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석규의 정치빡 17]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해 외교부 국정감사에서 “이거 누가 하는 거냐. 청와대 얼라들이 하는 거냐”며 정부의 서투른 외교적 대응을 질타한 적이 있다. ‘청와대 비서관 3인방’이 외교 문제까지 좌지우지한다는 얘기로 풀이됐다. 역시 ‘청와대 얼라들’은 어린애가 아니었다. ‘얼라들’은 부여받은 권한을 훌쩍 뛰어넘어 국정을 주물럭거리는 ‘막후 실세’요, 현안을 조율하는 컨트롤타워였음이 입증됐다. ‘김무성 수첩 파동’은 청와대가 ‘환관 권력 전성시대’의 한복판에 있음을 보여준다. 대한민국은 지금 ‘청와대 비서진 3인방과 그들의 비호를 받는 십상시’들이 움직이는 ‘청와대 얼라들의 공화국’이 되고 말았다.
때론 한 장의 사진이 모든 걸 설명해주기도 한다. 카메라에 포착된 김무성 대표의 수첩을 보면 벌어진 입을 다물기 어렵다. “문건 파동 배후는 K, Y. 내가 꼭 밝힌다. 두고 봐라. 곧 발표가 있을 것.” 이건 청와대 행정관이 할 수 있는 발언이 아니다. 비서실장이나 민정수석이라면 몰라도 홍보수석실에서 일하는 일개 행정관이 말했다고 믿어지지 않는 내용이다. “곧 발표가 있을 것”이란 문구에서 발표의 주체는 검찰로 미뤄 짐작된다. 마치 검찰의 일거수일투족을 손아귀에 틀어쥐고 있다는 뉘앙스마저 묻어난다. 검찰과 관련된 청와대 업무의 진정한 실세는 민정수석이 아니라 십상시의 한 명이었던 거다. 대통령에게 대면할 기회조차 없었던 김영한 민정수석이 ‘항명’했던 이유가 어렴풋이 짐작되기도 한다.
‘수첩 파동’의 본질은
여당 대표도 저격하는
‘문고리 3인방’과 ‘십상시’의 위세
그리고,
흥신소 수준의 협박·공작정치!
‘비정상의 정상화’ 가장 시급한 곳은 바로…
‘수첩 파동’의 본질은 이른바 ‘문고리 권력’으로 지칭되고 있는 ‘청와대 비서진 3인방’의 과도한 국정 개입 실상을 만천하에 공표했다는 점이다. 문건 파동의 배후를 ‘김무성, 유승민’이라고 지목한 사람은 사퇴한 음종환 행정관이다. 그는 이른바 ‘청와대 십상시’ 멤버들 가운데서도 가장 영향력이 큰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청와대에 들어와 권한과 위세를 발휘할 수 있었던 건 3인방, 그중에서도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과의 친분과 ‘비호’ 덕분이라는 걸 여권에서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십상시의 힘이 이 정도면 3인방의 영향력은 과연 얼마나 막강하겠느냐는 게 세간의 수군거림이다. 대통령 가까이에 있는 청와대 비서진이 늘 가슴에 새기고 경계해야 할 문구는 ‘호가호위(狐假虎威)’다.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빌려 호기를 부리면 그 폐해는 더할 수 없이 크다. ‘대통령 측근의 측근’이 이 정도 위세를 떨친다면 대통령의 측근을 움직인다는 정윤회의 권세는 또 얼마나 막강하겠느냐는 말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음종환은 정호성 비서관과 고려대 88학번 동기다. 둘은 대학원 시절부터 막역한 사이였다고 한다. 이 덕분인지 그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구성하고 청와대 실무진을 짤 때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음 행정관과 이준석 전 비대위원의 12월18일 술자리에 동석했던 이동빈 행정관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의 직계 측근으로 분류된다. 음종환은 과거부터 ‘정보통’으로 꼽혔다. 과거 이정현 의원과 권영세 주중대사의 보좌관으로 일할 때도 막강한 정보력을 발휘했다. 노무현 정부 때 신기남 의원 부친의 과거 행적을 밝혀내 당 의장직에서 낙마시킨 것도 그의 공로인 것으로 전해진다.
