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교통부 등이 지난 28일 버스기사의 졸음운전을 방조해온 근로기준법 특례업종 규정을 바꾸겠다고 밝힌 가운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31일 관련 법(근로기준법 59조)를 개정하기 위한 심의를 시작한다. 사진은 서울 시내 도로를 주행하고 있는 버스기사.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여름휴가로 여행객이 북적이는 인천공항에서 노동자들은 퇴근하지 못하고 ‘2박3일’ 일한다. 최근 경부고속도로 광역버스 교통사고의 구조적 원인으로 꼽힌 근로기준법 59조의 ‘근로시간 특례업종’(26개)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이들 업종은 노사가 합의하면 24시간 노동도 가능하다. 국회는 31일 근로시간 특례조항 심의를 시작하지만, 현재 26개 업종 가운데 일부만 폐지할 가능성이 높은 상태다. 노동계는 특례제도 자체를 전면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뜨거운 활주로의 지열이 온몸을 덮친다. 머리 위로 내리쬐는 태양을 피할 곳을 찾기 어렵다. 그늘이라고는 항공기 날개 아래 정도지만, 그곳에 쪼그려 쉬었다가는 관리자의 지적을 받기 일쑤다. 착륙한 항공기를 계류장으로 유도하고, 비닐하우스처럼 후텁지근한 항공기 화물칸에서 쉴 새 없이 수하물(20㎏)을 나르다 보면 금세 속옷까지 흠뻑 젖어버린다. 8년째 김해공항에서 지상조업 작업을 담당하는 노동자 김기남(39)씨 이야기다.
김씨를 포함한 샤프에비에이션케이(샤프항공) 노동자 4명을 지난 26일 만났다. 얼굴은 물론 팔뚝까지 모두 검게 그을려 있었다. 샤프항공은 인천·김해·김포 등 공항 7곳에서 국내 저가항공사·외국항공사의 이착륙을 지원한다. 항공기 유도와 견인, 활주로 안 셔틀 운행, 항공기 오물 처리, 수하물 탑재 등 항공기가 착륙해서 승객을 내리고 다른 승객을 태워 이륙하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도맡는다.
이들은 이른바 ‘2박3일 근무’를 하는 경우가 많다. 밤늦게 퇴근하고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하기에 공항 안에 있는 컨테이너 휴게공간에서 쪽잠을 자고 다음 근무에 들어가는 일이 숱하다. 첫째~둘째 날은 아침 7시~밤 11시, 셋째 날은 새벽 5시~오후 2시에 일하고 다음 날은 쉰다. 운항 스케줄이 들쭉날쭉한 탓에 거의 24시간 체제로 근무한다.
인천공항에서 일하는 김진영 공공운수노조 샤프항공지부장은 “밤늦게 퇴근하고 다음 날 새벽에 출근하기 때문에 집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이 3~4시간뿐”이라며 “너무 피곤하니까 노동자들이 이런(2박3일 근무) 선택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샤프항공 노동자들의 월평균 노동시간은 292.8시간이었다. 제주공항이 317시간으로 가장 많았고 인천공항(295시간), 김해공항(265.5시간)이 뒤를 이었다. 연간 노동시간(3513시간)으로 따져보면 2014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1770시간)의 2배 가까운 수치다. 노동자 1명이 2명치 일을 하는 셈이다. 장시간 노동이 가능한 이유는 공항 지상조업이 업종 분류상 항공운송업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운송업은 근로기준법 59조가 규정한 ‘연장근로에 제한이 없는 특례업종’에 해당한다. 근로시간 특례업종(26개)은 ‘근로자 대표’와의 서면 합의가 있고, 연장근로수당을 지급하기만 하면 노동시간을 사실상 무제한으로 늘릴 수 있다. 김진영 지부장은 “항공운송업이 근로시간 특례에 들어간 것은 조종사와 승무원 때문일 텐데 조종사 등은 항공안전법에 따라 노동시간의 제한을 받는 반면 지상조업 노동자들은 아무런 제한 없이 노동을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역시 근로시간 특례제도 적용을 받는 광역버스 노동자가 최근 과로 탓에 다중추돌 사고를 일으킨 것처럼, 공항 노동자들도 사고 위험에 항상 노출돼 있다. 4년 전 김해공항에서는 승객들을 내려놓고 빈 셔틀버스를 운행하던 노동자가 졸음운전으로 공항 구조물과 부딪혀 사고를 냈다. 최근 인천공항에선 항공기 견인차량이 항공기를 유도하던 노동자를 덮치기도 했다. 김 지부장은 “공항 활주로에선 집중력이 한순간이라도 흐트러지면 대형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며 “사고가 나면 회사는 노동자 개인의 책임으로 몰아가는데, 구조적 원인을 따져봐야 한다”고 말한다. 샤프항공 김해지점에서 일하는 박민재(36)씨는 “근로시간 특례제도가 공공의 편익을 위해 생겨났다지만 사용자의 경제 논리가 더해지면서 승객의 안전을 위협하는 상황이 됐다”며 “고용을 최대한 줄여 이윤을 더 뽑아내고 있는 ‘노동자 자유이용권’(근로시간 특례제도)을 당장 폐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로사·과로자살이 잇달아 발생한 집배원(우편업)과 방송 노동자도 근로시간 특례업종에 해당한다. 지난해 사회진보연대 노동자운동연구소가 출퇴근 기록시스템을 통해 출퇴근 시간을 조사해보니 집배원은 월평균 240.7시간, 연평균 2888.5시간 일하고 있었다. <티브이엔>(tvN) 신입 조연출 이한빛 피디(PD) 사망사건 대책위원회가 지난 4월 조사한 결과를 봐도, 제작기간 중 제작인력의 평균 노동시간은 하루 19.18시간에 이르렀다. 방송업과 유사한 영화산업 스태프의 노동시간도 월 311.9시간으로 나타났다.(영화진흥위원회 영화 스태프 근로환경 실태조사, 2015)
특례업종 노동자들은 과로 탓에 뇌·심혈관 질환이 많이 발생한다는 분석도 나왔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강병원 의원(더불어민주당)이 30일 고용노동부 자료를 분석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지난해 운수·창고·통신업 노동자가 뇌·심혈관 질환으로 업무상 재해를 승인받은 비율은 0.0048%로 제조업 승인율(0.0027%)의 두 배, 전 산업 승인율(0.0019%)의 2.5배에 달했다. 이나래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는 “과로는 신체적 건강뿐만 아니라 사회적 관계도 단절해 정신건강에 악영향을 끼친다”며 “장시간 노동을 허용하는 근로시간 특례제도는 당장 폐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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