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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토호 ‘완장질’에 지친 호남 민심, 신당 키워줄까?

등록 2015-01-23 10:25수정 2015-01-23 13:57

호남은 개혁·진보세력과 결합할 때 폭풍 같은 정치 에너지를 발산하곤 했다. 반면 개혁·진보세력이 떨어져 나갈 때 호남 정치세력은 맥을 추지 못했다. 2002년 3월16일 열린 민주당 광주 경선에서 누구도 예상치 못한 1위를 차지한 노무현 당시 후보가 지지자들과 함께 기뻐하고 승리의 ‘브이’자를 그려 보이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호남은 개혁·진보세력과 결합할 때 폭풍 같은 정치 에너지를 발산하곤 했다. 반면 개혁·진보세력이 떨어져 나갈 때 호남 정치세력은 맥을 추지 못했다. 2002년 3월16일 열린 민주당 광주 경선에서 누구도 예상치 못한 1위를 차지한 노무현 당시 후보가 지지자들과 함께 기뻐하고 승리의 ‘브이’자를 그려 보이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개혁·진보세력과 함께 역동하는 호남 정치
현 기득권 세력, 중앙정치서 ‘습관적 패배’
새정치연합 ‘호남서 설마…’ 하다간 큰코다칠 것
[임석규의 정치빡] (18)

호남은 개혁·진보세력과 결합할 때 폭풍 같은 정치 에너지를 발산하곤 했다. 김대중 대통령도 위기에 몰릴 때면 재야의 개혁·진보세력을 수혈해 정치 에너지를 충전한 뒤 지지세력을 재규합했다. 김근태, 임채정, 이해찬, 한명숙 등이 이런 과정을 통해 합류한 ‘외부 피’의 대표적 인물들이다. 개혁·진보세력이 떨어져 나갔을 때 호남의 정치세력은 맥을 추지 못했다. 호남의 민심이 그들을 외면한 탓이다. 17대 총선 때 민주당은 광주와 전북에서 단 한 석도 얻지 못했고 전남에서 5석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열린우리당은 광주에서 7석, 전북에서 11석을 싹쓸이했고, 전남에서도 7석을 차지했다. 개혁·진보세력이 이탈한 민주당은 호남 소수세력으로 고립됐다. 개혁·진보세력과 합친 열린우리당은 호남의 압도적 지지를 바탕으로 과반 의석을 지닌 전국정당으로 도약했다.

최근 신당을 추진하는 여러 갈래의 흐름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는데, 이들이 집중 공략하는 지점이 호남의 민심이다. 새정치연합이 핵심 지지기반인 호남에서 민심을 잃어가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이 합류한 ‘국민모임’도 새정치연합에 ‘속정’을 주지 않은 채 부유하고 있는 호남민심을 일차적 공략 대상으로 삼고 있는 듯하다. ‘국민모임 서울 대토론회’에서 발제를 했던 이도흠 한양대 교수는 “호남에서 새정치연합은 토호 및 토건 카르텔과 유착하여 여당보다도 더 기득권적인 속성과 행태를 보이고 있다. 알량한 ‘배지 권력’에 만족하며 타성에 젖어 지역주의와 패권을 강화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고 규정했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도 새정치연합의 위기를 초래한 원인으로 리더십과 정체성, 노선을 꼽은 뒤, “그 한복판에는 ‘배지와 호남’이라는 기득권 구조가 강한 구심력으로 작용해 웬만한 원심력으로는 이 구조가 파열되기 어렵다. 그래서 솔루션을 찾기란 더욱 어렵다”고 짚었다.

김세균 ‘국민모임’ 공동 대표가 지난 12일 오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국민모임 주최로 열린 ‘새로운 정치세력, 왜 필요한가?’ 토론회에 앞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김세균 ‘국민모임’ 공동 대표가 지난 12일 오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국민모임 주최로 열린 ‘새로운 정치세력, 왜 필요한가?’ 토론회에 앞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국민모임엔 박종철기념사업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김세균 서울대 명예교수, 명진 스님, 한홍구 교수 등 진보적 명망가들이 참여하고 있다. 새정치연합보다 진보적 색채를 분명히 하겠다는 의지를 뚜렷이 하고 있다. 이해영 교수는 “사회 분야에서는 몰라도 경제·통상이나 외교·안보로 가면 새누리당과 큰 차별성도 없으며, 또 그런 정책 마인드나 실력도 없다”고 독하게 새정치연합을 비판했다. 국민모임의 정식 명칭은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새로운 정치세력의 건설을 촉구하는 모임’인데, 새정치연합이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깔고 있다.

국민모임이 합류하길 학수고대하고 있는 천정배도 오래전부터 ‘호남정치의 개혁적 복원’을 외쳐왔다. 얼마 전에 만난 천정배는 호남민심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는 걸 실감한다고 격하게 토로했다. “당이 쇄신 없이 이대로 가면 호남에서 공천을 안 받는 것이 공천장을 받는 것보다 유리할 것이다. 공천장이 득표요인이 아니라 감표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그 정도로 민심이 험악하다. 순천에서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이 당선된 게 우연한 일이 아니다. 호남에서 이 당에 대한 민심이반이 엄청나다. 도저히 못 참아주겠다는 사람들이 많다. 야당이 무기력하면서 기득권만 지키고 있다고 본다. ‘습관적 쇄신 약속과 상습적 약속 위반’이 쌓이면서 민심이 돌아섰다. 이런 판으론 안 된다는 실망감이 깊고 넓게 퍼져 있다. 90% 몰표를 줘도 호남만 고립된다는 무력감과 소외감이 만연하다.”

