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석규의 정치빡 ⑩]
여당 대표와 원내대표, 청와대 비서실장은 국정을 움직이는 3각축을 이룬다. 이들 ‘핵심축 3인방’이 긴밀히 소통하고 유기적 협력체제를 갖춰야 국정이 원활히 돌아간다. 여당은 각종 국정 현안에 대한 정무적 기조를 정한다. 여론을 잘 반영하면 지지율이 올라가고 여론을 거스르면 지지율이 떨어진다. 여당 대표는 국정 현안의 기조를 좌우하는 중요한 자리다. 여당 원내대표는 당의 정무적 기조를 국회에서 관철하는 창구다. 여당의 기조는 청와대에도 전달된다. 이런 시스템을 통해 민심이 국정에 반영된다. 여권 3인방의 인식과 역학관계에 따라 국정 현안의 기류가 달라지기도 한다.
여권 3인방의 역학구도가 묘하게 짜이고 있다.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친박’이다. 당연히 청와대에 코드를 맞춘다.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과도 코드를 맞출 수밖에 없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조금 다르다. 친박의 울타리를 탈출한 ‘탈박’으로 분류된다. ‘인사 참사 국면’에선 ‘김기춘 실장 책임론’을 제기했다. 김기춘 실장과 앙금이 있다. 3인방의 역학관계는 ‘이완구+김기춘 vs 김무성’의 2 대1 구도다.
여권 3인방의 미묘한 역학관계는 8월24일 새누리당 연찬회에서 단면을 여실히 드러냈다. 이완구 원내대표는 노골적으로 김기춘 실장을 싸고돌았다. “지금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 얘기를 하시는데, 청와대 보고 라인은 김장수 국가안보실장 소관이다. 우리는 이 엄연한 사실의 시시비비를 가려줘야 할 의무가 있다. 야당이 아무리 요구한다고 해도 원칙을 훼손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국가안보실장 소관인데 비서실장 증인출석을 요구한다면 진짜 곤란하다. 개인을 비호하는 게 아니라 국가 안보실장 책임이 아닌가.” 이건 누가 봐도 ‘김기춘 비호’ 발언이다.
김기춘 실장에 대한 김무성 대표의 발언은 결이 아주 다르다. “정기국회 연찬회는 당정청 연찬회다. 어제 장관들도 다 오셨고, 청와대 해당 수석들이 다 왔기 때문에 사실상 당정청 연찬회다. 비서실장이 왜 안 왔는가에 대해서는 한번 검토를 해보도록 하겠다.” 완곡하지만 말에 뼈가 들어 있다. 김기춘 실장이 여당 연찬회에 당연히 왔어야 하는데 안 왔으며, 왜 오지 않았는지를 따져보자는 게 김무성 대표 발언의 요지다. 비판이다.
3인방의 역학관계가 ‘세월호 정국’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여의도 정가에선 세월호 협상의 이면에서 김기춘 실장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는 말들이 나돌았다. 조윤선 정무수석 등이 일정한 역할을 하면서 김기춘 실장의 뜻이 여야 원내대표 협상 테이블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는 얘기였다. 물론 김기춘 실장의 행보가 명료하게 드러나는 건 아니다. 워낙 전방위적 영향력을 행사하다 보니 이런저런 경로를 거쳐 말이 새어나오고 그림자가 밟힌다는 것이다.
이완구 원내대표는 꿈이 큰 사람이다. 자민련 원내대표를 맡았던 재선 의원시절부터 장차 대선에 도전하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드러내곤 했다. 자신의 사주팔자를 봤는데 ‘관운’이 무지하게 좋다는 얘기를 살짝 꺼낸 적도 있다. 큰 꿈을 꾸는 사람은 자신을 철저하게 단련하고 관리하는 법이다. ‘세종시 수정안 반대’라는 명분을 내세워 충남도지사직을 내던진 것도 이런 큰 꿈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도지사직 사퇴는 박근혜 대통령과의 신뢰관계를 더욱 굳건히 다지는 계기로도 작용했다. 실제로 이완구 원내대표는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서 몇 차례 ‘충청권 총리’ 후보로 거론됐다.
집권여당의 원내대표가 된 이완구는 조금만 더 가면 ‘큰 꿈’에 도전할 기회가 눈앞에 펼쳐질 것이라고 기대할 법도 하다. 그는 기본적으로 ‘친박’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로선 김기춘 실장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게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완구 원내대표에게 김무성 대표는 조금 다르다. 머리를 숙이고 들어갈 대상은 결코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더구나 당 대표와 원내대표 ‘투톱’은 전통적으로 갈등관계다. 대표는 대의원 투표로, 원내대표는 국회의원 투표로 선출된다. 의전 서열은 당 대표가 높지만 원내대표 영역을 침해하기 어렵다. 둘 다 선출된 권력이기 때문에 대표라도 원내대표를 쉽게 견제하긴 어렵다. 이처럼 김무성과 이완구는 서로 떨떠름한 사이일 수밖에 없다.
김무성과 이완구는 여러 측면에서 비교된다. 나이는 이완구가 한 살 위다. 두 사람은 1996년 15대 국회에 신한국당 공천을 받아 원내에 진출한 ‘국회 입성 동기’다. 경력을 봐도 어금버금하다. 김무성은 두 차례나 공천을 받지 못하는 곡절을 겪었지만 내리 5선을 쌓으며 여당 대표가 됐다. 이완구는 3선이지만 도지사를 거쳤다. 박 대통령과의 관계 측면에서도 미묘하다. 원래 김무성이 명실상부한 ‘친박 좌장’이었지만 이제는 이완구가 박 대통령과 훨씬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완구가 틈만 나면 김무성을 견제하려 한다는 얘기는 새누리당에서 공공연한 비밀이다. 김무성으로선 이런 이완구가 몹시 껄끄러울 것이다.
7월16일 여야 4자 회동엔 새누리당에서 김무성 대표, 이완구 원내대표가, 새정치연합에서 안철수 대표, 박영선 원내대표가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김무성 대표는 야당에 ‘특검 추천권’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김무성 대표도 부인하지 않는 얘기다. 특검 자체를 마뜩하게 여기지 않는 김기춘 실장으로선 김무성 대표가 달가웠을 리 만무하다. 이완구 원내대표 또한 자신의 영역인 여야 협상에 끼어든 김무성이 마뜩잖았을 것이다.
김기춘 실장과 이완구 원내대표는 세월호 특별법 협상에서 김무성 대표를 배제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이해가 일치했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이후 김무성 대표는 ‘세월호 정국’에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진보, 보수 언론에서 ‘김무성 역할론’이 무수히 나왔지만 김무성 대표는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아니, 꿈쩍도 할 수 없는 처지라는 게 좀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김무성 대표가 역할을 하려면 청와대와 김기춘 실장을 압박할 카드가 있어야지만 그럴 힘이 지금 그에게 있기나 한지 모르겠다.
3인방의 역학관계가 2 대 1로 짜였으니 당분간 이완구 원내대표의 힘은 커지고 김무성 대표의 힘은 약해질 가능성이 크다. 그래도 김무성 대표는 협상론자였다. 지난해 철도 파업 국면에서도 조정력을 발휘하며 일정한 역할을 했다. 여권 내에서 김무성 대표의 옹색한 입지는 ‘세월호 정국의 장기 표류’와 무관하지 않다. 김무성 대표가 김기춘 실장을 찍어낼 수 있는 힘이 없는 한 ‘청와대 우위의 당청 관계’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브레이크 없는 청와대의 일방 독주도 이어질 것 같다.
임석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