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 단일화의 본질은 흥행이다. 흥행에 실패하는 단일화는 의미가 없다. 단일화를 이뤄도 흥행돌풍을 일으키지 못하면 선거에서 패배하고 만다. 흥행은 통념적 관측을 빗나가게 하는 반전의 묘미에서 나온다. 단일화 흥행을 담보하는 3대 요소가 있다. 대중의 허를 찌르는 전격성, 결과를 내다보기 어렵게 하는 예측불허성, 양보의 미덕에서 우러나오는 진정성이다. 3대 흥행요소를 갖춘 단일화는 대중의 감동을 자양분 삼아 선거 판도를 송두리째 뒤흔들며 약자와 강자의 순위를 순식간에 역전시킨다.
‘노회찬-기동민 단일화’엔 흥행 성공의 요소가 담뿍 담겨 있다. 기동민의 사퇴는 전격적이었다. 당 지도부는 물론 그와 형제처럼 가까운 정치인들도 미처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 기동민이 끝까지 버티고 노회찬은 스스로 설정한 시한에 몰려 마지못해 사퇴하는 그림, ‘아름답지 못한 단일화’가 일반적, 통념적 관측이었다. 광주에서 뛰다가 오랜 동지 허동준을 진통 끝에 주저앉히며 어렵게 동작을 출전권을 따낸 기동민이다. 그에게 선거를 치르지도 못한 채 물러나라고 하는 건 가혹한 측면이 있다. 그래서 그가 완주하리란 관측이 많았다. 여론조사도 상승 추세였다. 기동민은 구질구질하지 않고 과감하게 내던졌다. ‘후보자 기동민’은 실패했지만 ‘정치인 기동민’은 승리했다.
후보 단일화는 게임의 속성이 매우 강하다. 단일화 국면에서 다른 후보를 물리치고 후보의 지위를 쟁취하려면 고도의 전략적 판단이 요구된다. 노회찬은 과감한 승부수를 던졌고 예상은 적중했다. ‘24일 자정’을 시한으로 제시하며 사퇴 배수진을 쳤을 때 그는 이미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는 시한이 지나면 사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동민을 돕겠다고 했다. 이것이 결정적 포인트였다. 그에겐 두 가지 결과가 기다리고 있었다. 기동민이 버티면 ‘명분 있는 퇴각’을 통해 훗날을 기약할 수 있다. 손해 볼 게 없다. 또 하나는 기동민의 양보로 단일후보가 되는 거다. 더없이 좋거나, 별로 나쁠 게 없거나 둘 중 하나이니 그야말로 ‘신의 한 수’라 할 만하다.
노회찬의 선제적 배수진 전략에 기동민이 선택할 수 있는 경로는 두 갈래였다. 버티느냐, 과감하게 던지느냐. 기동민이 조금만 버티면 노회찬은 사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경우 ‘아름답지 않은 단일화’가 되고 만다. 기동민은 ‘작은 이익에 집착하는 뻔뻔한 정치인’이란 낙인이 찍히며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게 돼있었다. 본선 경쟁력에서 치명상을 입으니 후보는 되겠지만 당선은 어려워진다. 정치판을 오래 경험한 기동민은 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선택을 누구나 다 실행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아는 대로 실천하는 정치인이 많다면 정치가 이토록 욕을 먹지는 않을 것이다. 정치에서 계산은 머리로 하지만 결단은 가슴으로 한다. 기동민은 뜨거운 가슴을 지닌 정치인이었다.
