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이 판단하고 결정하는 자리 아냐. 결정할 때, 책임질 땐 쏙 빠지고 위에서 하는 말 전달만 하려면 그 자리에 왜 있는 거야?”
이전 회사를 다닐 때, 나는 회사 동료들과 팀장, 부장, 과장 등 관리자 직급에 있는 선배들의 대처에 대해 자주 평가했다. 오래 함께 일했던 그들을 인간적으로 좋아했지만 업무 처리 방식에 아쉬움이 있었다. ‘아니, 도대체 왜 그러는 건데’를 입에 달고 뿜으며 지냈다. 함께 서로의 상급자를 욕하던 친구와 나는 각자 중간 관리자가 됐다. 세상에서 제일 낙천적이던 친구는 회사에서 최연소 파트장이 되더니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주말부부인데 둘째까지 태어나 퇴근 뒤 육아를 홀로 떠맡느라 그런 줄 알았더니 진짜 이유는 ‘파트장’이라는 자리에 있었다.
친구가 힘든 이유는 ‘좋은 사람 콤플렉스’ 때문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일 시키는 게 너무 힘들어. 싫은 소리 안 들으면서 일 시키려고 신경 쓰다 보니 밥맛이 하나도 없어.” 웃음기 사라진 친구의 얼굴이 날카로웠다. “그냥 내가 직접 할 때가 좋았지.” 나는 업무 조율에 대한 판단이 어렵다.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경계에 있는 일들을 우리 팀이 하게 될 때, 특히 대처하기가 쉽지 않다. 내가 ‘호구’라서 일을 다 끌고 오는 건가, 내 안에 있는 인정욕구로 안 해도 될 일을 굳이 한다고 해서 팀원들을 힘들게 하는 건가, 자기 의심이 끊이지 않는다. 합리적인 결정을 하는 팀장이고 싶은데 모든 일들은 경계가 모호하고, 합리성보다는 정치의 영역에 있는 것 같다. 옆 팀의 여성 팀장은 처음 팀장이 되고 가장 자괴감이 들었던 때가 인사 시즌이라고 했다. 좋은 팀장의 역할은 일 잘하는 팀원을 키우고 홍보해서 좋은 자리에 보내는 데까지에 있다. 수완 좋은 다른 팀장에 비해 자신이 정치력이 없어서 열심히 함께 일한 팀원의 인사가 잘 안 풀렸을 때 땅을 파고 들어가고 싶다고 했다.
나는 더 많은 일하는 여성들이 ‘관리자’로서의 모습을 스스로 상상하며 일하면 좋겠다. 10년 넘게 일하면서 나는 관리자로서의 내 모습을 상상해 본 적이 별로 없었다. 나에게 주어진 일의 의미를 찾고 그 목표를 잘 수행하는 게 주된 관심이었다. 일을 할 때 관계를 보살피고 관계에 기대고 싶지도 않았다. 내가 ‘내 일을 최선을 다해 잘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선배 관리자에 대해 평가할 때도 ‘만약 내가 그 역할을 한다면’에 대한 가정을 해 본 적이 없었기에 더 혹독했는지도 모르겠다. 리더 혹은 관리자의 태도가 반드시 그 ‘직위’에 있을 때만 필요한 건 아니다. 모든 일은 협업이고, 관계에 기반해서 한다. 팀장·과장·부장이 아니더라도 성과를 위해 역할을 명확히 나누고 수행 수준을 높이는 과업 지향성과 관계를 살피고 배려하고 존중하는 관계 지향성, 때로는 일에 대한 보상을 명확히 요구하는 거래 지향성까지 두루 시도하고 실험해 본다면 좋을 것이다.
2019년 1000인 이상 사업장의 여성 노동자 비율은 39.44%이고, 그 가운데 여성 관리자 비율은 22.51%다.(고용노동부 통계) 수치는 매년 개선돼 10년 전 여성 관리자 비율(14.13%)보다 8%포인트가량 높아졌다. 수치가 개선됐다고 해도 여성 관리자는 10명 중 3명이 안 된다. 준비하지 않은 관리자로서의 시행착오와 좌충우돌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더 적은
모수의 여성들이 관리자를 하다가 실수와 좌충우돌을 할 때 그것이 ‘처음 하는 자의 실수’가 아니라 ‘여성의 실패’로 읽힐까 봐 두렵다. 친구와 종종 ‘여자 청소년 정치 학교’를 만드는 스타트업이 생기면 어떨까 이야기하곤 했다. 정치적인 사고를 하는 기회, 겸양보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과 나의 성취를 이야기하는 기회, ‘좋은 사람’이고 싶어 원래 목표를 놓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말하는 기회, 성별에 대한 편견이 전혀 개입되지 않은 상태에서 행동하는 기회가
마구 제공되는 기획과 공간이 열리면 어떨까. 리더 연습은 어릴 때부터 하도록 말이다.
리담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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