흥미로운 대목은 검찰이 청와대 문건 파문의 주역으로 판단해 기소한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도 음 행정관을 막후 공작의 핵심 인물로 지목했다는 점이다. 청와대가 박관천 경정과 조응천 전 비서관이 주도한 이른바 ‘양천 모임’이 허위 정보를 양산하고 ‘정윤회 보고서’ 작성을 주도했다는 그림을 그려 관련 감찰 조사 결과를 검찰에 넘겼다고 보도된 적이 있다. 조 전 비서관은 당시 청와대의 이런 움직임을 실질적으로 주도한 인물이 “음종환”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조 전 비서관은 청와대 내부 사정을 잘 알 만한 위치에 있던 인물이다. 어쨌거나 음종환이 홍보수석실 행정관이란 공직 직함을 넘어 현안에 대한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한 정황이 엿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검찰과 야당이 그야말로 비리가 있는지 오랜 기간 찾았지만 그런 게 하나도 없지 않았느냐. 비리가 없을 것이라고 믿었지만 대대적으로 뒤지는 바람에 정말 없구나 확인했다”고 말한 바 있다. ‘3인방’의 행적을 둘러싼 논란에 확실한 면죄부를 준 셈인데, 이번 ‘수첩파동’으로 이들을 둘러싼 시비는 더욱 증폭될 전망이다.
물론 음종환의 행태를 ‘비리’라고 보긴 어렵다. 하지만 음종환이 이준석 전 비대위원에게 했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명백한 협박이요, 공작정치나 다름없다. 이준석은 “내가 방송에서 했던 발언들을 비판하면서 음종환이 ‘출연을 못하게 할 수도 있다’고도 했다”며 “내가 전혀 만난 적이 없는 여성들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누구누구를 만나고 있지 않으냐’며 협박성 발언을 했다”고 언론을 통해 밝혔다. 청와대 홍보수석실 행정관이 여권 유력 정치인에게 ‘여성 문제’를 들먹이며 ‘방송 출연 금지’ 운운했다면 이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유승민은 “지난해 조응천과 한 차례 만난 적이 있는데 청와대가 이걸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다”며 의문을 제기했다. 어떤 형태로든 사찰이 이뤄졌을 개연성을 내비친 대목이다. 유승민은 ‘원조친박’이지만 박근혜 정부에 쓴소리를 피하지 않았고, 이준석 역시 각종 매체에 출연해 정권 비판 발언을 해왔다. 음종환이 문건 파동의 배후로 지목한 김무성 역시 청와대와 각을 세워왔다. ‘정권에 미운털이 박힌 인물들’에 대한 조직적 사찰이 이뤄지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명박 정권 시절의 ‘민간인 사찰’의 악몽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최민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폭로로 청와대 부속실이 ‘몰래 카메라’를 구입한 것으로 밝혀졌다.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작성한 이른바 ‘박지만 문건’엔 기업인들의 불륜 사실이 적나라하게 담겨 있다. 예산으로 몰래카메라를 구입한 청와대 부속실, 여자관계를 거론하며 정치인의 방송 출연 내용을 협박하고 다니는 행정관, 찌라시에나 나올 법한 얘기들을 퍼트리는 청와대라니…. 청와대는 흥신소가 아니다. 청와대가 정치사찰이나 공작정치의 진원지가 돼서도 안 된다. ‘수첩파동’으로 제기된 이런 의혹들에 대해 청와대는 명명백백하게 밝힐 책무가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부터 줄기차게 ‘비정상의 정상화’를 외치고 있다. 정상화가 가장 시급하고도 절실한 곳은 청와대 아닌가?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지난 12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자신의 수첩을 바라보고 있다. 뉴스웨이 제공
여당 대표도 저격하는
‘문고리 3인방’과 ‘십상시’의 위세
그리고,
흥신소 수준의 협박·공작정치!
‘비정상의 정상화’ 가장 시급한 곳은 바로…
‘수첩 파동’의 본질은 이른바 ‘문고리 권력’으로 지칭되고 있는 ‘청와대 비서진 3인방’의 과도한 국정 개입 실상을 만천하에 공표했다는 점이다. 문건 파동의 배후를 ‘김무성, 유승민’이라고 지목한 사람은 사퇴한 음종환 행정관이다. 그는 이른바 ‘청와대 십상시’ 멤버들 가운데서도 가장 영향력이 큰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청와대에 들어와 권한과 위세를 발휘할 수 있었던 건 3인방, 그중에서도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과의 친분과 ‘비호’ 덕분이라는 걸 여권에서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십상시의 힘이 이 정도면 3인방의 영향력은 과연 얼마나 막강하겠느냐는 게 세간의 수군거림이다. 대통령 가까이에 있는 청와대 비서진이 늘 가슴에 새기고 경계해야 할 문구는 ‘호가호위(狐假虎威)’다.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빌려 호기를 부리면 그 폐해는 더할 수 없이 크다. ‘대통령 측근의 측근’이 이 정도 위세를 떨친다면 대통령의 측근을 움직인다는 정윤회의 권세는 또 얼마나 막강하겠느냐는 말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음종환 전 청와대 행정관
‘청와대 문고리 3인방’으로 불리는 안봉근, 이재만, 정호성 비서관(왼쪽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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