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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직군분리제 통해 ‘정규직 전환’…생산성 > 인건비

등록 2009-09-22 19:42

신한은행의 전국 지점 창구에서 1년 이상 비정규직으로 일하다가 정규직으로 재입사한 직원들이 지난 2008년 12월 북한산 사모바위에 올라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신한은행의 전국 지점 창구에서 1년 이상 비정규직으로 일하다가 정규직으로 재입사한 직원들이 지난 2008년 12월 북한산 사모바위에 올라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실업급여 100만명 시대 고용정책 판을 바꾸자] ⑤ 새로운 ‘관행’ 만든 은행들
국민은행 ‘무기계약직 전환제’ ‘동일 복리후생’
우리·부산은행도 고용불안 해소…“사기 진작”
“숙련 직원 계속 쓰는게 이익” 유통
비정규직이란 꼬리표를 떼고 정규직이 되기까지 자그마치 8년6개월이 걸렸다. 국민은행 연서지점에서 프라이빗 뱅킹(PB) 상담업무를 맡고 있는 이진숙(37) 계장은 지난해 8월 정규직 전환시험을 통과했다. 2000년 콜센터로 입사해 전화로 예금상담을 하다, 2003년 ‘슈퍼바이저’(중간 관리자)가 되고 2008년 노사합의에 따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 다시 정규직이 되기까지 그는 먼 길을 돌아왔다.

그는 “꼭 정규직이 되고 싶어서였다기보단 전환시험이란 제도가 있으니 도전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업무가 많아진데다 월급은 슈퍼바이저 때와 엇비슷한 수준이지만, 그는 “지금에 만족한다”고 했다. 국민은행은 2005년부터 시험을 거쳐 매년 평균 150여명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시키고 있다.

정규직이 아니라도 국민은행 계약직원 7700여명에게 고용불안은 없다. 노·사는 2007년 합의를 통해 3년 이상 일한 계약직 5000명을 지난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했다. 올해부터는 2년 이상 근무자도 자동으로 무기계약직이 되고 있다. 해마다 계약서를 갱신하던 ‘불안’으로부터 2년여새 6700명이 벗어났다. 복리후생도 정규직과 동일하다. 비정규직 때 1년이던 육아휴직 기간은 정규직과 똑같이 2년으로 늘어났고, 학자금과 의료비 보조혜택 등도 정규직과 공평하다. 정규직 노조는 무기계약직을 노조원으로 받아들였다. 아직 계약직으로 남아있는 1000여명도 기간 2년을 채우면 무기계약직으로 신분이 바뀐다.

회사도 이런 선택을 성공적으로 평가한다. 김필수 국민은행 인사팀장은 “인건비나 정규직과 동일한 복리후생 제공으로 영업비용이 증가하긴 했지만, 고용안정으로 계약직 직원들의 사기가 진작되고 회사 전체적으로도 상생의 조직문화가 만들어졌다”고 밝혔다. 고용-해고를 반복하는 단순한 ‘수량적’ 고용 유연성 대신, 무기계약직의 업무 숙련도를 높이는 ‘기능적’ 고용 유연성을 높이는 선택을 한 결과 “지속 가능한 회사 발전의 토대를 닦게 됐다”는 설명이다.

지난 7월 비정규직법 개정 논란이 거셀 때도, 은행들은 상대적으로 여유만만했다. 2007년 비정규직법 시행을 앞두고, 노·사가 머리를 맞대 미리 대책을 마련해둔 덕분이다. 우리은행은 정규직과 승진·임금체계가 구별되는 별도 직군을 두는 직군분리제를, 부산은행은 기존 정규직 최하위 직급보다 한 단계 낮은 직급에 비정규직을 편입하는 하위직군제를, 국민은행·신한은행 등은 무기계약직 전환제도를 도입했다.


시중은행 비정규직 전환 추이·은행 비정규직 연도별 전환 인원
시중은행 비정규직 전환 추이·은행 비정규직 연도별 전환 인원
하지만 처음부터 은행권이 비정규직 문제의 ‘무풍지대’였던 것은 아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금융업계에서 비정규직은 엄청난 속도로 늘어났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집계를 보면, 2000~2006년 정규직이 6만2372명에서 6만323명으로 줄어든 반면 비정규직은 1만8306명에서 2만8132명으로 1만명가량 급증했다. 금융노조 집계로, 26개 일반은행에서 1997년 말 11.7%(1만5043명)였던 비정규직 비율은 2007년 말 20.92%(3만1024명)까지 치솟았다. 국민은행만 해도 2006년 비정규직 규모가 전체인원의 39%나 됐다. 텔러, 콜센터 상담원 등에서 비정규직을 대거 채용했기 때문이다. 당시 은행들은 인건비 절감을 통한 수익성 극대화를 고용전략으로 삼았다. 은행 뿐 아니라 외환위기 이후 기업들 사이에선 비핵심 업무에 계약직이나 사내하청·파견 등 간접고용 비정규직을 활용하는 경향이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하지만 3~4년 전부터 은행 쪽에선 이런 인사관리 전략에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2년 이상 계약직을 고용하지 못하도록 한 비정규직법 제정이 실마리가 되긴 했지만, 법의 영향만은 아니었다. 고객들을 직접 대하는 ‘은행의 꽃’이라는 창구에서 일하던 비정규직 수천명을 내보내는 것은 은행으로서도 손해였다. 이승민 전 금융노조 정책실장은 “숙련된 계약직들을 계속 고용하는 것이 은행한테도 이익”이라고 말했다. 금융노조 등 산별노조가 적극적으로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요구하고 나선 것도 은행들에겐 부담이었다.

‘경영상의 판단’에 따라 비정규직 해결에 앞장서게 된 유통업계의 사정도 비슷하다. 신세계는 2년 동안 비정규직 6000여명을 분리 직군 형태로 정규직 전환했고, 패밀리레스토랑 ‘빕스’ 등을 운영하는 씨제이푸드빌도 지난 7월 써빙일 등을 해온 계약직 280명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시켰다. 기업들이 인건비 절감이라는 단기적인 가치보다는, 업무 숙련도와 고객 서비스 향상이란 장기적인 가치를 선택한 것이다.


물론 이런 기업들이라고 해서 고민이 없지는 않다. 국민은행 무기계약직의 임금 수준은 같은 연차 정규직의 60%가 채 안된다. 금융노조 케이비(KB)국민은행지부 류현숙 대외본부장은 “처우개선이 되긴 했지만 무기계약직을 아직 완전한 정규직이라고 볼 순 없다”며 “하위직군제 도입 등 정규직과 보수체계를 합치고 정규직으로 올라갈 수 있는 통로를 넓히는 것이 남은 과제”라고 말했다. 노조는 정규직 임금 5% 반납과 연차 사용 후 남는 인건비를 사내 복지연금으로 쌓아 내년까지 비정규직과 임금 수준을 정규직의 70%까지 끌어올릴 방침이다.

그래도 2년마다 비정규직을 갈아치우거나 외주화로 비정규직법의 허점을 악용하는 기업들에 견줘, 은행들이 ‘모범적’인 것만은 분명하다. 김성희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기업들이 유행처럼 비정규직이나 아웃소싱을 과도하게 늘려온 것이 관행처럼 자리잡혀 있다”며 “이제라도 조직의 효율성을 따져 비정규직을 줄이는 대신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중간 단계를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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