원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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