천정배는 호남지역 국회의원들의 행태에 대한 불만도 쏟아냈다. 지난해 6월 지방선거 당시 호남지역 공천을 사례로 들었다. “광주와 전남, 전북에선 시·도당위원장이 직접 공천심사위원장을 했다. 말이 안 된다. 당 대표도 국회의원 공심위원장을 맡지는 않는다. 국회의원들이 지방의원 공천을 요리해버리니 공천이 국회의원 입김에 좌우된다. 공정할 수가 없다. 지역위원장들의 전횡이 극에 달했다. 결과가 말해준다. 전남지역 기초단체장 22명 가운데 8명이 무소속이다. 전북에선 14명 중에 7명이 무소속이다. 반타작밖에 하지 못했다. 호남지역 민심의 실망이 임계치에 도달했다. 몇십 년 동안 마땅하지 않지만 꾹 참았던 민심이 폭발 일보 직전에 있다. 순천·곡성에서 새누리당 의원을 찍은 건 차라리 정권의 힘있는 사람이라도 밀어주자는 민심이다. 그러다 보니 한편에서 ‘호남 자민련’이라도 해보자는 정서까지 있다. 지역주의가 앞서는 정서인데 매우 걱정스럽다. 호남의 개혁정치를 복원해야 한다. ‘호남에서 설마…’ 하다간 큰코다친다. ” 

정동영과 천정배(오른쪽)가 ‘국민모임’에 합류해 호남지역을 지역 민심이 크게 들썩일 가능성도 없지 않다.
정동영과 천정배(오른쪽)가 ‘국민모임’에 합류해 호남지역을 지역 민심이 크게 들썩일 가능성도 없지 않다.
중앙정치의 시각으로 지역정치를 바라보면 틀리기 십상이다. 선거 예측이 빗나가는 것도 지역 밑바닥을 흐르는 특유의 민감한 정서를 중앙에서는 포착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호남, 그중에서도 정치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높은 중·장년층에선 선거마다 연전연패하고 있는 야당을 답답하게 생각하는 정서가 상상을 초월한다. 호남의 저류에 흐르는 ‘비노적 정서’도 따지고 보면 ‘습관적 패배’에 대한 분노가 연원이라고 할 수 있다. 번번이 대표선수로 뽑아줬는데 지고만 돌아오는 축구팀을 바라보는 열혈팬들의 정서와도 비슷하다. 광주는 일정한 정치적 흐름이 형성되면 놀라울 정도로 집중적인 투표 행태를 보여왔다. 2002년 광주 경선에서 시작된 ‘노무현 바람’이 대표적 사례다. 연말에 조사된 휴먼리서치 여론조사에서 호남지역 신당 지지율이 29.2%에 이르렀다. 새정치연합 33.8%와 어금버금한 수치다. 표본수(187)가 적어 한계가 있지만 터무니없다고 무시하긴 어렵다.  

광주에선 지난해 재보선 공천에서 탈락한 천정배를 ‘짠하게’ 여기며 동정하는 분위기가 제법 있다. 천정배가 새정치연합을 떠나 정동영과 같을 길을 걷는다면 호남에선 회오리바람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전북에서 정동영은 ‘썩어도 준치’다. 예전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만만치 않은 잠재력을 지녔다. 전북의 정동영과 광주의 천정배가 누비고 다니면 호남이 크게 들썩이지 말란 법도 없다. 김세균 국민모임 대표는 천정배의 합류 가능성을 ‘50 대 50’으로 내다봤다. 4월29일 3군데서 치러지는 보궐선거는 이들에게 절호의 기회다. 신당세력은 3곳 가운데 1곳에서라도 후보를 당선시키면 잠재력을 입증받게 된다. 가능성이 가장 큰 곳은 광주 서구을이다. 광주에선 ‘야당 분열에 따른 여당 어부지리’ 구도가 성립되지 않는다. 이곳 유권자들이 새정치연합에 ‘영금’(따끔하게 당하는 곤욕)을 보여주자고 마음먹는다면 별 부담 없이 신당 후보를 밀어줄 수가 있다는 얘기다. 신당 쪽도 광주에 전력투구할 것으로 보인다.  

이해영 교수는 영국 자유당과 노동당의 세력교체를 예로 들어 신당의 잠재적 가능성을 설명한다. “19세기 대영제국의 영광을 구가한 것은 글래드스톤의 당, 영국 자유당(The Liberal Party)이었다. 하지만 20세기 들어와 내분과 정체성 혼란을 겪으면서 19세기 전반에 걸쳐 자유당에 높은 친화력을 보여온 영국 노동자 계급이 지지를 철회, 노동당(The Labour Party)을 지지하면서 제3당으로 전락한 것은 정치사에서 빠지지 않는 얘깃거리다. 3당으로 전락한 영국 자유당은 이후 1980년대에 와서 당명을 바꾸면서 부활을 시도했지만 여전히 3당으로 남아 있다.”

물론, 아직 신당은 윤곽조차 흐릿하다. 새정치연합이 전당대회를 계기로 일대 혁신을 이뤄낼 가능성도 남아 있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새정치연합이 ‘호남정치의 기득권 구조’를 청산하지 않으면 흔들리고 있는 호남의 민심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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