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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경비노동자 94명 ‘전원 해고’…“대리주차 거부하다 미운털”

등록 2018-01-05 20:32수정 2018-01-06 00:14

압구정 구현대아파트 94명 전원해고
다음달부터 용역업체가 경비 맡아
경비원 “고용승계되지만 비정규직”

주민 다수 “지금 그대로 하자”는데
입주자회의는 용역업체 전환 결정
대리주차·택배관리 거부로 미운털
노조 “노동권 주장에 대한 보복성”
5일 오후 서울 강남구 구현대아파트 경비실에서 한 노동자가 업무를 보고 있다. 그는 “대리 주차로 접촉사고가 발생하면 경비원이 모두 물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5일 오후 서울 강남구 구현대아파트 경비실에서 한 노동자가 업무를 보고 있다. 그는 “대리 주차로 접촉사고가 발생하면 경비원이 모두 물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나이 먹어 갈 곳도 없는데, 우리 같은 약자한테 하루아침에 칼질을 하네요.”

칼바람이 뺨을 때리던 5일 오후,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구현대아파트’ 경비노동자 김아무개(64)씨는 10년간 일해온 아파트를 올려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지난달 28일, 김씨는 태어나 처음으로 ‘해고 통보’를 받았다. 그는 “애들 보기 민망하다”며 이를 가족한테 알리지 않았다. 김씨의 동료 93명도 같은 시기 입주자대표회의로부터 “당사는 경영상 이유로 인해 2018년 1월31일 부득이 귀하를 해고함을 예고합니다”라는 내용의 통보를 받았다.

입주자대표회의는 정규직 경비노동자 94명을 모두 해고하는 대신, 2월 이후 경비 업무를 맡게 될 용역업체가 이들의 고용을 승계하도록 한다고 밝혔다. 곧 ‘직접고용 정규직’에서 ‘간접고용 비정규직’으로 처지가 바뀔 이 아파트 경비노동자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60살 정년까지 1년을 남긴 경비노동자 김아무개(59)씨는 “젊은 사람들은 이참에 이직한다고 하는데, 나처럼 나이까지 많은 사람은 어쩔 도리가 없다”고 했다. 14년을 정규직으로, 정년을 마친 뒤 다시 계약직으로 경비 업무를 맡고 있는 박아무개(61)씨는 “용역업체로 전원 고용승계가 된다지만, 이제는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처지가 바뀌어 다들 해마다 재계약을 걱정하며 불안에 떨게 됐다”고 말했다.

이 아파트 경비노동자를 둘러싼 ‘용역 전환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입주자대표회의는 지난해에도 여러 차례 용역 전환을 추진한 바 있다. 용역 전환 추진의 일차적 배경은 주차관리 업무 등을 놓고 경비노동자와 입주자대표회의가 빚어온 ‘노사갈등’ 탓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 아파트는 입주자가 자동차 열쇠를 경비실에 맡기면 경비노동자가 대신 주차하는 방식으로 주차난을 해결해왔다. 경비노동자는 휴게시간에 밥을 먹거나 잠을 자다가도 주민이 요청하면 밖에 나가 주차를 해야 했다. 경비노동자 김아무개씨는 “주차관리 업무의 부당함을 주장하며 준법투쟁을 하는 등 노사갈등이 있었는데, 이를 귀찮게 여긴 입주자대표회의가 용역업체한테 경비 업무를 넘기려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해묵은 노사갈등에 더해, 올해부터 최저임금까지 큰 폭으로 오르자 결국 ‘용역 전환’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현대아파트 관리사무소는 공고문을 통해 “경비 업무 중 주차관리와 택배, 재활용 분리수거 업무를 경비원한테 강제할 수 없고, 최저임금 상승과 일부 직원의 근태불량 등의 이유로 용역 전환 안건이 가결됐다”고 알렸다.

경비노동자들은 전원 해고 강행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한 경비노동자는 “여기 아파트 주민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사는 사람들이다. 주민 다수 의견은 최저임금이 많이 올랐다고 해봤자, 과거와 아주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닌 만큼 지금처럼 직접고용 방식을 유지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경비노동자는 “몇몇 입주자대표가 문제이지, 대다수 주민은 오히려 좋은 사람들”이라고도 했다. 이 아파트 경비노동자 노동조합은 이번 전원 해고 결정이 노조에 대한 ‘보복성 조처’이자 부당해고라고 보고, 법적 대응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많은 아파트 주민들은 경비노동자와 입주자대표회의 사이에서 당혹스러워했다. 주민 최아무개씨는 “입주자대표회의에서 그렇게 결정했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노사갈등은) 오래된 문제라 ‘또 그러는구나’ 이렇게 생각했다. 주민 가운데 왜 이런 일이 빚어지고 있는지 잘 아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민 김아무개씨는 “이런 문제로 언론에 오르내리는 걸 원치 않는다. 용역업체에 맡긴다고 주민의 삶의 질이 나아지는 것도 아닌데, (입주자대표회의가) 왜 굳이 일을 키우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나는 잘 모른다”거나 “말하고 싶지 않다”며 말을 피하는 주민들도 있었다.

김정균 한국노총 서울지역본부 조직부장은 “용역 전환은 노동자의 고용형태가 바뀌는 중요한 문제인데 노사협의도 없이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에서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통보했다. 아파트에는 ‘경영상의 문제’가 없고, 경비노동자한테 뚜렷한 징계 사유도 없기 때문에 이는 명백한 부당해고”라고 말했다.

이지혜 임재우 기자 god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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