한국정치에서 단일화는 이미 상수가 됐다. 야권의 단일화 논의가 없는 선거는 찾아보기 어렵다. 보수세력은 야권의 단일화를 ‘병’으로 매도하고 구태로 몰아간다. 과연 그런가. 선거 때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야권의 단일화 논의는 ‘야권의 다극화’라는 구조적 요인에서 기인한다. 물론, 깃발과 색깔이 어금버금한 정당들이 난립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제대로 된 정당정치가 이뤄지려면 이념과 정체성, 정책과 노선에 따라 정당을 크게 재편하는 게 맞다. 야권은 앞으로 이런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이는 게 마땅하다. 그렇지만 정치는 엄연한 현실이다. 야권 지지층의 절대다수는 단일화를 간절히 소망한다. 선거 승리에 대한 기원이 강할수록 야당은 단일화 유혹을 피하기 어렵다. 단일화를 하지 않으면 패배가 확실하고 단일화를 이루면 승리할 가능성이 커지는 정치구조에서 무조건 단일화를 하지 말라고 하는 건 공허한 얘기일 수도 있다. 정책과 노선에 기반한 단일화라면 무조건 비판만 할 일이 아니다. 김대중-김종필의 ‘디제이피 연대’와 노무현-정몽준 단일화는 여하튼 한국정치에 굵은 족적을 남겼다. 단일화 자체를 매도할 게 아니라 단일화를 하려거든 제대로 하라고 압박하는 게 현실적일 것이다.
단일화는 여러가지 ‘플러스 알파 효과’를 유발한다. 먼저, 두 사람 지지율의 단순 합계보다 더 높은 득표율을 기대할 수 있다. 이는 야권 지지층 결집효과에서 기인한다. 야권후보 분열 구도에선 야권 지지층이 투표장에 나가지 않으려 한다. 투표해봤자 패할 것이란 좌절감 때문이다. 단일화는 좌절감을 잠재우고 승리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한껏 고조시킨다. 단일화는 전체 선거구도 자체를 일거에 변화시키기도 한다. 동작을의 단일화가 수원지역 2곳의 ‘도미노 단일화’로 이어지면서 다른 지역 야권 지지층까지 결속시키고 있다. 재보선 판도가 여권의 압도적 우위 국면에서 여야 경쟁국면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서중석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원장이 25일 기자회견을 열어 “유병언(73·사망) 전 세모그룹 회장의 시신이 고도로 부패한 탓에 사망 원인을 판명할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YTN 화면 캡쳐
단일화 효과에 더해 막판에 터진 ‘유병언 변수’도 7·30 재보선에 적잖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아무도 설명하지 못하는 유병언의 의문에 싸인 죽음, 유병언 추적 과정에서 적나라하게 노출된 검찰과 경찰의 속고 속이는 암투, 아무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여권의 태도는 ‘유병언 미스테리’를 ‘제2의 세월호’로 만들고 있다. 유병언 을 추적하다가 코앞에서 놓치고, 뒤늦게 그의 주검을 확인했지만 사인은 오리무중에 빠지고, 검찰과 경찰의 총수는 책임지려 하지 않고, 청와대는 침묵을 지키는 모습이 세월호 침몰 당시 정부가 노출했던 무능하고 무책임한 모습과 너무도 닮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정부 책임이 아니라 경찰 책임이라고 우기고 세월호 사건을 ‘일반 교통사고’로 규정하며 책임을 떠넘기려는 새누리당의 노골적 태도도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7·30재보선을 코앞에 두고 발생한 막판 2대 변수, 단일화와 ‘유병언 미스테리’가 서로 맞물리며 상승 작용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두 가지 변수 모두 야권엔 호재요 여권엔 악재다. 공천 국면에서 적잖이 상처를 입었던 야권은 선거전 막판을 단일화 국면으로 전환하며 주도권을 회복하게 됐다. 여기에 ‘유병언 미스테리’로 여권의 무능과 무책임이 또다시 부각되면서 중도층이 여권에 등을 돌릴 수 있는 상황이다. 기세등등하던 여권이 주춤하고 지리멸렬하던 야권이 다시 기선을 잡는 흐름에서 구도가 재편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야권의 단일화는 거꾸로 여권의 위기의식을 고조시키는 측면이 있다. 여권 지지층 또한 결집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재보선은 투표율이 낮아서 지지층을 얼마나 투표장으로 불러내느냐가 관건이다. 결국 이번 재보선은 여야의 치열한 혼전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이슈도 쟁점도 없이 기이한 양상으로 흘러오던 7·30 재보선이 단일화와 유병언 문제를 중심으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임석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